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비결은 소통에 있다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비결은 소통에 있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11.3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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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40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시 줍는 법이 40호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6년 11월에 ‘시는 쓰지 말고 주워라’는 부터였으니까 만 2년이 되었다.

세월이 빠르다. 늘 그랬듯이 시는 강의를 듣고 쓰는 일이 아니고, 이론에 의존해 쓰는 것은 더구나 아닌데 그동안 뭐가 그리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는지 되돌아 보인다.

다행인 것은 시는 줍는 것이라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는 그냥 줍고 그냥 쓰는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그게 바로 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는 그 때 그 때 만나는 대상과 현상을 지나치지 않고 잠시 생각을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 창작은 대상과 현상 속에 안겨있는 풍경 속 풍경을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 저 달팽이가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어

아, 저 거미가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어

아, 저 떨어진 동백꽃이 떠난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애

아, 저 벌레먹은 단풍잎이 누군가를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이구나

아, 저 연탄재가 제 몸을 태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주었구나, 그럼 너는?

아, 담장을 허물어내니까 가진 것이 더 많아지는구나

아,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곧은 소리, 바른소리, 정의로운 소리잖아

아, 애인이 생기면 남편에게 제일 먼저 말할까 하다가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 어느 날 문득 옛날애인을 만나면 ‘봤을까. 날 알아보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갓 피어난 목련을 해코지 한 꽃샘바람에게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한마디를 해주는 일이다.

 

대상에게 전해주는 시인의 진심이 담긴 일상적이고 사소한 한마디가 시다.

그래서 시는 언어적인 꾸밈이 아니라 마음이 깃든 풍경이어야 한다. 문학적인 수사는 우리가 늘 만나는 대상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며, 말의 의미를 재탐색하는 일이다.

그 상황 그 대상에 알맞은 말을 일상적인 말 가운데서 찾는 일이다.

시의 길은 우리가 늘 가는 출근길이고, 산책길이고, 시장가는 길이다.

생활하는 어느 한 순간에 ‘아, 저거’ 하는 메타포가 내 안에 안겨오는 그 한 순간이 바로 시적 인식의 계기가 된다.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폴짝 4차선 아스팔트 길을 건넌다

고라니와 노루와 달리 너무 작아 더 위험한 청개구리는

세 번 뛰었다가 한 번 쉬고 두 번 뛰었다가 또 한 번 쉬고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해도 중앙선을 넘지 못한다

한 순간에 정지되어 버릴 것 같은 숨죽인 풍경,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인 것을

납작하게 엎드렸다 발바닥 땀나게 뛰어도

길 건너 저쪽 청개구리 울음소리 아직 멀다

건너서 닿아야만 하는 너의 사랑을 아프게 읽는다 -신병은 <길 위의 경전>

 

청개구리 한 마리가 보여준 시적 풍경이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서서 개구리를 응원했다. 다행히 차들이 왕래가 적어 무사히 건너기는 했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10분 남짓한 시간을 지켜보는 나는 종일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을 건너가는 일이 가끔이 이처럼 위태로울 때가 많다는 것을 개구리를 통해 살펴낸 경우다.

내가 만난 모든 것들,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이 하나 같이 시적 대상이 되므로 늘 관심을 갖고 눈여겨 살펴봐야한다. 잘 쓰려면 잘 보고 잘 들어야 한다.

즉, 소통이다. 사실 내가 쓴 모든 시들은 소통의 결과물이다.

시인이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한 시는 지루하고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늘을 벗은 그 마음

맑다

무상無常이다

목탑木塔이다

해탈解脫이다 -신병은<고사목枯死木>

 

하얀 백골을 드러낸 채 서있는 노간주 고사목을 보면 세월의 깊이부터 해탈한 지금의 모습에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의 혁명이 일어난다. 즉 고사목을 보면서 연이어 ‘그늘을 벗은 마음, 무상無常, 목탑木塔, 해탈解脫’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혁명이 진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정서적 이유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본질을 짚어낸 미적체험으로 질주할 수 있을 때 건강미를 얻게 되고 향기가 되어 영혼의 울림을 주게 된다. 진솔한 미적 체험을 갖지 못한 채 말초적인 감각에 의존한 시라면 미적 정서를 둔화시키고 동적 삶의 체험을 둔화시킬 뿐이다.

시든 그림이든 우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할 때 힘을 갖는다.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터득하고 있는, 대상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들어 거기에 삶의 생명을 새겨 넣어야 한다.

몰입되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의미체험이다.

대상을 그냥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현상과 연결시켜 바라보려는 힘,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하려는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ojection)의 힘에 의해 대상을 바라봐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존재방식이 있다.

시적 대상은 어떤 아야기를 위한 제재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때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관심이다.

창조는 새로운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고 어떻게 다시 보느냐의 문제다. 리뷰Review다, 즉 다시보기며 재음미다.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이 있을 뿐이다.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고 편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 쓰는 하나의 길이 있다면 관점이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과 익숙한 것을 소통시켜 서로를 낯설게 하는 일이다. 그럴려면 자세를 낮추어 주의 깊게 대화하면서 사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받아 쓸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시골 노모에게서 전화가 오면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라고 전화를 받는다. 노모입장에서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답변이다. 그러면 ‘그냥 한번 해봤다’라고 한다.

지나고 보니 내가 참 무심했다는 것, ‘그냥’이란 말의 넓이와 깊이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제사 알게 된다.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늘 하는 말 ‘그냥 한번 걸어봤다’

그런데 ‘그냥’이라는 이 말의 무게는 무겁고 온도는 따뜻하다.

그 말 속에는 ‘안 본 지 오래다, 주말에 한번 들리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이런 말이 오롯이 녹아 있는 말이다. 그냥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의미지만, 이유를 대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후에야

어머니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렇게 창창하던 분이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 떨어졌는가 봅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게지요.

어머니는 지금 남아있는 몇 개 목소리로 견디는가 봅니다

가끔 드리는 전화 한통으로 사나흘을 견디곤 하지만

목소리도 유효기간이 있어

전화로 하는 목소리, 얼굴로 하는 목소리,

장남이 전하는 목소리, 동생이 전하는 목소리의

약발이 각기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유효기간이 제일 긴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달리한 아버지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는 어떤 빛깔로 기억 속에 남아

함께 저물어 가고 있는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단번에 눈에 빛이 나며

‘그럼, 니 아버지는 그랬제.’

소녀처럼 해맑은 웃음도 띠웁니다.

오늘 아침 한통의 전화에

어머니의 하루가 탱탱해지면 좋겠습니다 -신병은 <어머니의 양식>

 

아이슈타인은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습니다. 열렬한 호기심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시 창작은 보여주지 않아도 헤아려 보고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 들어주는 호기심의 화법이면서 나무와 풀과 꽃과 바람과의 공감화법이다.

언어적 표현도 이웃과의 관계성 속에서 정해진다고 했다.

대상의 내재적, 외재적 속성을 제대로 이해할 때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원리와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알맞은 언어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나무와 꽃, 풀과 바람, 개똥벌레, 잠자리 ..... 진정으로 만나고 소통하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비결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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