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13차례 발굴 조사 통해 중요자료 확인 성과
20여년간 13차례 발굴 조사 통해 중요자료 확인 성과
  • 강성훈
  • 승인 2023.06.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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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성, 사적 지정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
동헌 발굴 조사 결과, 좌수영성 역사·학술가치 가늠할 것
방답진 굴강 발굴조사 등 조선수군 유적 발굴 이어져
전라좌수영 동헌지 발굴 현장
전라좌수영 동헌지 발굴 현장

 

전라좌수영성의 복원과 당위성에 대한 논의가 이번 심포지움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그동안의 전라좌수영성 유적 발굴조사와 향후 사적 지정을 위한 타 역사유적 발굴 사례도 관심을 모았다.

먼저 여수 전라좌수영 동헌일원 복원사업 부지 내 문화재 발굴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박성탄 재단법인 나라문화연구원 연구원이 ‘전라좌수영성 관련 유적 발굴조사 현황’에 대한 설명했다.

설명자료에 따르면 전라좌수영과 관련해 여수에서 실시된 고고학적 조사는 1980년 이충무공 유적지선소 제1차 발굴조사가 시작이었다.

현재는 복원되어 있으며, 정비와 관련하여 1985년, 1988년, 1994년 조사에 이어 2010년 주변지역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이와 같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전라좌수영 본영인 전라좌수영성지를 비롯한 진남관, 동헌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방답진 굴강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전라좌수영성과 관련한 유적 발굴조사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도시화로 원형 찾기 한계...성벽 일부 확인은 성과

현재까지 13차례 조사를 통해 전라좌수영의 면모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확인되고 있다.

2000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전라좌수영 본영 유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이외 전라좌수영과 관련한 진성과 선소(굴강)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되고 있다.

박 연구원은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를 통해 전라좌수영 전반에 대한 예전 모습을 명확히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으나, 문헌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라좌수영성은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호좌수영지’ 등의 문헌과 고지도에서 역사와 변화양상, 운영, 형태와 배치 등 구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내부를 비롯한 외부가 도시화되면서 육안상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2023년 나라문화연구원에서 의해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성벽 일부가 조사됐지만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잔존상태와 축조 방법 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시화로 인해 기록에서만 전해지던 성벽 일부가 확인되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을 것이며, 향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계획이므로 발굴조사 자료를 토대로 현재의 지적도에서도 파악되는 성벽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그 실체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진남관은 현재 해체․복원이 진행중이다. 이에 앞서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문헌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던 축조와 중건 등의 기록을 고증할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됐다.

전라좌수영성 내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 등의 배치 역시 위의 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뿐이었다.

2000년과 2008 진남관 남쪽 주차장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처음 건물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지창으로 추정되는 지점인데, 확인된 건물지가 시기를 달리 하고 있어 시기에 따라 증개축 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하였다.

 

전라좌수영성 대표 유적인 진남관의 해체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전라좌수영성 대표 유적인 진남관의 해체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동헌 발굴조사서 건물 잔존 확인

이후 여수시의 전라좌수영 주변 동헌과 관련한 시설들에 대한 정비 복원을 목적으로 2018년과 2019년에 동헌 추정지에 대한 조사가 실시됐다.

이 지점은 ‘호좌수영지’와 ‘호남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는 운주헌, 결승당, 백화당, 수죽당, 내아, 책방, 공수 등이 배치되어 있는 동헌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2018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동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유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2019년 조사에서는 건물들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유구가 확인됐다. 2021년 동헌 추정지의 북동쪽 도로개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고지도에 표기된 위치를 토대로 군기고 추정 건물지도 확인되었다.

