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은 인간과 세계의 이미지 연출이다
시 창작은 인간과 세계의 이미지 연출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10.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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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92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연암의 「열하일기」는 1780년 5월에 북경을 거쳐 중국 황제가 머무는 열하를 향해 떠나가게 되며 겪는 여행기로 압록강 국경을 건너는 6월 24일부터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8월 20일까지의 여정으로, 몽고, 이슬람, 티베트 등 다양한 이민족의 행렬과 열하에서 만나고 느낀 점을 적고 있다.

그는 인간, 자연, 동물 등 과 통섭하면서 그 ‘표면의 충돌’을 그만의 촉수로 잡아낸다.

그의 촉감적 능력은 시간과 공간과 상황에 이르기까지 삼투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그런 연암 박지원도 한때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연과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으며, 자기이면서 자기가 아닌 실존의 조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만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신선이 되겠다는 바람의 사나이, 민옹, 분뇨장수, 거리의 건달 등과 소통하면서 지금까지 다르게 산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삶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치유하려 했다.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의 경계를 허물어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만남과 소통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통섭인이었다.

그런가하면 선비는 독서인이면서 문장을 쓰는 존재라고, 언어를 다듬고 지나가는 길을 닦아놓는 게 문장이라 했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선비고, 문장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언어의 길을 여는 사람이라 했다.

연암은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해 소통하고 통섭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한 셈이다.

시창작도 세계와의 만남과 소통의 방식으로 자신과 셰계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독자와의 소통과 관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마르셀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건네준 마를렌을 홍차에 적셔 한입 베어 무는 순간에 떠올랐다고 한다. 사람의 기억을 파고 드는 이미지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지의 창조는 이성이 하는 일이 아니라, 비유와 유추와 연상과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공감각 등의 감각에 의존한다. 핑크색은 베라, 초록색은 스타벅스, 노란색 이마트, 빨강은 맥도날도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이미지다.

내가 모자, 자켓, 구두의 색을 연두색으로 통일하게 되면 연두색이 곧 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리고 거리에서 세사람이 모여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또한 이미지 창조의 원리다.

또한 이미지는 패턴인식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나무, 꽃, 풀, 물, 바람, 친구 등도 이미지 즉 패턴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타벅스 로고의 여인은 바다위로 배들이 지나갈 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을 유혹한 세이렌을 상징화했다고 한다.

마트입구에 과일매장이 맨 앞에 있는데 과일의 다양한 색상 활용하여 계절의 변화 실감하게 하는 패턴인식과 이미지를 활용한 상술이다.

즉 봄에 딸기를 입구에 진열하면 원피스매출이 증가하는데 이는 봄을 실감하게 하는 이미지 연출이기 때문이라 한다.

보색관계도 중요한 이미지 연출법이다.

보색관계는 상대의 색을 방해하는 색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여 각자를 더 또렷하게 인지시키면서 생기있는 느낌을 살려준다. 색상환에서 서로 맞은편에 있는 색이 보색관계다. 즉 빨강과 초록, 주황과 하늘색, 노랑과 보라, 연두와 핑크, 청색과 주황의 관계색이다.

시의 이미지는 세계에 대한 재발견이면서 시적세계를 구축하는 소중한 작업이다.

 

덤불 속 작게 작게 숨어있다고 없는 것이 아니야

보아 주지 않는다고 꽃 아닌 것이 아니야

너의 이름 너의 빛깔 눈감고도 볼 수 있어 - 신병은 <풀꽃>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 용혜원 <봄꽃 피는 날>

 

좋은 시일수록 독자에게 오래 기억되는 법인데 그것이 이미지의 역할이다.

모든 창작 작업은 수행이고 새로운 패턴인식과 새로운 이미지의 꽃을 피우는 작업이다.

내면의 꽃으로 스스로를 비춘 후 스스로 꽃임을 알아야만 품격있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잘 노는 연습은 Curiosity(호기심)이기도 하다.

부엘은 네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즉 돌처럼 그냥 존재하는 인간, 식물처럼 살아가는 인간, 동물처럼 느낄 수 있는 인간, 학자처럼 이해하는 인간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도 제 가각의 패턴이고 이미지다.

세상의 모든 시는 이미지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김용택 <달이 떳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어딘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신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멀리서 빈다>

 

시 창작은 사람에 대한 꿈을 꾼다. 달이 떴다고 달빛이 곱다고 멀리서 준 전화를 받고 내 마음에 환한 달이 떠는 일처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인해 눈부신 아침이 되고 고요한 저녁이 오는 것처럼 마음에 꽃이 피게 하는 한사람이 내게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도 없을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이처럼 사소하지만 내게 만큼은 사소하지 않은 일로 행복한 일이다.

모든 예술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괴테도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시를 읽으면 전화를 건 사람과 받은 사람의 행복한 이미지가 자연스레 오브랩된다

시인은 언어의 길을 여는 사람이다.

시속에는 시인의 시선이 안겨있기 마련이고 그 시선을 통해 무엇(삶에 대한 이해)을 표현하는데 이것이 이미지화다.

아침 출근길에 시간에 쫒겨 자동차 문을 열려는데 빗방울 사이로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꽃을 본다. 쥐손이풀꽃이었다. 눈 마주치자 비 맞은 꽃은 웃고 있다.

제자리에서 순응하며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만난 셈이다.

그걸 보면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행복이란 관념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들녘이든 모서리든 보드블럭 사이든 있는 그 자리서 가만히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된다.

이미지는 설명하지 않고도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고 관념이 아닌 구체성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 <문태준 가재미>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 <문정희 겨울일기>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 문태준 <맨발>

 

등에 짐을 지고 한 여자가 내려온다 땀이 흥건한 여자의 가죽을 햇빛이

옥수수 껍질처럼 벗긴다 - 이원 <한 여자가 간다>

 

내가 내 이름을 불러줘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신병은 <겨울나무>

 

작설차를 우리는 동안 참새 입술 닮은 잎들이 정담을 나누었나

무심히 주전자 안을 들여다보니

물 속에 무슨 소리의 무늬가 설핏 보이는 듯싶다

우듬지 가득 받아든 햇빛,

뿌리가 탱탱하게 빨아올린 땅속 어둠이 서로 섞여들며

물이 하고 싶은 소리, 잎이 하고 싶은 소리를

물무늬 지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이다 - 박제천 <물의 집>

시의 이미지는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시적 장치이면서 기존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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