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경계선 지능인 통계·교육·자립 지원 사실상 전무…조례 무색
여수 경계선 지능인 통계·교육·자립 지원 사실상 전무…조례 무색
  • 마재일
  • 승인 2024.03.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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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경계선 지능인 실태 파악 안 돼
▲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아동·청소년 프로그램.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아동·청소년 프로그램.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지능지수 71~84 사이를 일컫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제도적 지원이 거의 없어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 사회에서는 부적응자나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등 차별과 편견에 노출돼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동, 어른 돼도 제도 사각지대 방치
국내 약 565만 명~667만 명 추산돼
법 국회서 계류…일부 지자체 적극적

제도적 지원이 없는 탓에 경계선 지능인이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다. 현재 여수지역에 아동을 포함한 경계선 지능인이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 등은 여수시도, 교육청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있을 리 만무한 상황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 장애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인지능력 또는 학습 능력 등의 부족으로 인해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아동의 경우 예전에 ‘지진아’라고 했으나 현재는 경계선 지능 아동 또는 느린 학습자로 부른다.

경계선 지능인은 표준화된 지능검사에서 지능지수가 71~84 사이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통상 지능지수가 85 이상이면 평균 범주에 속한다고 보지만 지능지수 70 이하는 지적 장애로 분류한다. 이들 대부분은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적절한 상황 판단,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이 서툴러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현재 지능지수 정규 분포도에 따라 경계선 지능인 규모를 추산하고 있는데 선진국의 경우 인구의 11~13%가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하면 국내 경계선 지능인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565만 명~66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될 뿐 공식 통계는 없다. 이 중 전국 초중고의 경계선 지능 학생은 67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에서 직업 소양 교육을 받고 있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 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에서 직업 소양 교육을 받고 있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 경계선 지능인 부모 자조모임.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 경계선 지능인 부모 자조모임. (사진=서울시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지원센터 홈페이지)

국내에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법률이 없다. 관련 지원이나 연구 또한 많지 않고, 정부 정책으로부터도 소외되는 실정이다. 아동복지시설의 아동 또는 자립 준비 청년 중 경계선 지능인에게 사례관리 서비스 정도만 제공되고 있으며 양육인으로서의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사실상 없다.

그러다 보니 경계선 지능인 아동은 물론 졸업한 경계선 지능인들이 사회로 진출하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들 중 일부는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 사회에서는 부적응자나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기도 한다. 특히 성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경계선 지능인 관련 법령은 ‘초중등교육법’에 성격 장애가 있거나 지적 기능이 떨어져 학습에 제약받지만,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는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 정책을 마련하라는 대목이 있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지적 능력이 지능지수 71~84로 자립 능력이 부족한 경우 위탁가정이나 각종 아동복지시설의 보호기간 추가연장 대상으로 규정한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은 복지부가 제공하는 맞춤형 사례관리 서비스가 있다. 돌봄 종사자가 1년간 최대 50회까지 인지 학습과 사회성, 정서, 자립 등에 대한 서비스와 학업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 경계선 지능 청소년 예술활동. 서울 노원구는 오는 6월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평생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한다. (사진=서울 노원구청)
▲ 경계선 지능 청소년 예술활동. 서울 노원구는 오는 6월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평생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한다. (사진=서울 노원구청)

서울시는 지난 2022년 6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 대상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해 운영 중이다. 경기도 역시 조례를 제정한 이후 경계선 지능인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인식 확산을 위한 시범사업, 기본 계획 수립과 시행을 위한 정책연구용역 등을 했다.