여러 건물지가 중첩되어 있어 상당기간 동안 증개축이 이루어지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더욱 교란이 심하게 이루어졌다는 점도 파악되었다. 출토된 유물 역시 건물지 내에서 16세기 분청사기 및 방곽문 암키와 등이 출토되고 있어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전라좌수영성 내에 위치하는 건물이 상당 부분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2018년 발굴조사 지점에 대해서는 당시 상층 유구에 한정하여 조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동헌과 관련한 유구를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굴조사만 이루어진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예정돼 그 결과를 바탕으로 동헌과 관련한 건물의 배치와 양상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봉산동 사철소...방답진 굴강...수군 유적 발굴도 관심

또한 전라좌수영의 수군진과 관련된 유적들도 다수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라좌수영성과 약 1.1㎞ 정도 이격되어 있는 ‘여수 봉산동 사철소’는 2018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수군과 관련한 제철 유적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방답진 굴강 역시 수군진과 관련한 유적으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굴강의 형태가 잔존하고 있다는 점에 기존 연구 결과에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칠 자료로써 향후 연구 성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전라좌수영과 관련된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와 결과는 문헌기록과 고지도를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유적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근거 자료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현재는 도시화로 인해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유적의 흔적을 찾아 그 중요성을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의 보존은 전라좌수영을 사적으로 지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그 실체를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느냐가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라고 판단된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보존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라좌수영 건물지를 예상해 볼 수 있는 해동지도
전라좌수영 건물지를 예상해 볼 수 있는 해동지도

 

“동헌지 발굴 성과, 좌수영성 학술가치 가늠할 것”

토론에 나선 장여동 순천시 문화재활용팀장은 “13차례의 시·발굴 조사를 통해 전라좌수영성의 고고학적 자료의 축적하고, 유적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며 그간의 성과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라좌수영 관련 유적의 근거 자료에 대해 성종실록(1491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을 비롯한 고문헌 자료와 해동지도(1750년), 호좌수영지도(1847년) 등을 비롯한 고지도를 통해 성곽의 규모와 건물지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제시된 자료 중 호좌수영지에 기록된 84곳의 건물지가 전라좌수영과 관련된 유적의 가장 구체적인 자료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특히, “동헌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전라좌수영성의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자료로써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라좌수영성의 규모에 대한 성격 파악과 관련해 “성종실록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서 성곽 길이를 제시하는 자료가 있으나, 전라좌수영 동헌일원 복원 기본계획에 제시된 지적도 원도를 통해 확인되는 성곽의 길이는 1,740m로 다른 기록을 비교할 때 200m 내외의 차이가 있다”며 “향후 보존관리에 대책 마련 등을 위해서는 성곽의 규모 및 지적도에 그 위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라우수영, 사적 지정까지 30여년 노력

이어 발제에 나선 고용규 목포대학교박물관 특별연구원은 전라우수영의 사적 지정 과정에 대한 설명을 통해 전라좌수영의 복원과 사적 지적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전라우수영은 1440년 전라도 수군을 총괄하는 첨절제사영(전라수영)으로 출발해, 1479년 정월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전라우수영)으로 개편된 이래, 1895년 폐지되기까지 455년간 전라도 수군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관방 유적으로서 운영돼 왔다.

특히 수영성 가운데 최대 규모의 성벽과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수군진성으로서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전라우수영 동쪽의 목이 가장 좁은 육지부에 차단성의 기능을 갖는 원문까지 구비한 희소성이 돋보이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위상을 지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존한 성벽 위주가 아니라 조선 수군의 본거지이던 전라우수영의 역사와 공간의 가치를 인정해 ‘전라우수영’으로 지정했다.

지정면적도 전라우수영성과 원문성을 포함하여 16만6,622㎡로 확대됐다.

“전라우수영성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전라우수영성(사적 신청)-전라우수영(사적 제535호 지정)”의 과정을 거쳤다.

고 연구원은 “남아있는 잔존 성벽→성곽 건조물 유적→당해 기구의 관할 공간으로 의미를 인정해 사적 지정이 된 점에서 전라좌수영의 사적 지정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여수 석보와 같은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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