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안겨있는 의미를 보는 법에 대해서
대상에 안겨있는 의미를 보는 법에 대해서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11.23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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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9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바깥어른은 잘 계슈’

‘지난주에 죽었다우, 저녁에 상추를 따러 갔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지 뭐유’

‘저런 쯧쯧 ... 정말 안 됐수, 그래서 어떻게 하셨수’

‘뭐, 별수 있나요, 그냥 깻잎 사다 먹었지요’

 

위의 일화는 강한 역발상의 힘을 보여준다.

시창작은 한편으로 강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도 된다.

모든 제품은 유효기간이 있는데 주민등록증은 유효기간이 없다. 유효기간이 지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 .... 우리가 살면서 가끔 지름길을 택하게 되는데 이 지름길은 빨리 갈수는 있을지 몰라도 대신에 놓치는 게 많은 길이라는 것 ......그리고 또 몸이 지은 죄보다 마음이 지은 죄가 더 많은데 왜 마음을 가두는 감옥은 없을까...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낯선 발상일 것이다.

시창작은 대상과 상황에 안겨있는 의미를 다시 읽는 일이다.

문숙시인의 ‘걸려있다는 것’은 바나나를 걸어두면 싱싱하게 보존된다는데 그것은 왜 그렇까를 생각한다. 그것은 아직도 자기가 나무에 달려있는 줄 알고 꿈을 꾸기 때문이란다. 바닥에 두면 나무에서 떨어진 줄을 알아 빨리 썩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숙시인은 입양아의 파양과 고독사, 그리고 부모를 잃는 나와 꿈을 잃은 바나나를 병치시켜둔다.

 

둘이 합쳐지는 곳엔 언제나 거친 물살과 울음이 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 수위를 맞추느라 위층이 시끄럽다

늦은 밤 쿵쿵 발자국 소리와 새댁의 흐느낌이 들려온다

한쪽이 한쪽을 보듬는 일이 아프다고 난리다

마음 섞는 일이 전쟁이다

우루루 우루루 가슴 밑바닥으로 바위 구르는 소리를 토해낸다

돌덩이들이 가슴에 박혀 암초가 되어가는 시간이다

수면을 편편하게 하는 일 부드러운 물길만이 아니어서

부딪혀 조각난 것들 가라앉히는 시간만큼 탁하고 시끄럽다

저 지루한 싸움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 익사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 문숙<울돌목>전문

 

울돌목의 현상에 안겨있는 또 다른 의미를 읽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70주기를 맞은 여순사건을 생각했다. 아직도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지 못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시 같아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문숙시인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그렇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둘이 합쳐지는 곳엔 언제나 거친 물살과 울음이 있다’는 첫행도 그렇지만 ‘한쪽이 한쪽을 보듬는 일이 아프다고 난리다’ ‘마음 섞는 일이 전쟁이다’ ‘저 지루한 싸움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 익사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등의 시행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여순사건이 현상황을 반성하게 한다.

시창작은 한편으로 보면 대상에 안겨있는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에 대하여>란 시도 그렇다.

이 시를 보면 시상이 이렇게 전개된다.

 

나무를 심고 버팀목을 세웠다 ... 산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 시간이 지나 버팀목은 삭아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버팀목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낯설고 새롭게 읽었다.

대상과 현상의 의미읽기는 뚫어지게 응시하는 데서 가능하다.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에 닿고 있다.

대상을 새롭게 읽다보면 서산에 지는 해를 끄집어 올리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조용히 앉아 열 시간을 기다리다 동쪽으로 돌아앉으면 된다.

그러면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별것 아닌 발상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시창작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

별것 아니고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깨달음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속에 뜨거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안겨있다.

카피라이트 정철은 연극의 1막과 2막 사이에 암막이 있는 것은 옷을 연극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입고 나오면 연극이 지루하니까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깜깜한 밤이 있는 이유는 오늘의 생각과 내일의 생각이 같으면 인생이 너무 지루하니까 생각을 갈아입으라는 뜻으로 풀었다.

참으로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다.

발상의 전환이 대상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나의 안부를 제대로 한번 물어 봐 준 적이 있는가를, 그리고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해본 적이 있나를 반문해본다.

그러고 보면 남의 안부를 잘 물었고, 남에게는 선물을 많이 했으면서 진작 나에게는 한번도 그렇게 한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한번 내 안부를 묻고 싶었다

 

나 이제 가만히 있을래요

보지도 듣지도 않을래요

아무 것도 아닐래요

그간에 참 용케도 잘 살았어요

아니 잘 견뎠어요

옥상 빨랫줄에 매달려 펄럭였거나

혹은, 키 큰 나무처럼 무성하게 살랑거렸어요

한낱, 그깟, 이란 부사어는 쓰지 않을래요

누가 뭐래도 열심히 살았거든요

나, 이제 고요한 바람소리로 돌아갈래요

고요하게 떨릴래요

나, 이제 나를 지워갈래요

아무도 모르게 그늘 속 그늘 되어 살랑거릴래요

바람 속 바람 되어 펄럭일래요

어둠 속 어둠 되어 스며들래요

가만히 가만히 내 안부를 물을래요 - 신병은 <안부를 묻다>

 

어떻게 보면 시창작은 낯익은 것들을 서로 관계지어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 낯익은 의미를 관계짓기 하는 순간 각각 다른 의미의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다.

‘벌레먹은 나뭇잎의 상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이라는 의미가 서로 따로따로 쓰이다 문득 이 두말이 함께 만나면서 서로 가치있는 의미로 재창조된다. 즉 ‘벌레먹은 나뭇잎이 아름다운 것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 때문이다’라는 시의 의미로 재창조된다.

‘나의 집’과 ’몸’을 관계 지으면 ...수리할 곳이 많다. 콜레스톨에 막힌 혈관 보일러,

하수구가 막힌 방광, 유리창의 시력, 내 이 집에서 그동안 잘 살았다, 장마철에 젖은 벽지처럼 손보기에 너무 낡았다, 신이여 이제 이 주택을 허물어도 좋다 .... 이런 발상이 가능해 진다.

유도의 ‘낙법’은 ‘떨어지는 법’이다. 이 현상을 가만히 다시 읽다보면 ‘내 몸을 내가 맨바닥에 내동이 치는 것도 법도가 있다’ ‘힘을 주면 내가 나를 해친다’는 의미읽기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유도장에가면 사범은 늘 ‘힘, 빼 ~~~’라고 외치는 것이 ‘제 몸을 놓는 일’임을 알게 된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좋은 상상력과 창의력은 의외로 평범한 일상과 낯익은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한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개념을 다르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모든 개념, 의미는 시적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창작은 대상과 현상의 의미를 다시 읽는 일이면서, 그러기 위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삶의 풍경이 되도록 대상과 대상의 관계짓기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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