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필리핀에 심다
여수의 사랑, 필리핀에 심다
  • 이상율 기자
  • 승인 2008.08.21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구촌사랑회 두번째 사랑이야기-2]
29일 아침은 좀 느슨해졌다. 10시에 약품을 인계받아 오후부터 진료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이 진료준비를 하는 동안 교류 협력단은 말발랑 초등학교를 찾았다. 컴퓨터 20대를 기증하기 위해서다.

학생과 교직원 5백여 명이 모여 간단한 기증식에 이어 농구공 20개도 선물했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빈민가에 설립된 이 학교는 학생 수가 2천여 명, 낮에는 초등학교 저녁에는 하이스쿨(중.고교)로 활용되고 있다.

전산 교실에는 약 8년 전에 설치했다는 컴퓨터가 10대. 그 중 6대가 고장으로 쓰지 못해 4대로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다. “베네디따 얀클리노” 교장선생은 교육환경을 크게 개선해준 진정한 봉사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이어 거리 부랑아를 수용하는 파리안 드롭인 센터(청소년의 집)를 찾아 컴퓨터 20대와 농구공 20개를 선물했다.

청소년의 집에 컴퓨터 기증

의료진은 말발랑 체육관에서 진료 직전 배달된 점심을 들고 1시부터 진료에 들어갔다. 치과는 파라도 헬스 센터(구 보건소)에서 오전 진료를 끝내고 합류해 약국을 도왔다. 오후 진료에는 시스템 일부를 개편했다.

내과 박기주 원장 곁에 약국을 개설, 한인회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세부에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정은영(전 한강성심병원간호사)양과 박인영 양을 배치하여 조제를 맡겼고 소아과 유상열 원장은 사용빈도가 높은 약을 소아과 코너에 진열하고 직접 지급하는 등 진료 과목별 간이 약국을 개설 즉석 조제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약국으로 몰리는 환자를 분산시킬 수 있어 더욱 효율적인 운영이 되게 했다. 이날도 약 1천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불볕더위 진료는 모두 비지땀을 흘리고 지치게 한다. 정해균 부시장이 더위를 식힐 청량한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스박스, 얼음, 타올 30여 개를 사와 냉동시킨 후 종사자들의 목에 두르게 했다. 손수 냉수에 적신 수건을 짜들고 진료진들의 목에 걸어 주느라 바쁘다. 더위를 식힐 수 있어 한결 수월하다.

어제 세부 시청에 이를 부탁했으나 진행이 되지 않아 정부시장이 청소년의 집 방문 후 직접 사들고 온 것이다. 이어 막대 사탕을 들고 나와 부모를 따라 이곳을 찾은 어린이들의 손에 쥐여준다. 먼저 받아든 어린이가 형제, 자매, 동무들에게 입소문을 내 금세 많은 어린이가 벌떼처럼 모여든다. 이미 사탕이 동났다. 마치 잔칫집에 다녀온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떡을 건네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오후 5시쯤 진료를 끝내고 남은 약품은 작성된 리스트의 약품 번호를 약봉지에 표기하고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을 한 후 5개 보건소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소년. 소녀의 집에 나누어 주었다. 소년. 소녀의집은 “알로이시오 슈월쓰” 신부가 창설 보육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 선수 골키퍼 김병지 선수가 부산 소년의 집 출신이어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필리핀에는 마닐라와 세부에 각각 소년의 집과 소녀의 집이 있다. 마리아 수녀회가 3세~18세까지의 소년, 소녀를 돌보고 있다.

필리핀에는 마닐라와 세부에 이 시설이 있다. 소년의 집은 2,400명이 소녀의 집에는 3,340명이 수용되어있는데 월수입 3,000페소 미만, 자녀 5인이 넘는 극빈 세대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전형을 거쳐 선발된다. 하이스쿨 과정을 이수 시키는데 재봉, 컴퓨터, 일렉트리, 전자, 회계, 타이핑, 요리 등의 교과목으로 졸업 후 취업률이 높아 인기다. 세부 소녀의 집은 한국인 이 에밀란 수녀가 원장으로 있다.

여수 지구촌 사랑나눔회는 작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나이지리아에 이어 올해는 여수의 사랑, 아시아로! 에 약품 160종(3천만 원상당), 중고 컴퓨터 80대,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4세트, 컴퓨터 책상, 의자 80세트 농구공 80개, 에어펌프 4대, 샤프 볼펜 800개, 사탕 3,300개, 티셔츠 50벌, 노트 1,000권, 헌옷 2 BOX 등의 약품과 선물을 4개 학교 등에 전달하고 공식적인 봉사활동을 끝냈다.

한인 급증, 영사관 설치 시급

저녁에는 한인회가 주관하고 “오커스토 고” 명예영사가 주최 한 만찬에 초청됐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세부이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영사관은 없고 현지 유력인사를 명예영사로 임명하여 운영하고 있다. “오거스트” 명예영사는 세부의 중국계 유력인사로 한국인의 지위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한다. 날로 늘어나는 한국인을 위해 영사관 설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세부(Cebu)를 남국의 여왕도시다. 세부 섬은 마닐라 동남쪽으로 560Km 지점의 비사야 섬들 사이에 있으며, 길이가 200km, 인구가 300만 명에 이르는 필리핀 제2의 도시가 있는 섬이다. 세부 섬은 무역의 중심지로 경제적으로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매우 독창적이고 많은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스페인 식민지 통치 330년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며 필리핀에서 가장 먼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며 마닐라 이전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이고 스페인 침략에 맞서 싸워 이긴 유일한 승전 지이기도 하다. 눈앞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남국의 야자수가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휴양지이기도 하다.

세부 시내 시가지는 버스는 보이지 않고 “찌프니”가 시내를 누비고 있다. 찌프니는 찦차를 개조한 것으로 10여명에서 약 20명까지 탈 수 있는 미니버스로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다. 06D, 06F, 14D, 07K, 07B, 07C 등 방향과 노선을 구분하는 표시판을 달고 다양한 색깔로 치장 돼있다. 낭원을 이루면 조수는 차 뒤에 매달려있기도 한다.

시내 곳곳에 한국어 간판이 눈에 뛴다. 고구려, 고동리, 미도 스파, CIA 어학원, 하나투어, 가야한의원, API치과, 조선갈비집, 황궁, 한국인 전용PC방, 유희정 등 짧은 도시풍경에서 한글 간판이 적잖게 보인다. 주말이면 3천여 명의 한국인이 찾는 관광 도시여서 각 분야별로 진출해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어학 연수원만도 50여 개소, 그중에는 20여 개소만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나머지는 유령 어학원도 많다는 것이다. 어학연수 붐이 일면서 세부를 찾는 학생들이 날로 늘고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교민의 설명이다. 어학연수는 뒷전이고 밤이면 성인 디스코텍에 몰려 필리핀 남자들과 열기 있는 밤을 보내는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 아버지를 둔 어린이를 안고 온 여성 환자를 진료하게 된 내과 박기주 원장은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과 어린이를 버리고 간 한국 남성을 원망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나에게 천사를 선물 한 사람이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사람이 이 귀한 천사를 볼 수 없으니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미워할 줄 모르는 필리핀인들의 순진함을 엿볼 수 있다. 세부도 월남의 “라이따이한”과 같은 일그러진 한국인들의 모습이 더욱 번지지 않을까 염려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