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진상조사기획단, 극우 인사 편향” 여수‧순천 등 지역 반발
“여순사건 진상조사기획단, 극우 인사 편향” 여수‧순천 등 지역 반발
  • 마재일
  • 승인 2024.01.02 17: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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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광양 등 유족‧사회단체‧정치권 “재구성 요구”
“밀실서 졸속 구성…희생자 기만” 반정부 투쟁 예고
▲ 여수시립공원묘지 내 여순사건 희생자의 묘. (사진=마재일 기자)
▲ 여수시립공원묘지 내 여순사건 희생자의 묘.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주도할 기획단에 극우 보수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을 놓고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유족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지역 정치권이 기획단 재구성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실제로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전남도청에서 항의성 기자회견을 하고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은 15명으로, 이 중 단장을 맡은 허만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되는 인사이자, 지난 2019년 국민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사회과학처장은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 철거를 주도했던 실무 책임자로 알려졌다.

남광규 고려대 ‘통일과 국제평화센터’ 센터장(한국보훈학회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올바른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식인 5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양영조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도 한국현대사학회 창립기념 학술대회에 참여했다.

단원인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과 남정옥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5월 3일 ‘대한민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정치적 성격의 보고서일 뿐 4·3을 실체적으로 평가한 연구서는 아니다”라고 깎아내리거나 “4·3 보고서는 좌파 세력들이 불리한 것은 빼놓고 유리한 것은 미화, 과장, 조장하는 기법이 곳곳에 담겨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낳았다.
 

▶ 여순사건유족회 및 시민사회단체가 지난달 28일 전남도청 앞에서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재구성과 김영록 전남지사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여순사건유족회 제공)
▶ 여순사건유족회 및 시민사회단체가 지난달 28일 전남도청 앞에서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재구성과 김영록 전남지사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여순사건유족회 제공)

이렇게 정부가 위촉한 단원 중 편파성 논란이 일고 있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지만, 정작 여순사건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여순사건 특별법의 핵심이자 진실규명 활동의 최종 결과물로, 지금과 같은 인적 구성으로는 제대로 된 보고서 작성을 기대할 수 없고, 결국 70여 년 만에 제정한 특별법까지 무용지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유족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정치권은 밀실에서 졸속으로 구성된 기획단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유족들은 국가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반정부 투쟁을 예고하는 한편 행동에 나섰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8일 전남도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 단체는 성명에서“(김 지사가)여순사건위원회의 중앙위원이자, 실무위원장으로서 지역의 목소리와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고 관철해달라”며 “전남 동부지역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유족회와 간담회 한 번도 안 할 정도로 여순사건에 대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어 “만약 도지사로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에 대한 도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책임을 방임한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퇴진 운동도 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도지사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성명서에는 여수, 순천, 광양, 고흥, 구례, 보성 등 전남 동부 시군 유족회와 시민사회단체 등 62개 단체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신고 기한 연장‧조사인력 확충‧예산지원 필요”

여수시의회도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의회는 2일 여순사건 최초 발생지인 여수시 신월동에서 전체 의원 26명 24명이 참여한 가운데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로 즉시 재구성할 것과 진상규명 조사 기간을 연장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성명에서 “정부의 기획단 위촉직 대부분은 여순사건의 역사·시대적 인과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며 뉴라이트 활동 등 극우·보수적 이념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공공연히 역사 왜곡에 앞장선 인사들로 채워졌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여순사건 특별법의 최종 결과물이자 국가의 공식 입장 기록인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과 구성을 작성하는 기획단원의 정치적 성향과 역사 인식은 보고서의 서술 방향과 내용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의회는 기획단을 여순사건 법이 규정하고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 있는 인물들로 즉시 재구성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또 기획단 구성이 1년여 늦어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마감일을 1년 연장함과 동시에, 조사인력 확충과 예산지원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여수시의회 의원들이 2일 여순사건 최초 발생지인 여수시 신월동에서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재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여수시의회 제공)
▶ 여수시의회 의원들이 2일 여순사건 최초 발생지인 여수시 신월동에서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재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여수시의회 제공)

앞서 전남지역 국회의원, 순천지역 사회단체,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의당 전남도당, 광양시의회 등도 여순사건의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재구성을 촉구했다.

전남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구성에 강하게 반발하며 재구성을 촉구했다. 국회의원들은 진상조사를 위한 인력 확충과 예산 배정 등을 외면한 정부가 이제는 여순사건의 진실까지 덮으려는 시도를 자행하고 있다며 즉각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을 새롭게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여순사건순천유족회, 순천시체육회, 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이통장협의회 등 10개 순천지역 사회단체는 지난달 21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또다시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며 “기획단의 구성이 매우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여순사건의 본질을 규명할 학계 및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올바른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유족과 국민을 무시하고 ‘이념’이라는 올가미에 가두려는 속셈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더 이상을 국민을 이념으로 나눠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이번 밀실 선정에 대해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민통합에 솔선수범할 것”을 요구했다.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지난달 22일 성명에서 “이번 인선은 그동안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위원회가 추천한 인사들을 제외해 여순사건 전문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고 제주4.3사건을 부정한 극우 인사도 포함돼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을 토벌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제14연대 군인들이 거부하면서 발발했는데, 원인이 된 제주4.3사건을 부정하는 인사가 포함돼 있다면 진상조사보고서의 방향과 내용이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작금의 실태를 보면 윤석열 정부에게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 지난 200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동 한화공장 정문에서 열린 여순사건 60주기 위령제. (사진=남해안신문 DB)
▲ 지난 2008년 10월 19일 여수시 신월동 한화공장 정문에서 열린 여순사건 60주기 위령제. (사진=남해안신문 DB)

정의당 전남도당도 지난달 26일 논평에서 “기획단에서 당연직과 유족 대표를 제외한 위촉직 9명 중 4·3 보고서를 왜곡하거나, 박근혜 정부 국정 역사 교과서 지지,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주도 인사가 포함됐다”며 “유족과 지역 시민단체가 요구한 여순사건 연구 학자 중심의 기획단 재구성”을 촉구했다.

전남도당은 “역사를 정치적이고 편향되게 해석해 온 인사들에게 진상조사보고서를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념 갈등 속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인 여순사건에 대해 제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우려했다.

광양시의회도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어 정부에 ▲편향된 이념으로 역사를 왜곡해온 인물들로 구성된 기획단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들로 즉각 재구성할 것 ▲여순사건 특별법의 제정 취지와 목적을 외면하지 말고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 등을 촉구했다.

한편, 2여 년간 실시됐던 여순 10·19사건 희생자·유족 신고가 지난달 종료했지만, 현재 신고 건수는 7,300여 건, 희생자와 유족으로 결정된 사례는 6%인 430여 건에 불과하다. 이에 신고 기한과 여순사건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는 신고 기한을 2년,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기한을 1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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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2024-01-02 17:44:52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