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아픔을 딛고 선 고베
지진의 아픔을 딛고 선 고베
  • 오문수 시민기자
  • 승인 2008.02.08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문수의 일본여행기 4] 문화가 소통이다
▲ 고베항 메리겐파크 야경 - 왼쪽 하얀 구조물은 해양박물관이고 오른쪽은 높이 108m의 고베 포트타워로 고베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다
지진, 번개, 화재, 아버지.

이는 옛날부터 일본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순서로 적어 놓은 것이다. 그만큼 지진은 일본에서 두려운 존재다. 일본열도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하며 태평양판, 필리핀판, 유라시아판, 북미판의 4개판이 부딪치는 곳에 위치해 지반이 극히 불안정하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진도 6.0 이상의 지진 중 1/5이 일본에서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23년의 관동대지진과 1995년의 고베대지진으로 두 지진 피해자는 사망 약 14만 명, 실종 4천여 명이고, 1조4천억 엔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 1995년 고베 지진 당시의 현장 모습을 보존한 지진메모리얼기념관
위 예를 든 자연 재해 외에도 화산폭발, 태풍, 해일, 폭설 등이 반복되는 연중행사로 일본사람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에 한계를 느끼고 공포와 체념의 자세를 갖게 됐다. 무상(無常), 인종(忍從), 수용(受容), 변화(變化) 등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말들이다.

일본 천년의 수도 교토시내 한가운데 있는 수많은 절과 신사들은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한 인생무상과 절대자에 대한 귀의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

롯코산을 등지고 항구를 따라 동서로 펼쳐져 있는 고베는 오사카만을 끼고 발달한 국제적 항만도시로 교토, 오사카와 함께 게이한신(교토, 오사카, 고베) 지역의 산업, 문화, 교통권을 형성하고 있다. 산노미야를 중심으로 남쪽의 고베항 일대는 공업지대이며 북쪽의 롯코산 기슭에는 고급 주택가가 펼쳐져 있다. 오사카에서 JR전철을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 고베이다.

▲ 고베항 야경
우선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관광순환버스를 이용하는 1일 승차권을 구입했다. 먼저 기타노이진관으로 갈까하다 방향을 틀었다. 기타노이진관은 메이지, 다이쇼 시대에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곳으로, 고베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유럽에 가서 수없이 봤던 집들을 보려고 500엔에서 1000엔까지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광순환버스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며 내린 곳은 해양박물관과 고베 포트타워로 유명한 메리겐파크이다. 여수에서는 2012년 해양엑스포를 유치했고, 여수를 상징할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 논의가 한창이다. 항구가, 특히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항구라는 얘기를 들어서 확인하고 싶었고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첫 번째 선택한 곳이다.

1987년 4월에 완공된 메리겐파크에는 해양박물관을 비롯한 고베의 상징인 포트타워와 초전도 전자추진선 ‘야마토1’, 고베 지진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메모리얼 파크에는 갈라진 부두의 모습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가로등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중·고등학생들이 견학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 모자이크 - 건물 사이에 꽃길을 조성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쇼핑가
고베해양박물관은 고베 개항 120주년을 기념하여 1987년에 오픈한 박물관이다. 건물의 외관은 범선의 돛과 파도를 형상화한 높이 45m의 거대한 흰색 프레임이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바다와 배, 항구'를 테마로, 고베 항의 역사와 세계 항구에 대한 정보를 풍부한 자료와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고베 포트타워는 고베 항의 랜드마크로, 1963년에 세워졌다. 붉은색의 독특한 철골 주조가 돋보이는 전망탑의 높이는 108m이다. 5층의 전망대에서는 고베 시내와 항구의 전경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오사카 만까지 바라다볼 수 있다.

메리겐파크 내의 시설과 조경물들이 너무나 깨끗하고 쾌적해서, 여수도 이런 모델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밤에 다시 와서 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 고베 번화가에 자리한 모토마치도리 상가로 아케이드 형태로 조성돼 있다.
나카톳데이 중앙터미널을 지나 건너편 허름하게 보이는 곳이 하버랜드와 모자이크다. 이름이 괜찮아 멋있을 것 같은데 외관은 영 아니다. 우리나라 항구의 하역창고 모습 같다. 하지만 모자이크에 들어가 보니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를 옮겨온 것 같은 모습이다.

