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다
시 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3.04.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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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83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다.’

시 창작 강의을 시작하면서 늘 맨 먼저 강조하는 시창작론이다.

이 말은 시 창작에 뜻이 있는 사람의 첫 공부는 지금 당장 나름대로 시를 쓰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하면 의아해 하겠지만, 시를 쓴지 40년 가까이 된 나도 시가 무엇인지, 시를 어떻게 쓰야 하는지, 지금 내가 쓰는 것이 시가 맞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 이렇게 쓰야 하는 거구나하고 스스로 깨닫기 때문이고, 이 작은 깨달음이 연륜이 깊어가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를 어떻게 쓰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궁금해 할 필요없이 그냥 쓰면 된다. 다만 늘 강조했듯이 쓰려고 하지 말고 주워라는 말을 해준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삶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시 아닌 것이 없다.

봄이 오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도,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도, 빨래하는 일도, 아침에 나팔꽃이 지주목을 감고 오르는 것도, 살랑대는 바람도, 우리가 만나는 감탄사 하나도 가만히 살펴보면 다 시다.

가만히 살펴보고 들여다보면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종교적인 득도도 사소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듯이 시창작은 사소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는 일이다.

그래서 시창작은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또 ‘도데체 시가 뭘까?’ 하고 궁금해 한다.

“대저 시란 무엇인가? 마을 입구에 도라지꽃이 피고 하늘에는 하얀 달이 흐르고 이역에서 온 아낙네가 땀을 내 일하다 잠시 멈춰 서서 꽃이 참 이쁘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시의 순간 아니겠는가?”

박웅현의 <책은 다시 도끼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보는 법을 배우라’고 권한다. 그 보는 법으로 별 볼일 없는 풍경을 주목하는 힘을 길러라고 권한다,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는 샛길

낮달이 도라지 꽃밭을 바라보고 있네

몸빼바지 입고 경운기 모는 젊은 아낙의 고향은 베트남 어디

머릿수건 풀어 이마의 땀 훔치며 아따 꽃 참 이쁘오! 라고 남녘말로 말하네

고향에도 이 꽃이 피오? 물으니 붉은 얼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네

하늘엔 하얀 달

땅엔 보라 꽃

보라색과 하얀색의 원고지 사이로 난 작은 길을

키 작은 안남 여자가 경운기를 몰고 가네 -곽재구 <바닷가 마을>

 

곽재구 시인의 시선에 든 마을 풍경이다. 시인의 눈에는 샛길이 유독 눈에 들었고, 낮달이 떠 있었고 도라지 꽃이 피어있었고, 베트남에서 시집온 몸빼바지 입은 아낙이 경운기를 몰고 가며 ‘참 이쁘오’라고 하는 그 한마디가 그 상황에서 시인 것이다.

예술적 안목은 세속적이고 범속한 것으로부터 단절시키는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해낸다.

낯익음 속에 있는 낯섬을 발견해내는 시선이자.

다름을 인지해 내는 시선이 시적 안목이다.

이 순간의 시적 안목은 대상과 현상에게 인문적인 말 걸기다.

세상은 단 한순간도 같을 수가 없고, 늘 보아오던 풍경에 안겨있는 다른 삶의 풍경을 발견해 낸다.

이것이 관점과 관찰, 통찰의 문제다.

 

내가 살아 숨 쉰다는 걸 실감하는 날 있지

몸 어딘가에 송사리 떼 맑은 유년이 웅크려 있고

또 그 너머로 한없이 바람개비를 날리던

일곱 살의 봄날이 있지

생각하면 휘어져 있던 계절이 일어서고

멈춰있던 봄이 다시 자라지

파릇파릇 봄이 숨을 쉬지

조건없이 사랑하던 나의 어제가

지나간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내 곁에서 숨을 쉬지

겉과 안이 하나가 되는 그런 날이 있지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하면 할수록 휘어진 생각의 모퉁이를 달려오는

간절한 날이 있지

그럴 때면 또 환하게 꽃이 피지

모든 내려놓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와
함께 놀아주고 춤추고 불러주며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던

내가 생각해도 내가 멋있어 보이는

그런 날이 있지

그 때 봄이 오지 - 신병은 <봄, 피다>

 

시 창작력은 별 볼일 없는 풍경을 주목하는 힘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날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멋있어 보일 때가 아닐까. 그때 내 삶에도 봄이 오는 것이라는 작은 발견을 한 시다.

가끔 그런 날도 있다.

송사리떼 맑은 유년을 생각하고 7살의 봄을 생각하고, 조건없이 사랑했던 그 생각을 하면서 휘어져 있던 지금의 계절을 일어서게 하고, 멈춰있던 봄이 다시 자라나고 꽃이 환하게 피어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내 안에도 파릇파릇 봄이 숨을 쉰다.

어른이 되어서도 날마다 자랄 수 있는 비결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내가 힘들 때 말없이 다가 와 그냥 곁에 앉아있어 주기만 해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말하지 않고 묵묵히 다른 제스쳐 없이 곁이 되어 주기만 해도 넉넉하고 힘이 되어줄 때가 있다.

실로 ‘고맙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진심일 것 같다.

별볼일 없는 사소한 일상을 시가 되게 하는 응시의 힘이 보이는 시다.

작고 나직하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관찰, 즉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 혹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을 발견하는 힘이다.

아주 사소하고 낯익은 일상에서 낯선 삶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적인 순간은 늘 그렇게 보이던 풍경이 어느 날 문득 저렇게 다르게 보일 때일 것이다.

이것에서 저것을 보고, 저것에서 이것을 보는 일이 시적 발견이다.

늘 어머니가 생전에 해주었던 말인 ‘조심해라, 쉬어가면 해가’는 말이 세월이 지날수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이면서 가장 따뜻한 사랑이었다는 알게 되고, ‘너가 오니 좋다 그게 보약이다’라던 아버지의 환한 모습도 참 아프면서도 행복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소한 이런 생각이 귀한 시의 자리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시가 탄생한다.

이런 작은 깨달음이 시가 된다.

나는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시를 쓰려고 하지 마라’고 주문한다.

왜냐하면 시의 완성은 어차피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고,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생산자지만 문화를 창달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시의 마지막 저자가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 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봄길>

 

봄이면 늘 혼자 읊조리게 되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다.

며칠 전에 드라마 <대행사>의 대사 중에 나오는 말이 생각난다.
“길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가라, 그러다 성공하면 그게 다른 사람들이 길이라 부른다.”
삶의 길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걷고 또 누군가 따라오면 세월이 지나 길이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시적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나도 그 길을 걷는 한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봄길은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걸어가는 정호승시인의 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마무리 한다.

시를 쓰고 싶으면, 시인이 되고 싶다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느낌을 써보면 된다. 이게 시가 되는지,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지를 따지지 말고 쓰면 된다.

다만 사소하고 낯익은 대상과 현상을 잘 들여다보는 습관을 길러갈 때 별 볼일 없는 사소한 일상이 시가 된다.

시 창작은 그냥 시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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