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바람과 나무가 지켜온 섬, 여수 횡간도
바다와 바람과 나무가 지켜온 섬, 여수 횡간도
  • 마재일
  • 승인 2023.12.01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령화와 어획량 감소 등으로 변화의 갈림길에 선 여수의 섬마을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가고 싶은 섬’을 넘어 ‘살고 싶은 섬’으로 떠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 횡간도 전경. (사진=심선오)
▲ 대횡간도(앞)와 소횡간도(뒤) 전경. (사진=심선오)

여수 유일 관왕묘 사당‧수백 년 노거수 등 문화·생태자원 풍부
고령화‧어자원 감소로 쇠락의 길…선진지 견학 등 주민들 똘똘

멸치 등 풍족한 어족 자원으로 명성을 얻은 영광을 뒤로하고 쇠퇴해가는 고향을 되살릴 방안을 고민하며 새로운 길 찾기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전남 여수시 남면 횡간도 주민들은 그동안 스스로 섬을 가꾸기로 뜻을 모아 인생박물관과 마을 역사관, 마을 동화책, 사계 사진첩 등의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몇 차례의 고비가 있었지만, 주민들의 노력과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지난해 11월 돌산 송도와 함께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횡간도는 5년간 50억 원이 투입된다. 마을식당·펜션, 둘레길 조성 등 관광 기반 시설 확충과 체험 행사 발굴, 주민 역량 강화 교육 등을 통해 생태 여행지로 조성된다.

횡간도는 대횡간도, 소횡간도 2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섬에 나무가 없어 벌거벗은 모습 또는 비스듬한 섬이라는 뜻으로 ‘큰 빗깐이’, ‘작은 빗깐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바다에서 화살을 쏘면 이 섬이 막고 있어 빗겨 나갔다 해서 ‘횡간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대횡간도는 풍물놀이, 여수 유일의 관왕묘 사당 등의 문화유산과 후박나무 군락지 등 생태자원도 풍부하다. 700년 수령의 소나무와 300년 이상 수령의 후박나무와 느티나무 등 수백 년 노거수가 수두룩하다. 놀이청 각석문, 구전설화 등을 활용해 ‘쉼과 이야기가 있는 섬’으로 꾸밀 계획이다.
 

▲ 마을 주민들이 약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옆 정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마을 주민들이 약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옆 정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의 후박나무 군락지.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의 후박나무 군락지. (사진=마재일 기자)

수군 궁술 연마장인 횡간도 놀이청은 고려 말 삼별초 장수들이,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수군 장수들이 궁술 연마장으로 사용했다. 이순신 장군도 전란 중에 이곳에서 궁술을 연마한 그것으로 전해진다. 놀이청 각석문은 전라좌수사·군관·순천부사·방답첨사 등이 암반에 새긴 것이다.

대횡간도는 돌산도, 화태도, 개도, 백야도, 화양면 곡화목장과 함께 말을 사육했던 곳이기도 하다. 마을 당제는 목장이 설치되자 국가 차원에서 말의 성장과 번식을 기원하던 말 신앙이 민간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집 제실에는 백지에 용마가 그려져 있고 흙으로 만든 말 2마리가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당제는 1980년대 초 교회가 들어오면서 중단됐다.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관왕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장수를 관우를 모시는 여수지역 유일의 사당이다. 어업이 생계였던 주민들에게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며 섬 주민의 화합을 다지는 중요한 풍속이었다. 조선 말엽부터 마을 주민들이 사당을 건립해 제사를 지냈으며 관왕묘에서는 일 년에 경칩과 상강 두 차례 제를 올렸다. 현재 관왕묘 건물은 해방 후 중수한 것으로, 내부에는 1914년 제작한 관우의 벽화가 걸려있다. 한국의 동제인 말 신앙(馬信仰)과 중국의 관왕 신앙이 복합된 의례로, 보존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고령화와 재정 부족 등으로 1990년대 초 명맥이 끊겼고, 사당도 방치돼 있다.
 

▲ 횡간도 당집.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 당집. (사진=마재일 기자)

전라좌수영의 제반 사항을 수록한 책 ‘호좌수영지’에는 횡간도에 잠수군(潛水軍)이 상주하며 말린 전복과 생전복을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횡간도 신갱이파래는 맛이 독특해 궁중에 진상될 정도였다.

작은 섬마을치고 미로처럼 형성된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눈길을 끈다. 바닷바람 쐬며 섬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길에 돌산과 화태, 나발‧소두라도 등 주변 섬을 구경할 수 있다. 횡간도는 돌산 군내리에서 도선이 하루 5회 송도, 월호, 독정, 대두라, 나발, 월전 등을 기항하며 운항한다.

