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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마음 속에 묻어 둔 과제를 이제야 풀어가는 중예요”
“평생 마음 속에 묻어 둔 과제를 이제야 풀어가는 중예요”
  • 강성훈
  • 승인 2020.10.19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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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2주기를 앞두고 만난 사람 / 강종열 화백
여순사건 아픔을 풀어내려 대장정 나선 ‘동백꽃 화가’
20여년 계속된 작업 ‘여순사건’...“평화와 생명 담을 것”
강종열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숙명이었다.
강종열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숙명이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화폭이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하는 과제인 거죠”

20여년 가슴에 품었던 이야기를 화폭에 풀어내기 시작한 지 5년이다.

‘40여년 그림 인생’을 집약해 세계 최초의 화법을 선보이며 ‘동백꽃 화가’로 이름을 알린 강종열 화백이 ‘동백꽃’을 뛰어넘는 인생 역작을 그려가고 있다.

70여년 지역사회 곳곳에서 지역민들의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여수의 아픈 역사다.

“제가 태어난 게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예요. 어려서는 줄곧 어머니로부터 여순사건 당시 이웃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어요. 어머니는 이야기 끝에 늘 ‘무엇을 들었는지 말하면 안된다’는 당부였죠 ”

강 화백에게 성장기 ‘여순사건’은 아픔이었지만, 표현하면 안되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70여년이 지난 2020년 10월. 대한민국이 주목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강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숙명’의 과제로 다가왔다.

“이제는 풀어내야 하겠다 싶었죠. 우리 동네서 나고 자라고 성장해 온 작가로서 이 과제를 더 이상 외면한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지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붓을 들었다. ‘여순사건’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데만 5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그려낸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죠. 역사적 사건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는 과제. 그것을 표현해 내야 하는 거였어요”

이렇게 수 년을 가슴앓이 해 온 강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평화와 생명’이었다.

강종열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평화와 생명'으로 귀결됐다.
강종열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평화와 생명'으로 귀결됐다.

 

그리고 ‘평화와 생명’을 그려내는 작업은 극한의 육체적 고통까지를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순사건 관련 자료를 들여다 보기를 수개월,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채록하는 과정 등을 거쳐 그림의 얼개를 맞췄다.

그렇게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시작하자 강 화백은‘여순사건’을 온 몸으로 안아야 했다.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며, 자료를 통해 들여다 본 역사, 유가족들의 아픔까지 모든 것이 화폭 위에서 되살아나며 괴롭혔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몸무게가 10kg 가량 빠지기도 한 터라,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작업을 그만두면 안되냐고 말리기도 했더랬죠”

하지만, 그림을 완성해 갈수록 멈출 수 없는 작업이었다.

“숙명이었던 거죠. 지역에서 활동해 온 작가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과제였어요. 무엇보다 그림을 통해 누구의 잘잘못이나 좌우 이념이 아닌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의 슬픈 역사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뿐이었어요”

사실 강 화백에게 ‘여순사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20여년간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과제였다.

40여년 ‘그림인생’동안 평생을 ‘동백꽃’에 바쳐 온 강 화백은 10여년 단위로 작품 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바다와 동백’에 집중해 온 강 화백은 지난 2016년에는 20여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해 온 동백꽃을 새로운 인상주의 화법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국내 미술계의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강종열 작가는 흉내낼 수 없는 서명과 같은 물감자국, 즉 자필적 제스처에 대한 열망과 그 제스처를 통해 어떤 구상적 내용에도 의지하지 않고 반짝이며 출렁이는 숲의 놀라운 장면을 캔버스라는 물질적 장에 직접 옮겼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5년에는 이제 갓 독립의 기쁨을 맛본 동티모르를 화폭에 담았다.

강 화백의 동티모르 특별전은 단순히 전쟁의 반대인 평화의 개념을 넘어 화합과 이웃에 대한 배려, 넒은 의미에서 평화와 생명의 의미를 담았다.

작품에는 불타버린 건물, 스산한 공간에서 육신으로부터 흐르는 신음소리, 배고픔과 부모를 잃은 외로움 속에서 괴로워하며 거리를 서성이는 어린 아이들, 서로의 슬픔을 가슴에 묻어두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하며 끌어안아 주며 한집에서 공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 등 동티모르의 현실을 고스란히 옮겼다.

또다시 전환점에 마주한‘여순사건’은 강 화백이 평생 일궈 온 그림의 세계를 다시 한번 집약하는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순사건’ 작품의 하나로 마무리 돼 작업실에 한 켠에 내걸린 작품 역시 동백이다.

누군가에 의해 밑동까지 잘려 나간 동백나무에 긴 세월이 지난 다시 동백꽃 한 송이가 곱게 피어나고 있다.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단절시켜 버린 것이고, 다시 동백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의미 아니겠나”.

최근 ‘여순사건’이 재조명되고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요구가 높아지는 현실을 반기는 강 화백이다. 또한 간절히 바라는 바다.

“화법이나 색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술가로서 어떤 메시지를 담아 내는냐가 중요하겠죠? 이번에 작업중인 여순사건도 결국 ‘희망의 메시지’예요. 전쟁의 아픔이 없는 평화와 생명이 뿌리내리는 세상을 희망하는 거죠”

20여년에 걸친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이다.

“내년 가을께 세상과 만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픔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죠”

강 화백에게 이번 작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피카소가 세계적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게르니카’였어요”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1937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독일 콘도르 비행단이 무차별 폭격해 1,5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작품이다. 입체적 형상 속에 전쟁의 비참함을 표현해 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여순사건’을 세계에 알리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여순사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려나가는 만큼 해외 전시를 통해 전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죠”

그러면서 덧붙인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슬픈 역사가 없었으면 해요. 생명은 그 자체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소중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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