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현역엔 ‘합법’ VS 신인엔 ‘불법’…출발부터 불공정
총선 현역엔 ‘합법’ VS 신인엔 ‘불법’…출발부터 불공정
  • 마재일
  • 승인 2023.11.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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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획정 아직도 오리무중…참정권 침해·신인 불리
현역 의원 의정 보고·현수막 게첩 등 사실상 선거운동
신인 선거운동 제한, 진입장벽 높아 얼굴 알리기 ‘한계’
"기울어진 운동장"…​​​​동등한 시스템서 경쟁 제도개선 필요
▲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국회 홈페이지)

▲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 모습. (사진=국회 홈페이지)

내년 4월 10일 제22대 총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출마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선거구 획정은 물론 중대선거구 도입 여부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를 확정하지 않고 있어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선거법이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게 돼 있어 예비후보 등록 전에는 사실상 신인들이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현역 국회의원은 권리당원 모집, 현수막 게첩, 명함 배부 등 4년 내내 사실상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제도개선 요구 목소리가 크다.

여수 갑·을 유지? 합구? 초미 관심
국회 선거법 위반, 처벌 규정 없어

여수시 갑‧을 선거구 합구 여부가 지역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여수시갑 선거구 인구는 올해 1월 말 기준 12만 5,749명으로 이는 중앙선관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시한 인구 범위 하한 기준인 13만 5,521명에 9,772명이 미달해 합구가 필요한 선거구로 분류됐다. 이에 갑‧을 선거구 합구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회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선거일 전 1년인 지난 4월 10일까지 확정해야 하지만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 기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선거 42일 전에 결정됐고, 21대 총선 때는 39일 앞두고 결정됐다.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손가락질받으면서 늑장 선거구 획정 관행은 여전하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가 스스로 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현행법상 시한을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다.

문제는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 선거가 임박해 후보자 정보를 알게 돼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출마자 역시 인지도와 권리당원 확보 등을 위해서는 선거구 획정이 우선돼야 하는데 선거구를 모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여수시 여서로터리에 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 여수시 여서로터리에 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도전자 처지에서는 선거법상의 각종 규제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권리당원 모집과 현수막 게첩, 명함 배부 등 본선에 앞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예선전을 치러야 하는 실정이다. 총선 신인은 말 그대로 ‘발품’을 팔며 각종 행사장과 축제, 동문회 등 인파가 운집하는 곳을 돌며 자신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부 출마자는 주요 교차로에서 피켓을 들고 정치, 사회 이슈를 발언하거나 식당 등을 일일이 돌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반면 현역 국회의원은 국정감사 및 예산 심사, 의정 보고회, 현수막 게첩 등을 통해 본인과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여수시 갑 주철현, 을 김회재 국회의원은 선거구 경계를 넘어 현수막을 내걸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옥외광고물법은 정당 현수막을 장소와 개수의 제한 없이 무제한 허용하고 있다. 행안부의 정당 현수막 설치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인이나 무소속 정치인은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없게 하고 있다. 법적으로 정당 지역위원장 또는 대표, 현직 국회의원만 걸 수 있고 일반 의원이나 무소속 의원들의 경우 정당 현수막을 이용할 수 없다. 정당 현수막 설치 시 현수막 지정 게시대 등에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현수막 난립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역위원장인 현역 의원들은 커다란 문구와 옆에는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게재하는 방법으로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무분별하게 내걸리다 보니 도시미관 저해, 시야 방해, 사고 위험성 유발 등 불편함을 준다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현수막 게첩 수가 줄긴 했으나 여수 시내 곳곳에선 여전히 정치 현수막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이에 정치 현수막 게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 개정안이 일부 광역 지자체에서 발의되고 있다. 전남도의회에서도 최근 관련 조례안이 상임위 심사를 통과했다. 조례안은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시 지정 게시대에 게시하고 정당별로 읍·면·동에 2개 이하로 게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본회의 통과 및 실행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 도심에 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 도심에 걸린 현수막. (사진=마재일 기자)

“총선 신인들에게 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

현수막은 짧고 강렬한 문구로 시선을 끌어 현역 의원들의 성과를 알리는 데 효율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정치 신인에겐 그림의 떡이다. 신인들이 수능 응원 등의 현수막을 내걸기는 하지만 하루가 못 가서 철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수시갑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이용주 전 의원은 지난 16일 수능이 치러질 즈음 도로변 등에 응원 현수막을 설치했으나 다음 날 모두 철거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지정된 자리가 아닌 것은 맞지만 설‧추석 명절이나 수능 때 의례적으로 인사·응원 현수막을 다는데 유독 내 것만 철거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누군가 이의 제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인은 또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 명함에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넣을 수 없고 당을 상징하는 옷 착용도 금지된다. 반면 현역 의원은 허용된다. 현역 의원은 의정 보고를 이유로 단체 문자 발송 횟수 제한 등 규제도 피할 수 있다. 권리당원 모집에서도 신인이나 출마 예정자는 차별받는다. 현역은 지방의원들의 도움 등으로 권리당원 모집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신인은 인맥에 인맥을 동원해 권리당원 모집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비밀리에 권리당원 명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과 불법 유출에 따른 법적 조치도 적잖이 발생한다.

내달 12일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신인들의 숨통이 다소 트일 전망이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어깨띠를 매고 직접 명함을 배포하거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선거사무소를 개설·운영할 수 있고 3명 이내의 유급 선거사무원도 둘 수 있다. 예비후보자를 홍보하는 간판·현판·현수막 등의 게시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되는 불공정한 선거제도 개선 요구 목소리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정치 후원금 포스터.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정치 후원금 포스터.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와 관련해 일찌감치 여수시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현수막 제작‧게첩 비용은 본인 부담인데 설치하면 하루 만에 떼어 버려서 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역은 지역위원회, 상무위원회, 특보단까지 구성해 의정 보고서, 명함을 배포하는데 우리는 본인 외에는 배포할 수가 없다. 비용도 당 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현행법상 현역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후원회를 개설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다. 정치신인 등 원외 인사는 선거 120일 전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 후원회 개설을 통해 1억 5,000만 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조 부대변인은 “현역은 권리당원 모집도 조직적으로 할 수 있지만, 신인은 일일이 부탁한다. 서로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여 민주당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아 모집하는데 애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도전하는 신인들에게는 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고 했다.

이용주 전 의원은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운동은 허용되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현역 국회의원의 출마가 확정적이라면 특정 기간은 신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인은 현수막도 못 달뿐더러 비용도 본인 부담이다. 현역은 현수막 게첩 비용을 각 정당에서 지원하는데 이는 선거운동을 정당에서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평상시에는 정당에서 보조받아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예비후보 등록 이후에는 공정하게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특히 권리당원 명단과 전화번호에 대한 접근성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위원장은 권리당원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모두 알고 있다. 개인 정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선거법을 개정하면 된다. 일정 시점에서 모든 후보가 공유하거나 오픈되는 게 맞다. 그렇지 않다 보니 후보자들이 불법적으로 명부를 획득하거나 돈 주고 사는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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