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도마 위의 생선
검증-도마 위의 생선
  • 이상율 기자
  • 승인 2013.03.21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마 위에 생선이 있다. 신선도를 살펴 가시를 잘라내고 비늘을 벗겨 횟감으로 할까? 매운탕감으로 할까? 구이 감으로 할까?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칼 잡은 사람의 몫이다. 샅샅이 뒤적거리다 보면 감추고 있던 선도(鮮度)마저 들통 나기 마련. 만약 생선이 싱싱하지 않으면 말리거나 염장하거나 아예 버리는 것도 오로지 주인의 선택이다. 요즘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민 앞에 벌어지고 있는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이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사청문회법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도입됐다. 이후 검증 대상이 더욱 확대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무위원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방송통신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합참의장, 한국은행 총재 등 모두 60명으로 더욱 늘어났다.

그동안 역대 정부 고위공직자 후보로 추천되었다가 낙마한 사례는 많다. 김대중 정부 시절 6명의 총리, 장관 후보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감사원장, 헌법재판소장후보 등 8명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감사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10명이 낙마했다.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논문 표절,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문제, 위장전입, 실권주 시세 차익, 아들의 이중국적 등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코드 인사, 판공비유용, 임명절차 위법, 재산축소신고, 스폰서논란, 전관예우, 천안함 발언논란 등으로 낙마사유는 더욱 다양해졌다.

지금껏 청와대가 고위 공직자를 인선할 때는 200개 문항의 질문지에 대한 답을 받아 검증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재산 형성에 대한 질문이 40개로 가장 많고 △직무윤리(33개) △사생활(31개) △납세 등 금전납부의무(26개) △전과 및 징계(20개) △연구윤리(15개) △병역의무(14개) △학력과 경력(12개) 등이 포함돼 있다니 제대로 하면 이런 필터링에 견딜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 박근혜 정부 구성을 위한 공직자 인사검증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제대로 필터링 되지 못해 낙마하거나 자진하여 사퇴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모 국무총리 후보가 중도하차를 하고 장관이나 청와대 고위직 임용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검증은 필수적이지만 산뜻하게 통과하는 인물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심지어는 거론된 인물 가운데는 도마 위의 생선 모양으로 만신창이가 될까 봐 지레 손사래를 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복부인 노릇을 했던 자신의 과거 행적이 드러날까 봐 남편의 벼슬을 애써 말리는 부인까지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하는데 섣불리 덤벼드는 사람들이 뻔뻔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슬그머니 검증 잣대가 너무 가혹해 적임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고 있다. 흔한 위장전입 정도는 모른체하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상탁하탁(上濁下濁)이라고 하지 않은가. 공직자는 청렴하고 정직하고 도덕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많이 배우고 자리가 높을 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무도덕한 짓을 했다. 우리 국민 가운데는  그렇게 할 수 없거나 아예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훨씬 많다. 흠결이 있으면 자신이 스스로 사양하는 겸양이 있어야 하는데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

사족을 달아야겠다.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있는데 선출직 공직자의 검증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선다. 이들은 사실상 검증의 치외법권 격이다. 유권자의 검증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검증은 혈연, 지연, 학연 등 갖가지 연줄에 의하여 묻히기 마련이다. 도리어 흑색선전만 판을 치게 된다. 내년 지방선거에는 유권자 합의에 따른 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제고되었으면 한다. 특히 건전한 사회단체들이 앞장서 나섰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