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동안 배 타고 일본으로!
16시간 동안 배 타고 일본으로!
  • 오문수 시민기자
  • 승인 2008.02.0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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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재인식하는 일본 간사이(關西)탐색 여행 1]
▲ 길이 186m 무게 2만 6천톤이나 되는 부산 - 오사카를 운항하는 팬스타 써니호의 모습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은 여행했지만 정작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에서, 또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선뜻 나서지 않다가 열흘 정도(1월 21~31) 역사여행하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간사이 지방은 일본 열도의 중앙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흔히 긴키 지방이라고 부른다. 간사이 지방에는 수도를 도쿄로 옮기기 전까지 천년의 수도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즐비한 교토, 일본 제일의 상업도시 오사카, 아름다운 국제무역항 고베, 도시 전역이 박물관인 나라가 있다.

대한 추위와 함께 전국에 몰아친 한파와 폭설로 바람과 함께 풍랑이 높다는 일기 예보에 걱정이 됐지만, 해운회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할까하는 생각으로 부산항에 도착했다.

▲ 팬스타 써니호의 필리핀 선원들
여객선 터미널은 중고등학생 보이스카우트 단원들과 단체 여행객들로 붐비고 염려스런 눈빛속에 배는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흩뿌리는 비바람이 마음을 심란케 한다.

2만 6천톤에 길이 186m, 화물적재량 5천 8백여톤과 승용차 100대를 싣고 승객정원이 683명이나 되는 팬스타 써니호라지만 동해바다를 건넌다는 게 걱정스럽다. 6명이 정원인 스탠다드 실에는 나를 빼고는 모두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들이다.

▲ 교사인 아빠와 일본을 여행하기 위해 팬스타 써니호에서 저녁을 먹는 창원 용호초등학교 4학년 백송규 군과 일행들
베트남 사이공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윗층 침대에 자리한 학생은 오사카에서 내려 동경 친구와 만나 2주일 정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배편으로 여행하는 4명의 학생들은 16시간이나 되는 뱃길이 불만이다.

오후 4시 항구를 떠난 배가 1시간쯤 지나 외해로 나서자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옆방 여학생들의 “아! 아! 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몸이 대각선으로 서며 균형을 잡는 모습이 영락없는 술 취한 모습이다.

▲ 배가 심하게 흔들려 쓰러진 화분들과 집기들
안전바를 잡지 않고는 마음대로 선실을 돌아다닐 수 없는데도 아이들은 마냥 재미있단다. 시모노세키를 지나는 밤 9시가 넘으면 일본의 내해로 접어들기 때문에 괜찮다는 선원들의 얘기 중에도 선원들의 의자가 한쪽으로 밀려가고 장식용 조화 화분이 넘어진다.

한 선원의 얘기는 “이 배는 큰 배이기 때문에 태풍경보가 내려도 출항하는데, 3년 동안 이 배를 타면서 배멀미하기는 처음이다”고 말한다. 높은 파도와 함께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배가 흔들린다.

▲ 새벽 5시 반, 일본의 어느 이름 모를 섬에 비스듬이 떨어지는 달빛 속에 마을 전등 불빛이 빛난다.
멀미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묻자, “공복 상태에서는 멀미가 더욱 심하며 음식을 적당히 먹고 반드시 멀미약을 복용하거나 붙여야 한다. 멀미가 심하다고 약을 중복해서 먹거나 붙이면 약이 독하기 때문에 머릿속이 텅 빈 치매현상이 일어나므로 절대 중복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외국인 선원이 많이 보여 국적을 묻자, 필리핀에서 왔다는 알드윈 디비나(Aldwin Divina)는 중동의 두바이에서도 근무해봤고 미국에서도 근무했으며 이 배에는 18명의 필리핀 동료가 함께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 사업을 해보겠다는 그는 육상근무보다는 보수가 낫다고 말했다.

▲ 전통 일본식 정원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 있거나 잠을 자는 게 배멀미에 효과가 있다는 말에 나이든 아저씨들이 술자리를 벌이는 옆 빈자리를 잡았다. 젊었을 때는 멋있게 살았다는 그 분들의 얘기.

“늙어서는 부부가 최고다. 늙어서 마누라 일찍 죽으면 남자는 초라해진다.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세상은 수준 차이만 있지 똑같다.”

“물질문명은 가진자와 못 가진자가 생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와 불행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점잖고 배운 분들의 얘기는 급기야 대선결과로까지 이어졌다.

▲ 전통 일본 식당
“지금까지의 정책 중심은 분배가 우선이어서 규제가 심했지만 MB는 성장 중심주의이기 때문에 희망을 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었다.”

멀미로 속이 거북해 잠이 들지 못하고 돌아다니면서 여행객들을 살펴보니 타이타닉 영화속 군상들처럼 각양각색이다. 화투나 포커놀이로 떠드는 사람, 남녀 간에 게임을 하면서 떠드는 사람,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사람... 배 안이 조그만 사회의 모습이다. 화장실은 토한 오물로 역겹다.

▲ 일본의 전통요리인 가이세키요리로 연회용 요리이다. 색과 맛 향을 음식의 기본으로 여긴다.
일제 시대 징용으로 끌려가거나 돈 벌러 가는 선배들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하관’이라 불렸던 시모노세키를 지나니 바다가 잠잠해진다. 새벽 5시 반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세토대교를 보고 싶어서 일찍 났지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다.

바다에 비추는 달빛과 어스름한 어둠 속 섬마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속에 이국이라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몰려온다. 예정된 시각에 오사카항에 도착한 배는 입국 수속하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영국이나 다른 나라는 게이트가 여러 군데나 돼 금방 수속을 마치는 데 일본답지 않다.

외식 프랜차이즈를 개발해 우리나라에 소개하기도 하고 오사카에서 음식점을 하는 재일교포 이삼옥씨(처 외삼촌) 부부가 점심 식사차 데려간 곳은 오사카 히라노에 있는 간코(옹고집)라는 음식점이었다.

▲ 이삼옥씨 부부와 기모노를 입고 서비스를 하는 종업원
왜 하필 이름이 ‘옹고집’이냐고 묻자, 주인이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옛날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접대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기 때문이란다.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자리가 없어 30분이나 기다렸다. 옛날 전통 가옥에 다다미를 깐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에는 비록 펌프장치를 이용하지만 물까지 흐르며 모든 종업원들이 기모노를 착용하고 있었다.

요리는 전통 일본요리인 가이세키요리이다. 이 요리는 정식 일본요리인 혼젠요리나 자카이세키요리에서 유래되었지만, 까다로운 습관이나 요리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요리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지만, 일본에서는 술을 마시고 난 후 식사를 하기 때문에 밥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메뉴는 전채요리, 생선회, 맑은 국, 구이, 찜, 조림, 무침 등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된장국, 야채절임, 밥, 일본 전통과자(와가시), 과일 등의 순서로 이어져, 맨 마지막에 차로 끝난다.

▲ NHK방송국 게시판에 붙여진 모 방송국 방영의 태왕사신기 모습
저녁에 이씨의 가게에서 술 한 잔을 곁들여 얘기하는 데 서비스하는 아줌마의 얘기로는 ‘주몽’, ‘겨울연가’, ‘대장금’, ‘천국의 계단’ 등의 한국 드라마 때문에 일본 아주머니 사이에 한국 드라마 붐이란다. 피곤하여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일본 오사카와 나라 고베 교토를 1월 21일부터 31일까지 혼자서 여행한 경험담입니다. U포터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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