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매나 전기가 소중헌지 알기나 허요?”
“얼매나 전기가 소중헌지 알기나 허요?”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6.12.10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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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소횡간도 - 전기공사
왜 그리 전신주가 많은지? 사진 찍으려면 어김없이 전봇대 자리한다. 처음에는 짜증나지만 전신주 피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차츰 적응해간다. 그렇다면 먹고 살기 위한 생존 차원에서 전신주를 반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입장일까?

 
▲ 소횡간도 뒷동산에서 본 남도 풍경.

일렁이는 파도 사이로 찬 바람이 분다. 소횡간도가 보인다. 오른편으로 색 바랜 책 읽는 소녀 동상이 폐교된 학교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가운데 멸막(멸치를 삶고 말리는)과 자가발전시설이 자리한다.

전남 여수 남면 소횡간도(小橫干島). 대횡간도와 나란히 자리잡은 소횡간도는 돌산, 화태도, 나발도, 소두라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지형이 비뚤어져 ‘비깐섬’이라 하는데 ‘빗길 횡(橫)’자를 써 ‘횡간(橫干)’이라 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놈들이 바다에서 화살을 쏘면 이 섬이 막고 있어 ‘빗겨 나갔다’ 하여 횡간(橫干)이라는 설도 있다.

선창에 내리자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온다. 아낙이 낯선 이들은 아랑곳 않고 멸치를 선별한다. 제법 낚시꾼들이 오는 곳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왼편으로 오징어와 꼴뚜기가 해풍을 맞으며 몸을 말리고 있다. 한가로운 섬의 일상이다.

 
▲ 멸치를 선별하는 아낙

 
▲ 오징어가 해풍에 몸을 말리고 있다.

갑자기 악쓰는 다툼 소리가 난다. 딸랑 여섯 명 사는 섬에서 큰소리가 날 턱이 없는데 웬일일까? 고개를 돌린다. 섬 살피러 다니는 걸 제지하고 있다. 아는 얼굴이 보인다. 여수시 공무원인 김용만 씨와 인사를 나눈다.

“왜 그래요?”
“저번에 사람들이 섬을 둘러보러 왔는데 전봇대를 못 달게 했나 봐요. 그래서 이 사람들 신경이 날카로워요”
“왜요?”
“여섯 명 사는 작은 섬에 12억이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철탑과 전봇대를 세운다고 이의제기를 해서 그래요. 그 때 전봇대 세운다고 땅을 파헤쳐 놓았다나요? 환경파괴 하지 말고 예산 적게 드는 태양이나 바람을 이용해 전기공급 하라고. 막바지인 전기공급사업이 혹시 중단될까봐 걱정인거죠”

 
▲ 마을 가운데 있는 멸막에서.(좌로부터 정희선 청암대 교수, 서일순, 박영철, 김용만 씨)

소횡간도 지킴이로 살고 있는 서일순(59)ㆍ박영철(59) 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 자가발전 안 해요?”
“저거시 자가발전 시설이요. 시에서 기름값이랑 지원해줘 발전을 하는데 그걸로는 전기가 턱없이 부족허요”
“여섯 가군데 부족합니까?”
“여섯 가구만 쓰먼 부족허것쏘. 여그는 맬막(멸막)을 허요. 이 소횡간도 생계가 맬친디, 장마철에 전기가 읍써 맬치를 말리질 못해 멸치가 썩어뿌요. 전기가 있어야 냉동공장 시설을 해서 냉동시켜 보관할 건디, 그걸 못헌단 말이요. 우리에게 얼매나 전기가 소중헌지 알기나 허요?”

 
▲ 이 자가발전시설로는 전기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단다.

“태양광으로도 가능할 텐데요?”
“우덜 사정을 알기나 허요? (자가발전으로) 우린 여태 저녁 4시간만 불을 밝키고 살아왔쏘. TV도 못보고 그 속을 아요? 태양으로 허먼 전력이 부족하다요. 여그는 전기가 업써 맬치를 잡아와도 냉동을 못시켜 그때그때 작업을 해야 허요. 아직까장 완전 원시멸치 작업이요. 묵고 살라믄 헐쑤 업쏘”

“필요하긴 필요하겠네요?”
“우덜이 전기공사헐라고 얼매나 고생헌 줄 아요. 삼년 전에도 전기공사 헐라고 했는디 저기 건너 마을에서 철탑 지나는 토지승낙을 안해 줘 못했소. 그래 한전에 청원해서, 산자부에서 열네 명이 와 조사허고 해서 인제야 전기를 놓는단 말이요. 저쪽에서 안해준 걸 그나마 대횡간도 사람덜이 토지승낙을 해줘 이리 공사를 허지 안그랬쓰믄 텍도 업쏘. 우덜도 며칠 지나믄 밤에도 내내 불을 밝힐 수 있소. 그 희망을 알기나 허요?”

이런 사정이 있었군 싶다.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그들이 들인 노고는 안 봐도 알만하다. 막바지 공사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섬 경관을 보존을 위해 태양이나 바람 등 대체 에너지인 신재생 에너지 보급을 통한 친환경 전력수급 정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 철탑과 전봇대가 들어오기까지 섬사람들의 고충을 알만도 하다.

 
▲ 한창 전기설치 중인 전기공. 횡간도에서는 그들이 바로 희망의 전도사이다.

김준 교수(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는 “최근 정부에서 무인도서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제시해 훼손과 쓰레기 방치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해양관광의 자원으로 활용에 나서겠다고 한다”면서 이에 따라 “소중한 자연 섬에 대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먼저 머지않아 무인도화 될 섬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섬 사람들 안내에 따라 마을을 둘러본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부엌에 놓인 살림살이가 사람의 체온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집과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차이가 금방 드러난다.

뒷동산에 오르니 나무와 어우러진 남도의 다도해 경치가 멋스럽다. 흑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 없던 사람 인기척에 주위를 경계하는 폼새가 꼭 외지인이 돌아보는 걸 제지하던 마을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쪽에 그들의 바램처럼 큰 철탑과 전봇대가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분명 생존을 위한 희망의 불이다. 내려오는 길에 집으로 들어가는 전기선을 까는 작업을 하는 전기공을 본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전도사일 것이다.

 
▲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부엌 살림살이.

그동안 사진 찍으면서 아쉬워했던 ‘왜 그리 전신주가 많은지?’란 생각은 이곳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있는 사람들의 허영’일 뿐이다. 사진도 희망을 전달하는 전도사란 생각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 여섯 명이 살고 있는 소횡간도. 가운데 멸막 옆으로 붉은 벽돌 집이 자가발전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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