여자도(汝自島)를 가기 위해 녹색대학 이무송 교수와 섬달천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해넘이와 참 꼬막으로 유명한 섬달천은 본래 달천도(達川島)였다. 섬달천은 둥근 달 모양이라 하여 도월천이라 부르다가 달천도라 바꿨다고 한다. 이곳은 아름다운 해넘이로 <오마이뉴스> 조찬현 기자의 주요 표적(?)의 하나가 되기도 하고, 덕분에 널리 알려진 섬이기도 하다.
꾸불꾸불 도로를 달려 달천과 섬달천을 잇는 달천교에 닿는다. 달천교는 총연장 150m, 보폭 7m로 지난 1999년 새롭게 완공되었다. 이곳은 물이 빠지면 자원의 보고인 여자만 갯벌이 드러난다.
달천교 초입 왼쪽으로 두 개의 거북 형상 바위가 보인다. 하나는 거북 그대로의 모습이며, 하나는 머리를 바다 속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거북이가 지켜서일까, 이 여자만 갯벌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꼬막, 바지락, 석화 등으로 인간에게 경제적 풍요를 안겨주고 있다. 더불어 삶의 평화와 위안을 제공하고 있다.
달천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무더운 여름 날, 정자(亭子)에 앉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여유롭고 한적한 해안을 만날 수 있다. 인적 드문 갯벌과 어울린 바다, 그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뗏마(배)를 보며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왼쪽으로 가면 여자도행 객선이 닿는 마을 선창이 나온다. 선창에 쌓인 어구(漁具) 중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분명 고기잡는 어구인데 뭘 잡는 걸까?' 결국 차를 멈추고 김귀천(71) 어르신에게 말을 건넨다.
"이거 뭐 잡는 거예요?"
"이거, 주꾸미 잡는 거여. 소라껍질을 무꺼(묶어) 배에서 차근차근 내리믄 주꾸미가 집 삼아 안에 들지. 그라믄 올려 잡아 팔기만 허믄 돼"
"먹이는 안 쓰나요?"
"오징어잡이 같이 먹이는 읎어. 내다 팔믄 20마리 한 코에 한 만원 정도해. 낙지는 삼 만원 정도 허고"
"그믄, 낙지는 뭘로 잡아요?"
"낙지는 통발이나 주낙(낚시)으로 잡지"
도선장으로 향한다. 도선장 주변에 차량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여자도로 가기 위해 차를 한쪽에 주차하고, 일 보고 와선 다시 차를 타기 위함이다. 그들처럼 나도 차를 주차하고 여객선을 기다린다.
찬바람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대합실에서 찬바람을 피한다.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신다. 눈치로 보아하니 육지에 사는 아들이 데려다 준 모양이다. 손말심(77)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 어디 다녀오세요?"
"아파서 뱅원에."
"어디가 아픈데요?"
"다리 관절 수술해서~ 치료 받구 와. 섬 사람덜 어디 안 아픈 데가 있는감. 폴 다리 아픈 건 말도 못해. 20년 전 영감 암으로 보내고, 하도 아파 다 늘근 사람이 수술을 했제. 인자 쫌 나아."
"아저씨 먼저 보내고 고생 징허게 했건네요?"
"다 허는 고생인디……. 그래도 나넌 상도 받았어."
"무슨 상요?"
"도지사 표창. 동네 부녀회장 칠년 함서 봉사했더니 상 주데. 근디 광주 사태가 나갔고 표창 타러 가도 못허고 말었어. 후에 시계허구 상장을 보내왔드만."
섬에 살면서 육지와 부대낄 일이 없을 것 같은 손말심 할머니에게도 80년 5월 광주의 여파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어요. 하필이면 어찌 그때데요? 참 세상 재밌네요. 근대요, 광주 사태가 아니구요, 광주 민주화 운동이에요' 말하고 싶지만 꾹 눌러 참는다.
도선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할머니들 "무슨 일보러 나왔는가?" 서로 반기며 근황을 묻는다. 시내버스가 들어오고 떡국, 계란, 배추 등의 짐들이 내려진다. 배편으로 보낼 짐이 도착하고, 섬에서 나오는 사람을 마중 나온 자가용이 기다린다.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닐까? 이렇게 섬달천은 여자만 인근의 작은 섬으로 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 이야기를 쏟아내는, 모함인 여수와 종선인 섬들을 잇는 연락선로서 작은 섬사람의 등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이렇듯 섬은 본래 가진 모습과 그 이면의 다른 모양새를 갖춰가면서 하나의 섬, 전체의 가치로 존재하는 건 아닐지? 섬의 생존처럼 인간도 자신의 모함(부모)과 종선(자식) 그리고 연락선(친인척, 벗 등)의 부대낌 속에 존재가치를 찾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