횡간도는 미군 폭격으로 주민이 숨지는 등 굴곡진 역사를 품고 있다. ‘두룩여 미군 폭격 사건’은 1950년 8월 9일 두룩여(문여, 횡간도~금오도 사이) 해상에서 조기잡이 어선 100여 척이 미군 공중 공격으로 많은 어부가 사망(최소 14명)하고 부상했다. 횡간도 주민도 당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관통상을 당해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두룩여’ 사건의 피해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 서한선 횡간도 이장. (사진=마재일 기자)
▲ 서한선 횡간도 이장. (사진=마재일 기자)

서한선 이장 “쇠락해가는 마을, 우리 스스로 바꾸고 싶었다”

서한선(72) 횡간도 이장은 가고 싶은 섬 선정은 쇠락해가는 마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주민들이 고민하고 힘을 합친 결과라며 “관광객이 오게 하는 것도 좋지만, 섬 특성상 연로한 주민들이 많은 만큼 무엇보다 생활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주민 편의 위주로 마을을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횡간도는 여느 섬처럼 고령화와 어획량 감소 등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서 이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멸치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크게 줄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횡간도는 어업과 농업을 겸하지만, 대부분 멸치잡이와 어류양식,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멸치는 힘과 손이 많이 가는 어종인데 나이가 들어서 못 하고 농사는 소일거리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가에서 주는 노인 연금으로 생활하고 병원도 다닌다”고 말했다.

▲ 횡간도 마을 주민들의 선진지 견학. (사진=주민 제공)
▲ 횡간도 마을 주민들의 선진지 견학. (사진=주민 제공)
▲ 횡간도 마을 주민들의 선진지 견학. (사진=주민 제공)
▲ 횡간도 마을 주민들의 선진지 견학. (사진=주민 제공)

횡간도는 섬 주변의 조류가 빨라 주민들의 70~80%가 전통적인 멸치잡이 방식인 낭장망 어업으로 명성을 크게 얻었던 곳이다. 동네 개도 만 원을 물고 다닐 정도로 부촌이었다. 주민들은 멸치잡이에만 그치지 않고 1980년대 초 기르는 어류양식을 시작하면서 탄탄한 소득 기반을 다졌다. 조류가 빠른 대횡간도와 화태도 사이, 돌산도와 횡간도, 대·소횡간도 사이의 해역에 낭장망을 설치해 멸치를 잡았다. 이곳에서 잡은 멸치는 맛이 뛰어나 다른 지역 멸칫값보다 비쌌다.

그러나 지금은 4가구만이 낭장망 어장을 이어가는 등 오랜 세월 횡간도를 키워주고 품어준 바다는 이제 더는 내어주기가 어렵게 됐다. 고령화로 어민 수가 감소하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바닷속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근래 남해안 멸치 어획량이 줄고 있는데 수온 상승 등 해양환경 변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서 이장은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된 이후 변화할 마을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최근 주민 40여 명은 선진지 견학을 통해 견문을 한층 넓히고 결속을 다졌다. 그는 “건물 지어놓고 관리가 안 되면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가능하면 건물 짓는 것을 지양하고 마을 공동체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횡간도의 매력을 최대한 살릴 계획”이라고 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민 90% 이상이 노인회에 가입될 정도로 대부분 연로한데다 젊은 사람이 살만한 정주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100여 가구, 300여 명에 이르던 주민 수는 현재 47가구 8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서 이장은 “학교도 없지, 육지로 오가는 교통도 불편하지, 섬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 2015년 폐교된 화태초등학교 여동분교. (사진=마재일 기자)
▲ 2015년 폐교된 화태초등학교 여동분교. (사진=마재일 기자)
▲ 방치된 횡간도 관왕묘 사당. (사진=마재일 기자)
▲ 방치된 횡간도 관왕묘 사당. (사진=마재일 기자)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의 초등학교는 2015년 폐교했다. 학생들이 사라진 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장기간 방치되면서 주민들의 마음은 더 허하고 아플 수밖에 없다. 폐교를 마을의 구심점과 성장 동력의 장소로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관심이다.

최근에는 섬의 열악한 상황을 말해주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지난 10월 22일 새벽에 불이 났는데 제대로 된 소방시설이 없어 불을 끄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주택이 전소했다. 주민들이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다 날라 불을 끄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소방시설이 투입됐지만 거의 전소된 뒤였다. 집을 잃은 주민은 결국 섬을 떠났다. 마을은 또 수익 사업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도선 운영 등을 고민하고 있지만, 비용 마련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바다의 거센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마을을 지켜온 것처럼 서 이장은 “섬 주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많은 이에게 더욱 사랑받는 섬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바다와 바람과 나무가 지켜온 섬, 횡간도 주민들의 새로운 길 찾기가 시작됐다.

 

▲ 과거 멸치를 삶던 막사가 방치돼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과거 멸치를 삶던 막사가 방치돼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허물어진 집. (사진=마재일 기자)
▲ 허물어진 집. (사진=마재일 기자)
▲ 방치된 횡간도 관왕묘 사당. (사진=마재일 기자)
▲ 방치된 횡간도 관왕묘 사당.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 마을 전경. 멀리 화태대교가 보인다.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 마을 전경. 멀리 화태대교가 보인다. (사진=마재일 기자)
▲ 마을 담벼락의 다육이 화분. (사진=마재일 기자)
▲ 마을 담벼락의 다육이 화분. (사진=마재일 기자)
▲ 약 700년 수령의 소나무. (사진=마재일 기자)
▲ 약 700년 수령의 소나무.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 마을 식당의 밥상. (사진=마재일 기자)
▲ 횡간도 마을 식당의 밥상. (사진=마재일 기자)
▲ 지난 10월 화재로 전소한 주택. 집 주인은 섬을 떠났따. (사진=마재일 기자)
▲ 지난 10월 화재로 전소한 주택. 집 주인은 섬을 떠났따. (사진=마재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