먹고 놀고 즐기고 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했다는 느낌이다. 상점과 상점 사이에 널찍한 거리를 만들어 꽃길을 만들고, 각각 서로 다른 크기와 구조의 상점들이 세워져 있으며 아이들의 앙징스런 장난감 가게와 소녀들의 액세서리 등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멋있을 것 같은 하버랜드 놀이공원에는 대관람차와 몇 가지 탈 것만 보여 웃음이 나왔다. 하여튼 손님 주머니속 돈을 끄집어낼 상술은!

모토마치는 고베의 유행을 리드 한다고 할 만큼 고베 시내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지역이다. 모토마치에서는 모토마치 거리, 모토마치도리쇼텐가이, 차이나타운 등이 주요 볼거리이다. 거리에는 비교적 오래된 점포가 많이 있어,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지진 당시 고속도로 붕괴와 무너진 집과 사상자들을 TV를 통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더 이상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 난킨마치 차이나타운의 야경
난킨마치로 불리는 차이나타운은 동서로 약 200m거리의 좁은 골목길에 중국 음식점, 잡화점들이 들어차 있으며, 주말에는 노점들도 자리를 잡는다. 가게마다 빨간 등이 달려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고베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중국식 호빵가게는 추운날씨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 와서 온천을 보고 가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 아리마온센은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3대 명탕 중의 하나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9번이나 방문했다는 아리마온센은 철분을 포함한 소금 온천인 붉은색의 금천과 무색투명한 온천이 있으며, 이 두 가지 온수에 번갈아 입욕 하면 만병이 낫는다고 한다.

개울가에 노천탕 같은 모습이 보여 유치원생들을 인솔한 교사들에게 ‘온천’이냐고 묻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 손가락을 대니 차가운 ‘한천’이다. 손가락을 물속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는다. 노천탕이 아니라 주요 온천마다 호텔과 시설물을 설치하여 온천욕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며, 최근에는 리조트 지역으로 각광 받고 있다.

▲ 일본의 3대 온천인 아리마온센으로 노천탕인줄 알았다. 온천인줄 알고 손가락을 집어 넣으니, 아이 차가워!
처삼촌 집에 돌아오니 가게에 재일교포 손님이 와 계셨다. 재일교포 3세로 나주가 고향이라는 할머니(72)는 고베 지진에 대해 묻자, “고베 지진 때 오사카도 많이 흔들리고 약한 곳은 무너졌다” “엄청 무서웠고, 구조와 도움을 주러 오사카에서도 많이 지원을 나갔다”고 한다. “한국, 괌, 타이완 등 아시아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빌딩 짓는 모습을 보면 불안하다. 저렇게 기초를 약하게 지어서 만약 지진이 나면 괜찮을까?”하고 걱정된단다.

마침 식당에 켜놓은 스피커에서 <겨울연가> 노래가 나오자 “일본 아줌마들은 <겨울연가>와 드라마를 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며 “어릴 때 학교가면 사람취급 못 받고 무시당하며 힘들었는데 인자는 일본사람도 한국드라마가 좋다고 한다. 인식도 좋아지고 요가가면 일본사람 있어도 인사할 때 ‘곤이치와’ 대신에 ‘안녕하세요?’ 하면서 당당히 인사한다”고 한다.

▲ 중앙이 재일교포인 박군애씨로 아시아태평양 인권정보센터 연구원이다. 왼쪽은 그녀의 어머니이고 오른쪽은 임씨 할머니
수첩에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내일은 재일교포 좋은 사람 소개해 줄 테니까 저녁 7시에 꼭 만나자며 다짐을 한다. 물질문명보다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낀다. 한국 드라마의 섬세한 감정 표현은 일본 드라마와 ‘맛’이 다르단다. 문화가 소통의 훌륭한 도구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