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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종결일은 1955년 4월 1일”
주철희 박사 31일 여수사건 특강서 주장
2017년 09월 04일 (월) 09:30:49 박태환 기자 seano71@nhanews.com

여순사건 연구자인 주철희 박사가 “여순사건의 종결일은 1955년 4월 1일로 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여순사건 종결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언급한 적이 없다.

주 박사는 지난달 31일 여수 해안통 갤러리에서 가진 ‘여순사건과 불량국민들’ 제1강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주 박사는 여순사건 기간과 관련해 “여순사건은 발단일은 기록 돼 있지만 언제 종결됐는지 기록조차 남겨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주 4.3항쟁은 1947년 3월 1일 발단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종결됐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 기록이 1980년대 이후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의 노력으로 이어져 2000년 1월에 ‘4·3특별법’이 공포되고, 이에 따라 8월 28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돼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됐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2003년 10월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 박사는 “하지만 여순사건의 경우 1948년 10월 19일 발단일 만 있을 뿐 종결됐다는 기록이 없다”며 "지리산과 백운산의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이 사실상 여순사건의 종결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확한 기록의 토대로 제주는 반란 지역이라는 굴레를 벗으면서 제주 4.3 항쟁으로 남아 봉기를 일으켰던 제주 민중들의 명예를 회복 할 수 있었지만 여수와 순천은 여전히 반란의 지역으로 치부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철희 박사의 두 번 째 강좌는 오는 7일 오후 7시 해안통갤러리에서 '항쟁과 반란의 시각' 이라는 주제로 시민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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