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사람들 발을 무끌(묶을)수도 업고”
“섬사람들 발을 무끌(묶을)수도 업고”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6.12.29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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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달천도와 여자도를 오가는 나룻배 선장 김재학
 
▲ 여자만의 해넘이

생활을 육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섬에서 배는 필수품이다. 배는 생계유지 수단인 동시에 섬과 섬을 오가는 운송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배는 섬사람에게 있어 ‘생활’ 혹은 ‘삶’ 그 자체다. 섬사람들의 발인 배. 그 역할을 하는 나룻배에는 어떤 애환들이 숨어 있을까?

전남 여수 달천도(達川島)와 여자도(汝自島)를 오가는 나룻배인 도선(渡船) ‘새마을 호’에 오른다.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쉽게 배려되어 있고, 구명조끼와 객실이 있다. 사람들 객실에 옹기종기 앉았다.

이용객이라야 신흥초등학교 여자분교에 전자제품을 설치하러 가는 젊은이 두 명, 병원에 다녀온다는 할머니 네 분과 할아버지, 여수시 공무원, 녹색대학 이무성 교수와 필자 등 십 명이 전부다.

서로 모르는, 일보러 가는 사람들은 밖에서 바다와 파도, 그리고 주변 경관에 취해 찬 바다 바람을 맞고 있다. 손말심(77) 할머니는 담요를 덮고 모로 누운 채 시시콜콜한 이야기 꽃을 피워대고, 할아버지는 점잔 빼는 모양새로 좀 떨어져 할머니들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 여수 섬달천과 여자도를 오가는 나룻배인 도선(渡船) ‘새마을 호’에 사람이 오른다.

 
▲ 손말심(77) 할머니는 담요를 덮고 모로 누워 있고, 한 할머니가 선장을 대신해 요금을 걷고 있다. 임훈수 할아버지는 좀 떨어져 할머니들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나룻배가 파도를 일으키며 나아간다. 찬바람이 몸으로 밀려들고, 일어난 파도가 튀어 올라 얼굴에 묻는다. 파도를 피해 남도의 바다를 감상한다. 육지와는 다른 추위가 느껴진다. 추위를 피해 객실로 들어간다. 젊은이들도 객실로 찾아든다.

나룻배가 뜨기 전 요금을 받는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어서 내릴 때 내는가보다 여겼는데 이야기를 나누시던 한 할머니께서 배 삯을 걷는다. 다들 눈치껏 값을 치른다. 창문을 열어 걷은 요금을 선장에게 건넨다.

오랜만에 육지에 나간다고 말쑥하게 차려 입은 임훈수(80) 할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옷깃에 달린 뱃지에 눈이 간다.

“할아버지, 이거 무슨 뺏지예요?”
“뭐라고~, 배 기계소리 땜에 잘 안들려”
(할아버지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악을 쓰며) “이거 무슨 뺏지예요?”
“전쟁 참전 뺏지여”
“월남? 육이오? 무슨 전쟁요?”
“육이오 참전 유공자 뺏지여 이게. 지금은 유공자라고 매달 칠만원씩 나와. 난 ○사단에 있었제”

할아버지 뇌리엔 6ㆍ26 당시의 ○사단이 있었겠지만 내겐 80년의 봄, 서울로 이동했다던 그 가당찮은 ○사단과 후에 대통령이 되고 급기야 자신이 다스리던 국가로부터 재산환수를 당한 이가 떠오른다.

 
▲ 그리 웃던 우리 선장님 사진 찍는다 했더니 웃음이 사라진다. 천하의 바다 사나이도 사진 앞에선 굳어지는가 보다.

대동, 마파, 송여자로 구성된 여자도 중 가장 먼저 송여자에 닿는다. “서류 보낸다고 했는디 서류 안보냈소?” “안 보냈소” 대화가 오가고 한 사람이 내린 후 다시 출발한다. 선실에서 시원한 이마를 지닌 뱃사공을 만난다. 다름 아닌 ‘새마을호’ 김재학(53) 선장.

