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은 시를 줍는 일이다
시 창작은 시를 줍는 일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22.09.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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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73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를 쓰는 이유를 열거한다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내 삶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살기 위해서, 옛 애인이 그리워서, 첫사랑이 잘 산다는 소식에 배가 아파서, 텃밭에 심어놓은 수박을 도둑맞아서, 밧줄에 묶인 개가 슬퍼서, 꽃샘바람에 갓 핀 꽃이 시들어서, 아침에 새소리가 들려서, 아침에 새소리가 들려서, 봄이 와서......

그때 그 상황에서 마주친 생각의 토막이 시가 된다.

그래서 놀라운 생각은 발로 뛰어다니면서 현장에서 주운 살아있는 깨달음이다.

상상력은 없는 것을 생각해 내는 일이 아니라, 내 주위에 늘 있었던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 창조는 에디톨로지다.

창조적 상상을 쉽게 하려면 새롭게 보려고 하지 말고 다르게 보려고 할 때 가능하다.

위대한 상상력은 천재성이 아니라 ‘다르게 들여다봄’이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따라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라고 한 말도 예외가 아니다.

다르게 보기위한 장치가 관점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고 새로운 관점만 있을 뿐이라며, 관점을 바꾸는 것이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이 된다.

 

‘바깥어른은 잘 계슈’

‘지난주에 죽었다우, 저녁에 상추를 따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지 뭐유’

‘저런 쯧쯧 ... 정말 안 됐수, 그래서 어떻게 하셨수’

‘뭐, 별수 있나요, 그냥 깻잎 사다 먹었지요’

 

우스개 소리지만 관점에 따라 화법의 의도가 이렇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이된다.

그럴 때 다르게 보게되고 다르게 만나게 되고 다른 화법을 만나게 된다.

서명 후의 하늘이 나의 첫 작품이라 한 이브클링은 캔버스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 블루피그먼트도 그렇고, 1,600명의 도자공을 동원하여 2년 동안 1억개의 해바라기씨를 도자기로 구운 아이웨이웨이의 발상도 남들과 다른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든지, 벼랑에 자라는 소나무가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소나무에게 귀미테를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든지, 동백꽃이 피었다 가장 멋질 때 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꽃은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는 일상 속의 사소한 것들을 다르게 들여다보는 힘이고, 세속적인 것들에서 발견해낸 장엄함이다.

 

벌레먹은 나뭇잎-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이생진)

겨우살이 – 얹혀사는 삶(김동규)

지주목 –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산다(복효근)

 

나는 평소에 어린왕자를 읽기를 좋아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왕자의 어록이 새록새록해진다.

일상속의 언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 속에는 참 정겨운 삶의 진리가 안겨 있어 나를 깨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네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어떠한 것을 볼 때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그러나 그것은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다

어른이 되는 건 문제되지 않아, 어린 시절을 잊는 게 문제지

 

시 창작은 시를 쓰는 일이고, 시를 줍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범답이기도 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꾸준히 시를 쓰는 일이 중요하다. 그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보면 스스로 혹은 저절로 좋은 시 쓰는 비법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지 누구에게 배울 수 있는 비법은 없다.

그리고 나는 한 술 더 떠서 시는 쓰지 말고 주워라고 강조한다.

시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줍는 것이다.

 

봄, 피다

한재를 돌아 해양수산청 방향으로 가던 꽃샘바람과 여서동 쌈밥골목을 돌아 나온

매화꽃눈이 충돌한 현장을 본 복격자를 찾습니다.

 

봄, 피다

롯데시네마에서 한재 터널 방향 산비탈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그중 유달리 환하게 핀 매화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웬걸 스티로폼 하얀 조각들이

저도 꽃이라고 피어있다

아, 분명 봄이었어

쓰레기도 꽃이 되는 봄이었어

 

골다공증

하늘나라 먼 길을 몸 가벼이 날기 위해 어머니는 지금 몸을 비우시는 중이다

누가 더 섭섭했을까 / 윤제림

 

한 골짜기에 피어있는 양지꽃과 노랑제비꽃이 한 소년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소년이 양지꽃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내가 좋아하는 노랑제비꽃

양지꽃은 온종이 섭섭했습니다

노랑제비꽃도 온종이 섭섭했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우리주위에 있는 모든 일상이 다 시다. 그래서 시는 줍는 것이다

그리고 시의 화법 또한 일상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시의 화법은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말을 찾는 일이다. 그것이 디자인된 말의 힘이고 메타언어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듬어진 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안겨있는 진솔한 말이다.

최진석교수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에 가장 아름다운 무늬는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는 힘이라 역설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덕이 있어야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의 화법은 어떤 말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

 

또 더듬니? 그만 더듬으세요.

이것은 면도기를 광고하는 카피다. 면도를 하는 사람은 더듬어서 덜 깎인 부분을 찾아 다시 깎는다. ‘그만 더듬어세요. 잘 깎인 거 맞습니다’ 이처럼 시의 화법도 할 말만 한다.

 

너 그렇게 살지 마라

하룻밤 사이에 갓 피어난 목련꽃을 추레하게 만든 꽃샘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이 말 밖에 없다. 물론 이 상황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말을 하면 문제는 심각하게 변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열심히 살면서 할 일을 다하고 떨어지는 이쁘게 물든 가을단풍을 보며 떠 오른 역설적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정말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가 강조되어 있는 또 다른 시적 화법이다.

 

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고 살았어요.

정호승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시구를 접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 나는 올 봄은 밥만 먹은 식충食蟲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울림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주운 이러한 첫 생각이 한편의 시로 태어난다. 시는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난 작은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깨달음이 누구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가 눈물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공감하게 한다.

시의 화법은 공감화법, 정서적 화법이자 관계의 화법이다.

 

봤을까, 날 알아 봤을까

유안진 시인의 <옛날 애인> 시 전편이다. 헤어져 오랜 세월이 흘러 어느 모임에서 그 사람이 저기 보였을 때 드는 첫 생각을 그대로 옮겼다. 이렇게 할 말만 해도 상황적의미를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낯선 화법은 다르게 보는 관점에서 꼭 할 말만 하는, 가능한 말하지 않는 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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