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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사(五忠祠)의 운동기구는 사족(蛇足)이다
2017년 12월 04일 (월) 10:37:15 이상율 기자 ylsyool@chol.com

여수시 웅천로 354번지 고락 산마에 있는 오충사(五忠祠)는 여수시 향토문화제 제2호다. 비록 지방문화재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약무 호남(若無 湖南) 시무 국가(是無 國家)를 시현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4 충신들이 배향되어있다. 당시 전국의 유림에 의해 사우 건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국가 문화재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사당 입구에 걸린 연혁을 살피면 오충사의 기원과 설립과정이 잘 나타나있다.『오충 사는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구국(救國)을 위하여 공을 세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과 압해정씨(押海丁氏) 일문(一門) 충절공(忠節公) 정철(丁哲), 충의공(忠毅公) 정춘(丁春), 충숙공(忠肅公) 정린(丁隣). 충정공(忠貞公) 정대수(丁大水) 등 충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우(祠宇)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어 오충 사는 여수시 선원동 가고마을에 건립되었던 가곡서원(佳谷書院)으로부터 기원한다. 이 가곡서원은 임진왜란 중 큰 공을 세우고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철(丁哲)의 공을 인정하여 조선 조정에서 충절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지자 1826년 (순조 26년) 4월경 성균관과 순천향교 유림에 의해 사우건립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해 7­8월에 전라남도 향교(광주, 나주, 전주, 남원 향교 등)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건립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어 1847(헌종13년)년 전라도 유림들의 상언(上言)에 의해 가곡서원이 건립 되었으며, 이후 사충사(四忠祠)를 병설하여 정철, 정준, 정대수 등 사충공신(四忠公臣)을 배향(配享) 하였다. 그런데 사충 사는 1968(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월 철폐령으로 인해 가곡서원과 같이 훼철(毁撤) 되었다. 이 사우는 1923년 8월 압해정씨 창원파 문중과 유림, 향민들에 의해 현 위치에 이건하고 이충무공(李忠武公) 후손들과 합의하여 충무공 이순신을 주벽(主壁)으로 사충공신(四忠功臣)을 함께 배향하고 오충사(五忠祠) 편액(扁額)을 걸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 일본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면서 사중재산(祠中財産)까지 몰수당하였다가 1962년 현 위치에 추모복설(追慕復設)하였다. 1976년 한 차례 중건되었으며, 충의로 순국하여 나라를 지켰던 다섯 충신을 찬양하고 기리기 위하여 여수지역 유림들과 이충무공 유적 영구 보존회가 향민들과 같이 매년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석채례(釋菜禮)를 봉행(奉行)하고 있다. 고 적혀있다.

이 권역은 이충무공의 구국 혼을 상징하고 이 고장 출신의 충절이 깃든 사원으로 엄숙하고 경건해야할 터전이다. 최근 공원 입구에는 표지 석을 세우고 비석거리를 확장 조성하고 공원 중앙에는 팔각정을 세워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겐 쾌적한 휴식공간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 때문인지 팔각정 인근에 세워진 운동시설은 옥에 티가 되고 있다. 오충사 설립 취지에도 주변 경관과도 조화를 전혀 이루지 못하고 거의 이용도 하지 않아 눈엣 가시처럼 보인다.

사족(蛇足)이란 말이 있다.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준말이다.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군짓을 하여 도리어 잘못되게 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이 오충사 광장의 운동기구를 이르는 것 같다. 도리어 오충사의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팝나무나 동백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이팝나무는 옛 선조들이 마을의 정자 목이나 신목(神木)으로 많이 심었다. 5월 중순쯤엔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인다. 새하얀 꽃을 예쁘게 가지가지마다 소복이 뒤집어쓰듯 꽃이 피는 나무다. 영원한 사랑 충절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꽃과 수형이 아름다워서 지금은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고 있다. 동백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사랑,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다고 해 청렴과 절조라는 꽃말도 갖고 있다.

이순신과 압해 정씨 일문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순신이 살아있을 때는 자당 변 씨 부인을 송현 마을 정대수 집안에 기거하도록 하였으며 사후에는 자신이 오충 사에 배향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보면 사우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라도 이미 설치해있는 운동기구를 철거하고 도리어 이팝나무나 동백을 심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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