서울 노원구는 오는 6월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설립한다. 센터는 사무실, 교육장, 상담실 및 휴게공간 등을 갖춘다. 노원구는 전국 최초의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위한 예술 대안학교인 ‘예룸예술학교’와 ‘노원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가 운영 중인 건물에 센터를 조성해 청소년은 물론 성인 경계선 지능인과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치권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국회의원이 지난해 4월 경계선 지능인의 생애주기별 지원을 위한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의힘 최영희 국회의원도 지난해 6월 경계선 지능인에게 필요한 평생교육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이 계류하면서 여수시를 포함해 조례를 제정한 약 77개의 지자체가 정책 수립 및 추진에 난항을 겪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실시한 ‘초등학생 경계선 지능 실태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지원방안을 올해 상반기에 발표할 계획이다.
 

▲ 여수시 느린 학습자 평생교육 지원조례를 발의한 여수시의회 정신출 의원. (사진=여수시의회)
▲ 여수시 느린 학습자 평생교육 지원조례를 발의한 여수시의회 정신출 의원. (사진=여수시의회)

시, 지난해 12월 조례 제정
강제성 없어 구속력 떨어져
실태조사 등 내년에나 계획

여수시가 상위법 제정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생애주기별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여수시 느린 학습자 평생교육 지원조례’가 제정됐다. 조례에는 정책 목표 및 추진 방향, 지원 사업 계획‧추진 방법, 소요 재원과 재원 조달 방법, 교육 프로그램 개발 운영, 가족‧관련 종사자 교육, 인식개선 사업 운영 지원 등 내용이 담겼다. 특히 경계선 지능인 생애주기별 실태조사와 경계선 지능인 지원을 전담하는 센터 설립을 명시하고 있다.

여수시는 올해 민간보조 공모 사업으로 ‘장애인 평생학습 프로그램 운영’ 예산 1,500만 원을 반영했다. 현재 느린 학습자는 장애인이 아니다. 정책의 기초가 되는 실태조사 등 정책 수립 관련 예산은 세우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내년 본예산 반영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조례를 발의한 정신출 여수시의원은 “진로와 사회적응에 대한 별도의 학습이 필요한데도 제도권 밖에 방치돼 충분한 관심과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들을 자녀로 둔 부모와 가족들은 차라리 장애 등록을 고민하는 등 사회의 편견 속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현장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되면서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일선 교장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학급당 2~3명씩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방치하면 학습 부진아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태를 파악하고 정책 방향 수립,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조례를 만들었는데, 여수시가 미온적이어서 안타깝다. 상위법이 아직 없다 하더라도 시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한 조례가 강제성이 없다 보니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여수시 느린 학습자 평생교육 지원조례’ 문구를 살펴보면 ‘~해야 한다’가 아닌 ‘~할 수 있다’가 대부분이다. 시 집행부 의지가 미온적이면 정책 추진이나 지원도 더딜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여수시청. (사진=마재일 기자)
▲ 여수시청. (사진=마재일 기자)

입법조사처, “경계선 지능인 복지 사각…체계적 지원 필요”

국회입법조사처는 경계선 지능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관련 실태조사와 입법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입법조사처 박진우 입법조사관보는 지난해 6월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경계선 지능인은 어린 시절 조기에 발견해 당사자 특성에 맞게 치료하고 교육하면 인지능력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지만 조기에 문제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라서 대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경계선 지능인이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성인기에 접어들면 구직이 어렵고 직업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부적응으로 인해 지속적인 근로가 힘들어 자립이 쉽지 않다”고 했다.

박 입법조사관보는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조기진단 시스템, 특성에 맞는 교육, 자립을 위한 사회성 훈련, 맞춤형 직종 진단, 직업훈련, 가족 등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경계선 지능인의 생애주기별 특성과 복지 욕구를 반영해 전반적인 지원 사항을 담은 법률 제정을 제안했다. 그는 “경계선 지능인의 치료와 교육 등을 위한 비용을 가족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어 이에 대한 지원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단기간에 마련되기에는 어려우니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정보 제공 및 부모 교육, 부모 상담 서비스 등을 우선 하면서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허민숙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지난 1월 22일 발간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지원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에서 경계성 지능인 한부모 가족 지원에 대해 검사 비용 지원, 사례관리 지정, 가정방문 서비스 의무 제공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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