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고 공감하는 시적 상상력
공유하고 공감하는 시적 상상력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11.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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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93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사람이 살아가는 법은 두 가지라고 한다.

즉 ‘아는 법’으로 사는 사람과 ‘모르는 법’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아는 법’으로 사는 사람은 ‘현재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사는 사람’이고 ‘모르는 법’으로 사는 사람은 ‘ 현재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 채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나를 인지하면서 사는 사람과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아는 법으로 사는 사람은 늘 주변과 관계를 가깝게 하여 사는 사람이다. 태어나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내 삶의 여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산다는 것은 태어나 죽을 때 까지 만나는 모든 것들과 ‘가깝게 혹은 멀게’ 관계를 맺는 일이고, 사소한 일들의 연속 속에서 작고 하잘 것 없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혹은 초라하게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단치 않았지만 그리운 기억들, 결국엔 그것만이 남는 것 같다.
어마어마한 사건이나 사상이 나를 변화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여러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는 조금씩 변해왔다.
만약에 지금 하루하루가 마땅치 않았다면 작고 사소한 추억들로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좋았던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경험했던 좋았던 것들은 어떻게든 내 안에 남아서 결국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탁현민 <사소한 추억의 힘>
 

사소한 순간들의 일부는 특별하게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되며, 우리가 어떤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소한 추억은 웃음과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친구, 가족과의 유쾌한 모임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연결과 공감,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과 공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사소한 추억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했다.

시창작도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 그러한 사소한 추억 속에 안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그래서 디자인된 말도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일상어로 그 대상과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말이다.
디자인된 말은 다듬어진 말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일수록 더 큰 시적 감동을 갖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안겨있는 진솔한 말이면서 삶의 본질을 노크하는 말이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 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이성부 봄>

 

이런 시구들이 디자인이 잘된 말일 것이다.

<님의 침묵>은 한일합방후 우리나라의 상황을 시인의 굳은 의지와 함께 표현된 말로, 조국을 잃어버린 객관적인 현실을 주관적인 현실로 환치하여 강한 조국애를 표현했다. 즉 나라를 잃었다는 현실을 시인자신은 한 번도 잃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강한 신념의 표현이다.

<봄> 또한 올 듯 올 듯 하면서 쉽게 오지 않은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을 늦지만 언젠가는 올것이라는 강한 확신과 신념의 표현이다.

이처럼 특별한 시어 하나 없이 엄청난 메시지를 전하는 디자인된 표현이다.

 

평범한 하루가 소중한 사람이고 싶다
저물면서 아름다운 노을이 되자
삶은 멈춰 서서 바라보면 다 행복이다
나를 가두지 않는 삶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삶이다
깨뜨려야 깨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다
미쳐야 미친다

평범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의미를 전해주는 이런 말들이 디자인된 말이다, 평범한 하루가 소중한 사람이 의미있는 삶을 사람일 것 같고, 저물면서 아를다운 사람이 추하지 않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일 것이고, 사는 것이 숨가쁘게 바쁘지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면 모두가 다 행복일 것 같고 그래서 한 템포 늦춰 살아야할 것 같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은 쉽지만 감성적으로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기에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먼 거리일 것 같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새로운세계를 깨우칠 수 있을 것 같고, 미치지 않고서는 어떤 이념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바깥에서만 열수 있는 문은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열어주는 문도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열고 나가는 문이라야 합니다
자기 발로 걸어나가는 문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
신영복 <감방문 안쪽>

 

이 메시지는 무기수로 오랫동안 살아오신 신영복 선생님의 경험에서 비롯된 디자인된 말이다. 바깥에서만 열수 있는 문, 다른 사람이 열어주는 문은 문이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열고 나가는 문, 자기발로 걸어나가는 문이어야 문이라는 이 시를 통해 현재 나는 내 손으로 열고 내 발로 걸어나가는 삶의 문인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삶의 경험에서 깨달음으로 와 닿은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울림을 주기 마련이다.

최진석교수도 그의 <노자 인문학>에서 말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며, 어떤 말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세상 할 말만 하는 화법이 시의 화법이다.
그러면서 특별하지 않으면서 특별한 말을 찾는 일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어주는 한마디가 그 사람을 울리고,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다독여주는 한마디가 감동으로 다가간다.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넉넉해지며 /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 이렇게 당당하고 근사할 줄이야

-이상국<쫄딱>

 

이 시도 일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난 적이 있는 풍경이거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삶의 풍경이다, 이 시가 힘을 갖는 것은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의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다’는 한마디가 갖는 힘이다.

시인은 ‘쫄딱’이란 한마디가 지닌 힘을 재발견한다. ‘쫄딱’이란 말 속에 안겨있는 당당하고 근사한, 그래서 그 한마디가 사람을 편하게 가깝게 해주는 힘을 생각하는 것이다.
시창작은 이렇게 보면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면서 사소한 일상어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보면 늘 보던 그 모습으로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잘 들여다보면 꽃씨 속에는 크레파스가 들어있고, 지축을 흔드는 심장소리가 있고, 하늘을 닮은 둥근 어법도 있고, 두근대는 그리움도 들어있다. 나무들의 겨울잠을 보면서 비우고 비워 넉넉한 무소유의 삶을 배우고, 말라붙은 나팔꽃 줄기를 보면서 죽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기어간 나팔꽃의 길을 보는가 하면, 나팔꽃씨를 입에 털어넣고는 온몸에 나팔꽃 문신이 번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물의 입을 본 적이 있나요? 물의 표정을 본 적이 있나요?

생각을 뒤집는 상상력은 이런 발칙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둥근 입 하나가 떠올랐고, 파문으로 드러난 물의 입을 보았고, 무엇이든 삼키는 거대한 식도와 물밑에 숨은 물의 위장과 햇살에 반짝이는 물의 얼굴과 주변을 끌어안는 물의 체질을 본다
<마경덕의 사물의 입>

나를 펼치면 내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분리 수거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 이것만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하나가 있다면?

시 창작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뭐 이런 특별하지 않은 상상을 펼쳐보는 일이다. 살아가면 만나는 대상과 현상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끼어들어서 불쑥 한마디만 해줘야겠다는 심정으로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들어본 적 있나요?

바람에도 젖가슴이 있다는 것을
한적한 도로에서 강물을 옆자리에 앉히고
시속 70킬로로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세요
말랑말랑한 바람의 젖가슴이 만져질 거예요
그 바람의 젖을 먹고 풀들이 자라고
침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상처들을 꺼내 말리면서 꽃잎들이 피어나요
흔들리면서 갈대는 생각이 깊어지고 땅 속에서 감자는 굵어져요
온통 계절을 키우는 것은 바람이예요

-정용화 <바람의 젖가슴>

달리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랑말랑한 바람의 젖가슴이 만져짐을 느꼈을 것이다. 젖가슴이란 언어를 만나는 순간에 본격적인 상상력이 펼쳐진다. 그 바람의 젖을 먹고 풀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감자가 굵어진다는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세상은 온통 바람의 자식임을 깨우치게 된다.

이처럼 공유와 공감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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