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여수 건설 현장, 원인도 있고 대안도 있다
늙어가는 여수 건설 현장, 원인도 있고 대안도 있다
  • 마재일
  • 승인 2024.03.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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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 청년층 유입 적어 기능 인력 고령화 심각
빈자리 외국인 노동자 메워…지역 건설 위협‧위기
“건설기능학교 설립, 체계적인 숙련인력 육성 절실”
▲ 여수지역 건설 현장 모습. (자료사진=남해안신문 DB)
▲ 여수지역 건설 현장 모습. (자료사진=남해안신문 DB)

청년층의 기피로 여수지역 건설 현장 인력이 노령화하면서 기능인력도 크게 부족해지고 있다. 부족한 건설 현장 일손은 외국인 노동자가 메우면서 안전사고 우려는 물론 현장 기술을 전수할 인력이 없다 보니 여수지역 건설 현장의 미래까지 암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지역 건설업계와 여수시의회 등에 따르면 건설근로자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다양한 생산물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작업 조건에서 근무하므로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기능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능인력이 대부분 주요 현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푸집, 철근 온수온돌 공사, 방수, 실내건축, 건축 도장 등에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기능인력이 필요하지만, 청년층이 건설 현장에 유입되지 않으면서 건설근로자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가 발표한 지난해 12월 기준 건설 기능인력의 평균 연령은 51.1세이며 주축 연령대는 50~60대(61.7%)로 조사됐다. 60대 이상 건설노동자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주축 연령대의 고령화와 청년층 유입이 저조한 결과다. 2015년 고용노동부가 낸 ‘건설 현장 노동력 현황 조사 및 그에 따른 정책시사점 도출’ 보고서를 보면 청년층의 건설 현장 진입 기피 원인으로 건설노동자들은 직업 전망 부재, 일자리 불안, 작업환경 열악, 연간 저임금 등을 꼽았다.
 

▲ 건설기능인력 연령대별 구성비. (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홍보센터 자료실)
▲ 건설기능인력 연령대별 구성비. (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홍보센터 자료실)

이 때문에 여수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안전사고 우려를 낳고 있다. 골조작업 등 상대적으로 고강도의 근력이 필요한 알폼(알루미늄 거푸집) 설치 작업의 경우, 내국인은 물론 외국 근로자조차 기피 현상이 심해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사실상 현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숙련된 기술을 전수할 내국인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철근 누락 사태’ 등 부실 공사의 근본 원인이 ‘만성적 인력 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청년 유입 부족으로 고령화가 심화하고, 숙련공 부족으로 시공 품질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인력난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달라 갈등이 발생하는 등 ‘급한 불 끄기’ 일뿐 중장기적인 방안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건설 현장 진행이 외국 노동자 없이는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견되면서 미래의 여수지역 건설 산업에 악영향은 물론 존립마저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청년층 진입이 중단되고 중년층이 줄고 노년층이 증가하면 건설 현장의 숙련인력 기반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는 생산물의 품질, 생산성 저하는 물론 미래 건설 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지난 4일 열린 여수시 지역건설기능인력 육성 및 지원조례 제정 정책토론회. (사진=여수시의회)
▲ 지난 4일 열린 여수시 지역건설기능인력 육성 및 지원조례 제정 정책토론회. (사진=여수시의회)

젊은 숙련 기능인력 사라지면 저품질 건축물 생산‧부실 공사‧산재사고로

이에 따라 여수국가산단을 비롯해 여수지역의 관급·민간 건설 현장에서 민관협력을 통해 건설기능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기능학교 설립이 절실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수시의회 이미경 의원은 지난 15일 제235회 임시회 1차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여수시에 건설기능인력 양성 등을 위한 건설기능학교 설립을 주문했다. 이 의원은 “건설 산업은 200만 명이 고용되는 기간 산업인데도 주요한 축을 담당하는 건설기능인의 관심이 점점 줄고 있다”며 “민간협력을 통한 건설기능학교 설립으로 고령화한 건설인력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건설노동자 수요가 많은 서울, 성남, 안산 등 수도권에서는 건축 공사의 핵심 직종인 형틀목공과 철근공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건설 기능훈련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2030 젊은 건설노동자들을 비롯해 많은 건설노동자가 지역 건설 현장에서 건설기능인으로 성장해 품질시공‧고용 안전 등에 기여하고 있다. 이 의원은 “여수시 청년인구 감소와 안전사고 등의 문제해결을 위한 건설기능학교가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 2021년 제12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우수상 박정란 씨의 ‘여명의 근로자들’.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 2021년 제12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우수상 박정란 씨의 ‘여명의 근로자들’.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이미경 의원은 지난 4일 주재현‧문갑태 의원, 전국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건설노조 전남건설지부 준비위원회와 함께 ‘여수시 지역 건설기능인력 육성 및 지원조례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어 대안을 모색했다. 이날 주제 발제자들은 “건설 숙련인력 육성체계 구축은 품질·안전·생산성·지역경제를 위한 초석이자 지속 가능한 인프라”라면서 기능인력 육성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심규범 건설 고용 컨설팅 대표는 “건설 기능인력의 고령화 심화는 품질·안전·생산성·일자리·지역경제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20·30대의 진입 촉진과 숙련인력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 숙련인력 육성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지자체 조례를 만들고, 직종별 임금 하한 설정(적정 임금제 활용), 적정공사비 확보 및 전달, 현장 연계 교육훈련 프로그램 마련, 기능인력 보유 요건을 건설제도에 반영(기능 등급제 활용), 건설 기능 훈련기관 설치 운영, 취업 지원 네트워크 구축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광민 전남건설지부 준비위원장은 “건설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건설기능인을 육성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부실 공사, 산재사고는 괜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숙련된 젊은 기능인력이 사라진 건설 산업은 저품질의 건축물을 생산하고 부실 공사 및 산재사고로 이어질 뿐이다”고 말했다.
 

