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는 인간을 담는 그릇이다
詩는 인간을 담는 그릇이다
  • 남해안신문
  • 승인 2016.08.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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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 시인의 시 줍는 법, 시 먹는 법 15]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박경덕)를 접하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맹자'의 의미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맹자는 인간됨의 출발이다.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서문에 담겨있는 삶의 의미를 안다는 맹자의 생각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맹자가 가르쳐주는 소중한 지혜중의 하나가 ‘삶은 세상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고,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여정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신의 내부를 다듬어 세상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여정’이라 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가 인간이고, 둘째가 관계짓기다.

건축가 조성룡 또한 언제나 인간의 삶에 천착한다고 말한다. 건물은 사람이 있는 곳, 나아가 도시의 부분을 점유하며 주변과 반응하는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유기적 생물체’로 확장된다며, 건축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강조한다. 건축의 본질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인문학에 그 근거를 둔다고 한다.

불교의 화엄사상 또한 관계의 중요성을 말한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화엄에서 가르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법칙이다.

하나[一]는 하나의 위치를 지키고 다(多)는 다의 면목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와 다(多)가 서로 포섭하고 융합한다는 것이다. 이때 하나가 없으면 다(多)가 없으며, 하나가 있으면 일체가 성립한다.

모든 것이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도 되고 십으로도 되고 일체로도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

한 잎 한 잎 피었다

 

너 안쪽으로 어떤 길이 나 있어

너를 세상으로 불러내었나

 

떡잎에서 꽃잎으로

그 사이로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첫 예법으로

길 위 또 어떤 길을 세우나

 

울림소리 하나 나비처럼 팔랑대는

길 위

너 꽃처럼 피었다 -졸시 <떡잎에서 꽃잎으로> 전문

 

아이와 꽃이 ‘피다’는 말을 매개로 관계성을 맺는다. 꽃이나 사람이나 스스로의 길을 따라 피어나 스스로의 예법으로 살아간다는 발견에 닿아있는 시다. 여기에는 한 잎 한 잎의 떡잎과 꽃잎, 맑고 고운 울림소리의 아이의 손, 길이 서로 소통하면서 관계성을 구축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개체가 언어를 매개로 관계하고 소통하여 새로운 하나의 의미망을 생산한다.

창작은 ‘통섭’이다. Consilience은 서로 다른 분야의 이론과 지식을 한데 묶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말한다. Convergence, Hybrid, Fusion, Intergration, Unification 등이 창작의 원리에 닿아있다.

통합이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묶어 놓는 것이라면,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이고, 통섭은 다른 영역이 함께 소통하여 뭔가 새로운 다른 것을 창작해 해는 것이다. 이를 창발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통섭의 원리는 ‘다른 곳에서 이곳을 더 잘 보게 된다’는 데서 출발하기도 한다. 시창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좋은 시는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면서 세상의 삶을 가슴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낼 줄 알아야 한다. 문학이 삶에 대한 이해를 향한 접근이라면 시에는 인간이 담겨있어야 한다.

고미숙 또한 <호모에로스>를 통해 인간은 에로스적 충동으로 태어나고, 에로스를 삶의 근원적 힘으로 사용 한다. 즉 사랑을 통해서 존재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 간다는 뜻이다.

진정한 사랑은 삶이 통째로 소통되고 서로 교감하는 것, 무엇을 사유하고 꿈꾸고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무엇에 분노하는지를 통째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랑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니체는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스스로 창조한다.’고 했다. 대상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상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삶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 속에는 반드시 ‘인간’이 안겨있고, 세상과의 관계짓기가 중요한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거리를 긴밀하게 당기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나를 바라보는 너도 한 송이 꽃이야

너도 하나의 우주야

나를 봐, 우주는 이렇게 작은 거야

 

힘들었지

오늘 밤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분명 활짝 피어날 거야

당신,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거냐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올 거야

 

지더라도 피어야 꽃이다

꽃이 되는 일은

세상 속으로 나를 꺼내 놓은 일이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일이다

 

햇살에 마음 내려놓는

뒤태 환한 꽃들의 어록,

 

나를 기억해 줄 누군가가 없어도

웃음의 처음을 말해줄 누군가가 없어도

이해의 끝을 증언해 줄 누군가가 없어도

한번이라도 꽃을 피운 생은 지더라도 영원히 꽃이다

- <꽃들의 어록>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마음을 다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도 알고 보면 인간, 얼마큼의 진심을 담아 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인간의 솔직함이 바로 감동과 공감의 출발일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방법적인 문제는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해야 한다. 비법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알고 보면 내가 하는 한마디 속에 우주와 세상의 삶이 안겨 있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아내든 아이들이든 이웃이든 내가 건네주고 건네받는 한마디 말이 곧 시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꽃이 되고 누군가에는 잡초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시가 되기 때문이다.

 

봄빛 무성한

별꽃, 쇠별꽃, 주름잎, 괭이눈, 까마중, 달개비....

 

누구에게는 꽃이고

누군가에게는 잡초다

- 졸시 <꽃,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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