“선장님, 애환이 참 많으시겠어요?”
“만치라. 나(내)가 이거 한지 한 삼십년 됐는디 그거 웂겄소. 만치. 사람이 갑자기 아파 병원에 가야 헌디 배를 대야지 어쩌것쏘. 파도가 쎌 때가 젤 문제지. 한 번은 나가 다리가 뿔라져 한 두달 쉬었소. 섬사람들 발을 무끌(묶을)수도 업고해서 다른 사람이 대신 운항을 했는디 이것 갖꼬 벌금도 물었쏘. 판사한테 선처를 바래도 이해는 가지만 법상 위법이라는데 어쩔거시오. 하여튼 벌금도 만이(많이) 물었지”

“아니 왜요?”
“이거시 열두 명이 정원인디, 하다 보믄 열두 명 넘을 때가 왜 웂것쏘? 있지. 지금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 적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지라. 배 타는 사람을 정원이 넘었쓴께 타시 마시오 그럴거요? 한 번 노치면 몇 시간 뒤에 배를 타야 쓴디 누가 안탈라 글것쏘.

네 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다섯 번 댕기는디 타는 입장에선 죽어라 타지 안글것쏘? 이 벌금 땜에 그만 둘 고민까지 해쓴께. 한 사람 타믄 천 오백원부터 사천원까지 받은디, 정원초과라고 벌금 때리믄 그걸 고스란히 목돈으로 벌금낸께. 벌금만 내믄 좋지, 거그다 시간 내서 조사 받어야지. 더 이상 말해 머하것쏘”

 
▲ 김 선장님은 오늘도 키를 잡고 계실 것이다.

“어려움이 많겠네요?”
“사람이 줄어 손님이 준께 어렵지. 해경에선 다른 데 같이 요금을 오천원 이상으로 올리라고 헌디, 뻔히 아는 사정에 올리기가 어디 쉽소. 글고 기름값 올라가지 만이(많이) 어렵지. 옛날에는 그래도 주민들이 면세유를 쪼끔씩 나눠 줘 그럭저럭 헐 수 있었는디, (불법 면세유 유통) 문제로 일반 기름으로 쓴께 더 어렵지.

하루 오회 운행에 이백 리터 쓴께 이십 사만원이 드요. 열두 명 정원으로 이 벌이가 되것쏘. 그러다 배가 고장 나믄 배 수리 해야지, 타산이 안마져. 년 3천 이상 적잔디 적자를 보더라도 섬사람들 발을 무끌 수도 업고, 편의제공 차원에서라도 해야지”

“섬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한다던데?”
“정부에서 지원요? 여객선만 허요. 여객선과 도선은 (경영 규모 등에서) 차이가 많소. 우리 같은 도선은 안허요. 힘이 업는 우리까장 누가 신경 쓰것쏘? 시에서 적자보전 헌다고 한 오육년 동안 매년 서류를 받아가더니 아직도 그대로요”

 
▲ 송여자에서 몇 사람이 배를 탄다.

“이걸 어찌 시작하게 됐어요?”
“나가 열다섯부터 집배원을 하다가 이걸 하게 돼쓴께 한 삼십년 됐제. 마을에서 업던 도선을 처음 만들 때 여러 사람이 이거슬 할라 그랬는디 (여자도) 주민덜이 (집배원 하느라) 고생했다고 추천합디다. 그래서 하게 됐소. 우리 마누라 이름이 김점옥(47)인디 여수우체국에서 나 대신 집사람을 집배원으로 써줘 마누라가 허요”

누구든 아픔과 즐거움 등 많은 애환을 갖고 살겠지만, 어려운 판에도 서글서글 말하는 김재학 선장이 다시 보인다. 그의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다 사나이라서 넓은 가슴을 가졌기 때문에? 아님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자와 가난뱅이 두 계급만 존재한다고들 한다. 중간 계층이 사라진 때문이다. 여자도를 둘러보고 막배를 타 보니 여기에도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아닌 ‘정 많은 사람과 정 없는 사람’. 나는 어디에 속할까?

 
▲ 여자도 마파지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 이무성 교수도 어느 새 선장을 닮아 웃는걸까? 아님, 바다가 좋아 웃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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