▲ 2021년 제12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장려상 박재현 씨의 ‘브이’.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 2021년 제12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장려상 박재현 씨의 ‘브이’.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이 위원장은 여수지역 건설 산업의 실정을 언급하며 건설 기능인력 육성과 기능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여수시는 세계 1위 규모의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단’이 1967년부터 조성돼 현재까지 60년 가까이 유지해 오고 있다. 여수시민은 ‘죽음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여수국가산단과 함께 불안이 일상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노후화한 생산시설로 인한 폭발사고에 수많은 지역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여수국가산단에는 숙련된 건설기능인이 일해야 한다. 의사소통도 안 되는 외국인력이 ‘죽음의 화약고’라는 국가산단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을 자초할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여수국가산단을 비롯해 관급·민간 건설 현장에서 여수지역의 건설노동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기능학교 설립은, 늦었지만 꼭 필요하다.

정부는 석유화학, 철강, 발전소 등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 기반 산업인 플랜트 건설 현장에도 외국인력 채용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여수국가산단을 비롯한 플랜트 건설 현장은 크게 보면, 토목건축 공사 현장(20%)과 플랜트 공사 현장(80%)으로 나뉜다. 토목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는 형틀목공, 철근공 등이며 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는 배관공, 용접공 등이다. 플랜트 공사 현장의 숙련된 건설노동자는 노동조합과 사설 훈련기관을 통해 충분히 육성되고 있다. 하지만 토목건축 공사 현장의 숙련된 건설노동자를 육성하는 훈련기관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여수국가산단 토목건축 현장에 숙련된 젊은 기능인력 투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여수 건설기능학교는 건설 현장 개선에 교두보가 될 것이다. 불법 하도급 근절, 사회 인식개선, 고용안정, 노동안전 등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능인력 현장 진입으로 ‘시다우께(하도급업자)’ 등의 중간 착취 구조가 사라지고, 교육과정에서 속도전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며, 기능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사회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안산 건설기능학교 거푸집 해체 실습 모습. (사진=안산 건설기능학교 블로그)
▲ 안산 건설기능학교 거푸집 해체 실습 모습. (사진=안산 건설기능학교 블로그)

‘오야지’ 중심의 비공식‧무형식 학습 기술 전수
작업환경 안전‧고용안정 등 교육훈련 체계 필요

조은석 전국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국내 건설 산업은 그동안 노동의 질을 주목하지 않았다. 노동 생산성이 국제적 비교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던 것이 원인일 수 있지만, 체계화되지 않은 교육훈련의 결과가 뼈대 없는 순살 아파트 등 건축물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조 국장은 이어 “산업 설비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건설 산업이 제값을 주고 버틸 수 없는 저숙련 균형(저임금‧저생산‧저숙련) 상태임을 방증한다”면서 “이는 일용 고용이 대부분인 건설 산업에서 사업주에 의한 기능훈련은 항상 과소 공급되고 교육훈련의 외부성이 항상 일어나는 만성적인 시장실패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건설 산업에서 공식 사업주가 아닌 비공식 사업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오야지(현장 반장) 중심의 팀 단위에서 이뤄지는 비공식 학습이나 무형식 학습을 통해 교육훈련이 이뤄지고 기술이 전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저임금‧저숙련 균형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2022년 제13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장려상 이민규 씨의 ‘형태의 단합’.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 2022년 제13회 사진·영상 공모전 건설근로자 부문 장려상 이민규 씨의 ‘형태의 단합’. (사진=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

해외는 어떨까. 독일은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사회협약에서 노사 간 협의·참여가 활성화되고 있고, 미국은 지역별 교육훈련 수요·공급에 대한 고려를 통해 지역별 교육훈련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건설 기능인력을 육성하고 있다.

조 국장은 “고용을 담당하는 사업주가 기능학교에서 배출된 인력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기능훈련 체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교육훈련 제공과 자격 인증에 사용자가 참여한다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조 국장은 또 “교육훈련 체계가 없더라도 건축생산은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 일자리는 위험하고, 대우받지 못하고, 직업 전망이 없는 나쁜 일자리, 기피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면서 “높은 임금과 안전한 작업환경,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여수시민과 청년들에게 제공하겠다면 교육훈련 체계가 꼭 필요하다. 여수시가 운영하는 기능학교가 고숙련 균형으로 가는 마중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여수시는 “조례 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건설기능학교 설립은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갖게 되므로 시민 공감대 형성, 정부의 관련 정책 방향, 대상자 수요 파악, 일반 시민의 범위 대상 설정, 시민 혜택, 광역자치단체의 협력, 법률적용 등의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경 의원은 “건설업계의 고령화는 빠르고 심각해 생산성·작업능률·지역경제를 어둡게 한다”면서 “여수시는 더 적극적으로 숙련직 기능인력 양성 대책 수립과 청년 기능인력 유입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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