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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와 들려주기
보여주기와 들려주기
  • 남해안신문
  • 승인 2019.05.1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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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5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는 묘사다.

시는 이미지다.

시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는 그 밑자리에는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의미가 자리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떤 대상과 현상을 보고 느낀 것처럼 남고 그렇게 느끼도록 스케치해서 보여주라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본다’는 말의 개념이다.

‘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면 다 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본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내 눈에 보인 것들 중에서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온 것’일 때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온 것이 나에게 보인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으로 보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나는 너에게 나는 너에게’ 서로에게 의미있는 관계 즉 상호주체적인 꽃이 된다’고 했고, 생땍쥐베리는 <어린왕자>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본다’는 개념은 선택적 지각일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보이고,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온 것만큼 보는 것이다.

시창작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보여진 것들 중에서도 삶의 의미체험으로 만날 때 시는 출발하게 된다. 설명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뜻은 그 상황을 그림을 그리듯 그대로 그려서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는 감각적 실체이고 언어의 회화성이다.

시는 관념을 구체화해야 하고 그 구체화를 위해 비유, 유추, 연상을 활용하고,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이미지화 한다.

좋은 시는 이미지가 선명한 시다.

정지용의 향수의 주제(관념)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독자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활소가 해설피 울음 우는 곳’이라고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들려주다’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들려주는 것은 말하는 것과 구별된다. 말하는 것은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지만 들려주는 것은 그림이 그려지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보여주는 것이 들려주는 것이고, 보여주는 것으로 들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보여주다’와 ‘들려주다’는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자랐다.

그래서 유태인은 지금도 아이가 잠들 때까지 책 읽어준다. 즉 들려주면서 영혼을 일깨워준다

시창작은 독자들에게 나무와 풀과 바람과 꽃, 어둠과 햇볕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에 대한 관심이다.

 

여서동 한재 로터리에는 성질 급한 벚나무 한그루 있는데요.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도 나무도 저렇게 성질 급한 놈이 있다고

오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을 하는 데요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는데요

오늘 아침 그 나무 곁을 지나는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귀띔을 하는 데요

한발 앞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행복인지를 되묻는 데요

나는 대답 대신 저 나무가 관통한 겨울나기를 생각하는 데요

한발 앞서 여린 햇살을 끌어 오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을 보는 데요

땅 속 깊숙한 체온을 다독이던 젖 먹던 힘까지 보는 데요

한발 앞서 혼자 깊어 간 뒤태를 생각하는 데요

한발 앞서 세상의 문을 연 저 나무의 꽃자리를 생각하는 데요

부끄럽게도 나는 그 나무의 앞선 한발을 잠시 눈여겨보는 데요 - <성급한 벚나무>

 

매년 봄이면 만나는 여서동 한재터널 앞 벚나무의 이야기다. 다른 벚나무는 이제 꽃봉오리를 맺을 즈음 성질급한 벚나는 한발 앞서 핀다. 성질 급한 나무라고 가쉽거리로난 여겼는데 관점을 달리하여 소통한 결과 한발 앞서 사는 삶의 흔적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무의 겨울나기도 달랐을 것이고 여린 햇살을 한발 앞서 끌어오기 위해 발버둥친 흔적도 보았고, 겨울 깊숙한 곳에서도 애써 다독이던 젖먹던 힘도 보고, 한발 앞서 세상의 문을 연 꽃자리도 보게 된다. 보여주는 것으로 들려주는 관계를 알게 된다.

 

봉강동 한재 배수로 공사현장

인부들에 의해 담쟁이 밑둥이 마구 잘려나가고 있다

조심스레 올랐던 생이 한순간 허공에 걸린다

높이 만큼 아찔한 삶의 현기증이 널부러진다

누가 알겠는가

늘 무한대를 향해 오르지만

어느날 문득 밑둥이 잘린 채

말문이 막혀버리는 아침을 만나게 될지를

하혈하며 선 담쟁이

붉은 꿈이 늦가을 햇살에 파르르 떨고 있다 - <어느 날 문득>

 

하수로 공사를 하는 현장에 담쟁이 발목을 잘라 담장을 파랗게 덮고 있던 담쟁이가 고스한히 말라죽은 채 붙어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 상황에서 다가온 삶의 의미체험이 이 시의 키워드다. 나에게 보인 풍경중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온 풍경이 시적 체험이 된다.

그럼 ‘생각한다’는 개념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일까?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한다’는 것은 없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 본적이 있던 것을 머릿속에 다시 한 번 떠 올리는 것이다. 즉, 있는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고 낯설게 보는 방식이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은 다 편집된 결과라 했다.

아무튼지 간에 이런 의미체험은 먼저 보는 것이고 그리고 들려주고 생각나게 한다. 이런 과정은 보는 것부터 시작되기에 언어의 회화성이 중요하다.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창작은 한폭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 했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어둠이 풀려 골목 여기 저기 빗물처럼 고였다

퇴근 후 몸은 벽걸이에 걸렸던 옷처럼 떨어졌어요.

슬픔은 잡초처럼 쑥쑥 자랐다

나팔꽃이 햇살 한 모금 길게 연주를 하고 있다

햇살을 양품에 비벼먹는다

 

시를 잘 쓰려면 잘 볼 수 있고, 잘 생각하고, 잘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또 관점의 문제고 통섭의 문제이면서 대상체험의 편집문제다. 많은 관점에 의해 다이나믹한 상황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의미있는 자극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고 인상파의 원리 또한 그렇다. 재현이 아니라 그 대상을 편집하기 시작하면서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시작될 수 있었다.

가끔 몽타쥬 기법 즉, 따로 촬영된 화면을 편집을 통해 새로운 장면이나 내용을 만드는 편집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늘 보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라 믿고 시선이 곧 마음이고 포즈가 곧 생각이라 했다.

 

문득 한 세상이 거기 있어

지난겨울 돌담쟁이 홀연히 떠난 빈 화분에

어디서 날아와 터를 잡았을까요

어린 제비꽃이 세들어 삽니다

빈 화분은 어린 제비꽃에겐 넓은 운동장입니다

이슬을 받기 위해 내달리고

투명한 햇살을 받기 위해 내달린 숨찬 운동장입니다

까만 홀씨로 기억된

한 방울의 빗방울이 한 움큼의 햇살이 가득가득 합니다

새벽바람의 인기척이 얼마나 환했는지

얼마나 간절한 외침이었는지 잘 압니다

그 흔적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톡톡톡 깃을 터는 제비꽃 아침입니다 -<제비꽃 아침>

 

빈 화분에 흰 제비꽃씨가 싹을 틔웠다. ‘하, 요놈봐라’ 바람결에 날아왔을까 빗물 따라 흘러들었을까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어리디 어린 제비꽃이 아늑한 공간을 제 보금자리로 선택한 지혜로움이 새삼스러웠다. 제비꽃으로 하여 빈 화분도 다시 생기가 깃들었다.

 

시창작은 잘 보고 잘 들려주는 일이다.

창조는 보는 눈이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의미있게 다가온다’는 뜻이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의미다.

외형적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안겨있는 내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이다.

세상을 새롭게 열어가는 길도 잘 보는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내 삶을 창조적으로 사는 길이다

 

똑똑똑 봄 햇살이

봄 창을 두드린다

 

그 안에 뉘 계세요

들어가도 될련지요

 

바람도

연초록 맑은

추임새를 넣는다 -<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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