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것을 건너다보는 융합의 시쓰기
보이지 않은 것을 건너다보는 융합의 시쓰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10.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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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91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인은 걷고 걸으면서 꿈을 꾸듯 농담하듯 세상의 사랑을 키우고, 고요라는 숨결을 삶의 주변에 둘러치고 감동이 오는 순간, 삶의 순간순간이 주는 눈길을 놓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사소한 것들과 살고 있는지를, 사소한 것들에 기대어 우리가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가 새삼스러워진다. 한 평생이 지나고 나면 아주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었다는 것, 거창하다고 몇날 며칠을 밤새워 고민했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사소한 것의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삶은 그 사소한 삶의 선상에 놓여 보폭을 같이 하고 ‘맘 길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새롭지 않은 날도 없다.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는 시 쓰기는 사소한 것들의 재발견이자 관점이다.

관점은 시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패턴인식의 문제이자 포지션의 문제다.

‘이것에 대한 당신의 포지션은?’

포지션은 어떤 삶의 문제에 부딪힐 적마다 서는 위치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 삶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관점만 있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포지션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게 마련이다.

시의 발견은 페턴과 포지션에 따라 만난 의미체험이자 풍경체험으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언어체험까지 가능하게 한다. 인문학적 관점과 자연과학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협업한 융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융합은 이미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의 경계를 가로질러 넘어가는 작업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인의 시적 융합은 여러 가지를 합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다양한 세계로 나아가는 전술적 사고로 서로 다른 것을 통합하여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는 나눔의 미학이다. 즉, 누구나 경험한 것에서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것,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발견하고, 일상적인 시각을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눈을 대상과 병렬시킴으로써 낯선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가 만나는 낯익은 것들은 한결같이 낯선 언어가 되어 다가오게 된다.

융합은 하나의 여럿이다.

시적인식 또한 하나에서 시인들의 안목으로 발견한 다양한 삶의 의미체험이다.

 

간(肝)과 간(鹽) 사이에는 바다가 출렁인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 / 혀끝에 꽂히는 맛보다 강하게 끌어당기는

간을 본다는 말 / 처음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의 거리 같은 맛

돌쟁이를 안았을 때 / 눈동자끼리 파닥거리다

울어야 할지 / 웃어야 할지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같은 맛 / 까르르 웃어 재끼는 잇몸 같은 맛

마음에 겉돌던 매운 사람 / 입 안에 머금고 궁글리다 보면

물빛같이 어우려지는 / 우리라는 맛

맘속에 스미고 스며서 / 바다로 깊어지는 맛

간(鹽)과 간(肝) 사이에는 바다가 출렁인다 -김정애 <간보다>

 

간(鹽)은 음식물에 짠맛을 내는 소금기이고, 간(肝)은 몸의 간장을 뜻한다.

‘간 보다’란 말은 ‘남의 속뜻을 살며시 헤아려 보다, 짠 정도를 맛보다’의 의미로 다양한 관용적의미를 지닌 말이면서 인간의 관계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간(肝)과 간(鹽) 사이에는 바다가 출렁인다’에는 그런 중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사람과의 거리 같은 맛, 눈물 같은 맛, 웃음 같은 맛, 우리라는 맛의 관계성이 마음 안에 스미고 스며서 바다로 깊어지는 맛이다.

우리 삶이 일상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도 공감하게 되는 것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가슴에 이미 내장되어 있는 언어를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는 시인 자신은 물론 독자에게 의미심장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내용에 안겨있는 낯선 의미를 발견하여 제시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 시창작의 낯설게 하기는 ‘일상사 속의 일상사’ ‘일상어 속의 일상어’를 발견하여 이것으로 전혀 다른 영역의 저것을 보는 일이다.

시를 시답게 하는 것 또한 시 속에서 다양한 경험과 그 언어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에서 여럿의 관점을 풀어내는 그녀의 안목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창작의 전술이 된다.

