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이래야만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시는 이래야만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05.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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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84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세상의 모든 창작은 다시보기(review)다.

내 주변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면서 잘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한다.

나무와 꽃, 풀, 바람, 삶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사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찾는 일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다.

꽃이 피는 것으로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통찰, 통섭이다.

시창작력도 ‘잘 들여다보는 힘’이다.

잘 들여야 보면 그 안에 그동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삶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도데체 시가 뭘까?

그동안 필자가 내린 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여준다.

시는 이미지고 묘사다.

시는 살면서 만나는 작은 것들을 통해서 그 속에 안겨있는 삶의 표징들을 발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시는 대상과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말 걸기다.

시는 시인의 정신의 지문이고 마음의 수혈이다.

시는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살기 위한 내 안부다.

시는 별 볼 일 없는 풍경 그것을 주목하는 힘이면서 일상적 언어에 대한 관심과 재발견이다.

시는 삶의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한 사색이고 성찰이다.

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풀어내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보여주는 통섭적 안목이다.

시는 삶을 더 가치있게, 의미있게, 인간답게 풀어내는 작업이다

시는 세계를 알아가는 가슴떨림이다.

 

무엇보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긍정의 관점을 출발점으로 한다.

박수근화백처럼 정직하고 따뜻한 인간애, 가난하지만 인간미를 포기하지 않은 그 시대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전문

일상을 살면서 늘 그렇게 보던 풍경이 평소와는 달리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그때가 시적 순간이다.

즉 대상과 현상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 다른 생각이 들 때, 정치가 답답해 꼭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 꽃샘바람에 갓 핀 꽃이 한순간에 시들은 상황을 접하고 ‘너 그렇게 살지마’라는 독백이 나왔을 때 , 아침에 새소리가 문을 열고 늦잠 자는 나의 허리까지 들어와 깨울 때 , 지주목을 감고 올라가던 나팔꽃이 허공에 손을 뻗어 오를 때 나팔꽃의 간절한 꽃피우고 싶은 마음이 보였을 때, 일기예보를 보면서 나의 내일은 흐릴까 맑을까를 생각할 때, 이른 봄에 뾰족뾰족 얼굴 내민 새싹의 첫말이 궁금할 때, 출근길 현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문득 내 안부가 궁금해졌을 때.....

 

이가 깨져 대문 밖에 버려진 종지에 키 작은 풀 한 포기 들어앉았습니다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습니다 - 박후기 <흠집> 부분

사발 둘레가 조금 깨어 졌을 때 그 사발은 밖에 내다 버리게 된다. 버려진 사발에 흙먼지가 날아와 싸이고 그 안에 민들레 씨가 날아와 싹을 틔워 노란 봄꽃을 피운 풍경을 보면서 시인은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바로 시가 되었다.

살다봄녀 나의 허물과 실수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될 때가 있다.

이처럼 시의 자리는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 사소한 자리다.

그래서 우리 삶의 일상이 바로 시고 소설이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든 진리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이처럼 세계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댜양한 관점만이 있다.

여러 관점에 따라 관찰하고 통찰하는 마음으로 보면 정답이 여럿임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패턴인식 또한 관점에 관한 이야기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패턴인식을 하느냐에 따라 파악되는 내용이 다양한 것이다.

예술은 관점의 문제다.

시적 안목 또한 관점의 문제다.

아롱아롱 아지랑이 산등성으로 한들 한들 실버들 가지 사이로 살랑살랑 연초록 보리밭 사이로 그 큰 봄을 데리고 오는 것이 조그만 노랑나비라고 생각한 <박지현 봄나비>도 그렇고, 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하고, 장닭 벼슬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벼슬만큼 붉고,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간다는 <안도현 햇살의 분별력>도 그렇고 세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창작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보면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쓰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시가 되는지를 눈치 챌 수 있겠다.

 

시적 표현 또한 마찬가지다.

처칠수상이 그랬나요?

‘5분 얘기할 것을 50분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어려운 것은 50분 얘기할 것을 5분 만에 얘기하는 것이다.’

신영복선생은 그랬죠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시적 표현은 경제원칙에 의거하여 일상적 언어를 사상적 높이로 끌어올려 준다.

‘운전 조심해라, 좀 쉬엄쉬엄 쉬어가며 해라’

늘 바쁘다는 핑계로 두 시간을 달려 당일치기로 고향집을 다녀올 때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하며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이고 따뜻한 사랑이었음을 세월이 지나 철늦게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딸이 오니 참 좋다. 보약이 따로 있나 너 얼굴이 보약이지’

고향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말이면서도 또 가슴 아픈 말이라는 것을 세월이 지나 알게 된다.

같은 말인데도 시간이 지나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관점의 문제다.

이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일상적 생각과 말이 곧 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전달하려는 뜻을 듣는 사람이 잘 알 수 있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하되 쉽게 그림을 보여주듯 말하는 사람이다.

오직 나의 눈에만 보이고 나의 귀에만 들리는 순간이 있다.

나무에 지어진 까치집을 보면서 태풍이 불어도 부서지지 않은 까닭이 뭘까를 생각하다 문득 바람도 둥지의 재료가 되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을 때 시가 된다. 새들은 바람이 부는 날을 택해 둥지를 짓는다. 악천후를 견딜 수 있는 튼실한 집을 짓는 법임을 알게 된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대행사>에는 ‘길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해라. 그러다 성공하면 그걸 사람들이 길이라 부른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계기가 시적 인식의 순간이 된다.

시적 상황은 ‘낯익다’와 ‘낯설다’의 이중구조로 그 사이가 시적 긴장이고 그 사이가 멀면 멀수록 좋다.

낯익은 것들의 낯선 모습이다.

시적 순간은 성찰과 관찰을 통해 깨닫는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이고 아주 사소하고 낯익은 일상에서 낯선 삶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벌레먹은 나뭇잎’에서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을 보는 것이다.

둘 다 낯익은 이야기면서 서로에게는 낯선 이야기다.

낯설면서도 낯익고, 낯익으면서 낯선 이야기, 전혀 다른 문장이 만나서 새로운 의미가 되는 것, 그래서 시적 인식은 내 이야기이면서도 너의 이야기여야 한다.

없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들을 다르게 보는 데서 가능하다.

 

살아 온 날도 한 뼘

살아 갈 날도 한 뼘 -신병은 <자벌레> 전문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시가 이런 내용과 생각, 이런 표현이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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