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형상화를 통해 세계를 재창조한다
이미지, 형상화를 통해 세계를 재창조한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8.06.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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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33
신병은 시인.
신병은 시인.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옮겨놓을 수 있을까?

마음의 수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게 바로 이미지와 형상화의 몫이다.

시와 그림의 행복한 만남을 안내하는 <고흐씨. 시 읽어 줄까요>를 읽었다. 그 책에서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노래를 듣고 좋은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봐야한다’고 한 괴테의 어록을 접하면서 시 읽는 사회, 시 읽는 정치, 시 읽는 학교, 시 읽는 가정을 생각했다.

시를 통한 소통은 곧 마음의 옮김이고 마음의 수혈이다.

 

아침에 야단을 떠는 참새들 소리에 잠이 깬다.

나이 많아 아침잠이 줄어든 나보다 더 부지런한 놈들의 뾰죡대는 부리가 맑은 아침 햇살을

허리 밑까지 밀어넣는다.

나뭇잎 까르르 간지러워 웃는,

저 분명한 소리가 참 할 말이 많은 세상의 긴 말, 혀 짧은 말,

신소리까지 헹궈낸다

나뭇잎 출구에 기대어 쭈루룩 쭈루룩 물관을 열고 엊저녁 남겼던 아린 말,

상처가 된 말들을 골라내며 향기 밴 아침을 맞는 나도,

나뭇잎 되어 웃는다 -신병은<나뭇잎 출구>

 

나뭇잎 까르르 꽃보다 더 예쁜 봄이다,

이 아름다운 봄을 맞아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우리 여수의 동백작가 강종렬화백의 초대전이 있었다.

여수세계박람회재단 송대수이사장이 취임 한후 지역문화예술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기에 더 뜻깊은 전시회로 다가왔다. 강종열화백은 40년이 넘은 화력을 지닌 국내의 중견작가로서 존경을 받아올 뿐만아니라, 전국 각 지역에서 끊임없이 초대 받는 것은 우리지역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백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우리지역예술의 든든한 힘이다.

3500호에 달하는 스케일도 신선한 충격이지만, 흔히 21세기 인상주의를 표방하는 이 동백작품이 나오기까지 그동안 동백과 함께한 의미체험의 시간에 주목하게 된다. 그가 동백의 원형적 인상과 호흡을 잡아내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동백 군락지란 군락지는 다 찾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숱한 발품으로 동백과 소통하고 나누고 그 대화의 결실이 바로 작품 속에 담아놓은 원형적 인상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해 정성껏 다가갈 때 대상도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강화백은 오랜 체험에서 터득하고 있다.

 

한 잎 날아 한 잎의 호흡으로

겨울 언저리가 뜨겁다

칼바람도 허공도 고독도 눈발도

마침내 핀다

그래 그래 그 맘 잘 알아

그래 그래 다 알아

견뎌낸 그 맘 붉어 더 뜨거운

그게 아마 꽃이었어

하늘이 하늘 답고

땅이 땅 다운

그게 아마, 꽃의 단단한 기억이었어 - 신병은 <동백꽃 피다>

 

작품 앞에 서면 수없이 피고 지는 동백의 숨소리를 듣는다.

피는 것도 고요, 지는 것도 고요라는 것, 고요는 결국 시간의 깊이임을 알게 된다.

오랜 원형적인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숨막힐 듯한 원형적 고요와 정적, 원형적인 빛과 어둠, 동박새의 울음소리 까지 체험하게 된다.

강종열의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서 저런 당당하고 저력있는 호흡이 나오는 걸까, 어떻게 하면 저런 대상을 직면하고 응시하는 힘이 나올까를 의심하게 된다.

응시의 힘이 곧 재발견의 힘이다.

그에게 그림은 주변관찰을 통해 얻게 되는 사유의 힘으로 자기생각을 검증받는 작업이다. 그리고 질 좋은 창작은 신기한 것 보다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귀띔해 준다.

 

놓아버린 순간에 저를 한 번 더 피웁니다

툭툭툭 저를 버리고

세상 편하게 드러누운 저 꽃들의 고요한 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이 지는 것을 다시 꽃 피웁니다.

순간이 천년인 꽃,

천년을 다시 꽃피우는 사랑입니다 -신병은 <동백꽃 지다>

 

그는 늘 자신의 그림은 종교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만의 작업을 하라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누구를 흉내 내지 말고 오직 삶의 현장을 흉내 내라고, 삶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그의 동백은 우리가 늘 보던 동백이면서도, 늘 보던 동백이 아니라 그만의 의미체험으로 그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동백이다.

‘낯설다’와 ‘익숙하다’의 경계가 선명한 그림이다.

색채의 은근한 하모니, 형태를 단순화하고 따로 놀던 색채를 통합하는 기법을 구사한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깊어지면서 사소한 디테일이 사라지고 자질구레한 모든 것이 퇴장하면서 마침내 그림이 남게 된다. 대상은 위대해지고 하나의 거대한 합집합체가 되어 캔버스를 채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가 되는 온생명으로 동백그림이 자리하게 된다.

그림도 그렇고 시도 마찬가지지만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그림과 시의 스토리텔링은 해설을 꺼집어내는 안목으로 여행이 아닌 암행인 셈이다. 깊은 내면적 통찰이 없이는 새로운 의미체험을 기대할 수 없고 전체에 대한 조망과 통찰력으로 총체적 사고가 없이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묻고 들춰보는 호기심과 의심이 창작의 동력이다.

그래서 그림은 기교적인 완성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으로 독자로 하여금 사유의 개입을 열어놓는다. 이 점에서 강종열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시를 만나고 원형질의 호흡을 만나고 어둠을 만나고 신화적 의미체험을 하고 있다.

시 창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좋은 시에는 그림이 있고, 좋은 그림에는 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의 그림 속에 숨겨둔 시, 세상과의 화해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먼 곳에 있는 순결한 자아를 만나고 현재의 나를 세상과 화해시켜 준다.

 

어떻게 견뎌낸 외로움인데

어떻게 다독여온 아픔인데

어떻게 열어놓은 설레임인데

어떻게 펼쳐놓은 그리움인데

혼자 깊어지다

저를 놓아버리는 단음절 첫말이

이렇게 뜨거운데

설마 설마

이게 한순간일라구 -신병은 <동백꽃 지다>

 

좋은 그림 좋은 시는 세상 모든 사람과 통용되는 언어를 구사한다.

그런 작품이라면 얼마나 넓고 깊은 소통의 힘을 지니고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전의 언어는 바로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연과 함께 소통하며 자연이 내품는 메시지에 대해 해석이 가능하고 그 자연이 하고자 하는 말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언어. 바로 그 자연 언어가 있었지 않았을까. 이들의 언어는 그래서 자연과 일치될 수 있는 길이 되고 동물이나 식물들의 아픔도 듣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 힘의 근원은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언어에 있지 않았을까?

돌, 풀, 바람, 꽃, 나무, 나비 등의 대상과 현상 앞에 쪼그려 앉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풍경이 곧 그림이자 시다.

시는 풍경 속 풍경을 보는 것이고 그림은 풍경 속 시를 보는 것이다.

풍경체험은 있는 그대로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옮겨놓는 작업이고, 마음의 수혈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그게 바로 이미지와 형상화다.

그래서 강종열 화백의 그림 앞에 서면 문정희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런 질문을 만나는 것이다.

아, 나는 또 어디를 다녀와야 봄이 될 수 있을까?

아, 나도 언제 꽃 한번 제대로 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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