 

빗방울에 몸을 맡긴 잎새

멀고도 오랜 세월을 데려오는데

섬을 키우고 있는 쑥과

매화에게 눈을 올려본다

지난가을

북쪽으로 날아간 철새들이

매화꽃으로 사뿐히 앉았다고 여겨질 때

어느 해

땅속으로 돌아간 영혼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섬이 쑥 쑥 자란다 - 김정애 <진섬 꽃동산>

 

예술의 섬 장도를 건너는 다리는 소라고둥이 꽂게를 앞세우고 앞서 걸어가는,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리는 잠수교다. 시인에게 여수 ‘진섬’(장도)는 다양한 언어경험으로 다가온다, 낯익은 풍경 속에 깃든 낯선 언어를 만날 수 있는 정겨운 마실길이 있고, 멀고도 먼 세월의 원형성이 간직된 섬이면서 영혼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섬이다.

‘다리에 간꽃이 피고 빗장 걸린 향기가 출렁이는 섬. 바다 속 안부를 널어 말리는 사이로 하루에 두 번 물꽃이 피는 섬‘이고, ‘풀물 가득한 손톱에 간물 껴입은 아버지의 기슭에 소금꽃을 피우는 섬이면서 빗장 열린 향기가 웃음으로 출렁이는 섬‘이다, 그래서 시인의 가슴에도 진섬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날마다 자라는 섬이면서, 시인에게는 관계의 인문학으로서의 섬이다.

이점에서 시는 무엇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긍정의 관점을 출발점으로 하여 일상 속 삶의 표징을 발견해 보여주는 대상과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말걸기로 노자의 무위자연과 통섭한다.

무위란 자연 그대로 인위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념이나 기준과 같은 관념의 구조물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접촉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세계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어떤 기준과 경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보여 지는 대로” 보게 되는 것, 시적안목은 자연의 객관성을 디딤돌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삶의 표징을 포학해내는 협업을 위한 여정이며, 자연과 인간과 시간과 공간의 근거를 재발견하려는 통섭적 안목이다.

통섭은 삶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면서 소통하는 재발견의 길이다.

 

멸종 위기에 이름을 올린 / 흰발농게와 대추귀고둥

사랑나무 사이에 둥지를 틀었네

서식지를 품는다는 건 / 인류를 품었다는 것

둥지를 열어놓고 / 갈대 잎 창호에 스친 바람 소리 따라

향기 젖은 외진 처마 밑 / 반월을 밝히는 꽃자리가 되네

그리움 일렁이는 달빛이 찾아오면 / 겨드랑이에 흰발농게를 끼고

대추귀고둥 추켜 세운 / 서식지가 열리네

우주가 열리네 -김정애 <반월 밝히는 꽃자리 >

 

시인은 분명 봄날 반월의 유채꽃을 보러 갔을 것이고, 여기에서 지명 반월과 반달의 중의적 의미가 오브랩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꽃보다는 그곳에서 만난 멸종위기의 놓인 흰발농게와 대추귀고둥을 통해 ‘서식지를 품는다는 것과 인류를 품었다는 것’의 의미를 시적안목으로 챙겼을 것이다. 반월의 달밤에 사랑나무를 사이로 둥지를 튼 서식지가 바로 반월의 꽃자리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서식지가 열리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우주가 열리는 일이리라.

시인의 시적 안목은 대상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허무는 일,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은 것에 까지 이른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반월의 꽃보다 먼저 흰발농게와 대추귀고둥이 눈에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직면한 생태와 생존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멀리 두지 않고 늘 눈 안에 든 현재를 통해 현존을 넘어 저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의미탐색을 한다.

인간은 건너는 존재다.

기존의 것을 뛰어 넘어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건너는 존재, 즉, 대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을 허물고 공간과 시간, 가치관을 통해 낯선 저쪽을 사유한다.

‘건너가기’를 ‘반야심경’에서는 최고의 지혜 즉 ‘바라밀다’라고 한다.

‘바라밀다’는 보살(菩薩)의 수행으로 현실의 생사의 차안(此岸)에서 열반의 피안(彼岸)으로 건넌다는 뜻이다. 견성의 진리를 깨닫는 해탈도 결국은 건너는 일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 가치관을 가로질러 건너다니는 일이다.

시인은 건너가는 자신을 자각하고 경험하면서 황홀해한다. 반월과 반월, 간(鹽)과 간(肝) 사이를 잘 건너다니고, 소리를 업고 새벽을 넘고 저녁으로 건너가는 통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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