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일하고 싶어요” 하루하루 간절한 여수 최중증 장애인들
“계속 일하고 싶어요” 하루하루 간절한 여수 최중증 장애인들
  • 마재일
  • 승인 2024.01.11 16: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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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은 지금까지의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다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은 그동안 기존 장애인 공공일자리 등에서 배제됐던 최중증·탈시설 장애인에게 사회적 가치인 권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권익 옹호 활동, 문화예술 활동, 인식개선 활동 등 맞춤형 3대 직무를 개발해 공급하는 일자리이다. 가장 취약한 노동자인 탈시설 최중증 장애인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애 여성을 우선 채용한다.

최중증 장애인은 장애인 보조 기구나 활동 보조인 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사실상 경제적 활동 기회가 거의 없는 장애인을 뜻한다. 1급 뇌병변장애인 또는 발달장애인, 뇌병변장애인·척수장애인·근육장애인·언어 및 시청각 등 중복장애인 등이 해당한다.

최초 이 사업을 시행한 지자체는 2020년 7월 서울시다. 이후 경기·전남·전북·경남 등 각 지자체로 사업이 확대됐다. 지난해 여수시에서는 최중증 장애인 17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올해는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내일을여는멋진여성, 헤세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4개 기관에서 5명씩 총 20명이 활동한다. 예산은 기관별 8,700만 원이다.
 

▲우리동네 무장애 골목 캠페인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우리동네 무장애 골목 캠페인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여수여행 코스개발 모니터링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여수여행 코스개발 모니터링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임금은 월 77만 8,940원(주 15시간)을 받는다. 퇴직금은 별도다. 이 일자리에 참여하는 최중증 장애인들은 임금 노동을 처음 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액수의 적고 많음을 떠나 이들에게 노동을 통해 돈을 번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커졌고 그동안 마음속에 꾹꾹 누르며 살아왔던 장애인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표현하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립할 가능성도 커진다.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지만, 현실적인 난관도 있다. 이 사업이 알려지다 보니 참여하려는 최중증 장애인들이 늘면서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수시 장애인 등록현황을 보면 ‘심한 장애’로 분류된 장애인은 6,286명(2023년 2월 기준)이다. 예산과 위탁기관 수용 한계 등 현실적으로 대기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6명의 활동가와 근로지원인 등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해 12월 진남문예회관에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자화상 전시회를 열었다.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강정애, 김지민, 이예찬, 이태희, 정명화, 조헌진 씨 등 활동가들은 순천만국가정원, 웅천친수공원, 미평 봉화산 산림욕장, 흥국사 계곡 등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만든 창작품과 당사자의 인권을 그린 자화상, 창작시 등의 작품 전시를 통해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을 알렸다.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태희, 정명화, 조헌진, 이예찬, 김지민, 강정애 씨.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태희, 정명화, 조헌진, 이예찬, 김지민, 강정애 씨.
▲어씽 활동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어씽 활동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명화(47) 활동가는 “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성적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통할 수 있고 글도 읽을 수 있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무엇보다 소득이 생겨 너무 좋았다. 나도 시를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예찬(24) 활동가는 “처음 이곳에 여기 왔을 때는 말도 잘 안 하고 소극적이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다 보니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민(32) 활동가는 “다른 야외활동도 모두 좋았지만, 특히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았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태희(25) 활동가는 “어싱(Earthing) 활동으로 산, 바다, 계곡, 공원 등 야외로 다니면서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재료를 수집해서 만들기를 했던 것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사람 앞에서 시 낭송할 때 많이 힘들었지만 잘 해내 스스로 기특했다”고 말했다. 조헌진(47) 활동가는 “실내보다 야외활동했던 게 기억에 가장 남는다. 마림바를 연습할 때 계이름을 외우는 것이 힘들었지만, 나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강정애(42) 활동가는 “그림 그리기와 다양한 체험, 마림마 연주, 시를 쓰면서 지금까지 숨겨왔던 감정과 아픔을 표현할 수 있어서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다. 권리 중심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전담하는 박미 간사. (사진=마재일 기자)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전담하는 박미 간사. (사진=마재일 기자)

일자리는 상처와 아픔 치유 과정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미 간사는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들은 1년 계약직이다. 이어서 활동하려면 선발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연말이 되면 힘들어한다. 소득을 얻은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이 그만둬야 한다고 하면 정말 허망해한다. 활동가들의 의지도 꺾인다.”

“소득이 월 70만 원 정도 되는데 비장애인들에게는 적은 금액일지 몰라도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큰 소득이다. 무엇보다 아침에 갈 곳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 좋아한다. 매일 집에만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갈 곳이 있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정명화 씨는 연차를 쓰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보낸다. 센터가 이들에겐 해방의 공간이다.”

장애인은 상처와 아픔을 말할 기회나 대상이 거의 없고 현실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기란 어렵다.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활동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일자리 사업이 이들에게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 계속 다른 사업에 참여하면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권리 중심 일자리 사업이 최중증 장애인들이 사회에 진입해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마재일 기자)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마재일 기자)

“‘리:마인드’ 프로그램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시를 지으면서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회피하고 싶은 나만의 상처와 아픔을 마음의 거울에 비춰보고 숨겨진 자아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려 실타래처럼 엉킨 기억과 상처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는 것이다. 자기를 위로하고 치유하면서 장애의 수용도를 높이고 자아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리:마인드 프로그램을 기획한 박미 간사는 “처음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장애인들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상처와 아픔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상처와 아픔이 시로 표현된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박 간사는 이 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애인 관련 모든 사업은 결국 예산 문제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예산을 투입한 만큼 실적이나 성과가 없으면 사업을 폐지하거나 예산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권리 중심 일자리 사업은 장애인들이 출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장애인들이 너무 좋아한다. 성과로만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지금까지의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근로지원인 김미자 씨. (사진=마재일 기자)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근로지원인 김미자 씨. (사진=마재일 기자)

변화한 장애인들 보면 뿌듯

1년 동안 이들의 변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근로지원인 김미자 씨는 “자기 주관이 확실한 장애인들과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사실 난감할 때도 있었지만, 전에는 말도 안 하고 눈도 안 맞췄는데 지금은 눈을 보고 웃으면서 인사한다. 소극적이었던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변하거나 자기 속에 갇혀 표현에 서툴렀던 이들이 자화상과 시를 통해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장애인은 물론 근로지원인이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은데 박미 간사님이 역할을 잘 해줘 고맙다”고 했다.

이예찬 씨와 정명화 씨의 경우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파트너로 일할 정도로 변화가 확연하다. 김 씨는 “많은 사람 앞에 서서 직접 자기 경험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것들을 해낼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애 인식개선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후천적 장애가 80%가 넘는다. 비장애인들도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라도 내 일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어우러져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미 간사의 말이다.


 

▲어씽 활동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어씽 활동에 나선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리 중심 최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와 근로지원인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라르쉬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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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24-01-11 17:42:07
응원합니다

마 진팬 2024-01-11 17:13:15
마재일 응원합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