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과 네덜란드
하멜과 네덜란드
  • 고재경 / 비전여수인재육성 대표
  • 승인 2010.11.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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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포 해양공원 끄트머리에 가면 하멜등대가 있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여수를 탈출, 일본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등대다.

하멜은 1653년(효종 4) 상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태풍을 제주도에 표착하게 된다. 승무원 64명 중 28명이 죽고 살아남은 36명과 함께 제주, 서울, 강진 등을 전전하며 때로는 임금인 효종을 호위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격한 감시 속에 잡역에 종사하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1663년(현종 4) 흉년이 들자 하멜 일행은 남원에 5명, 순천에 5명,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12명이 분산 배치된다. 전라좌수영에 배치된 하멜은 1666년(현종 7) 7명의 동료와 함께 종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의 나가사키(長岐)로 탈출하였다.

나가사키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무역대표부(商館)가 있었다. 하멜은 이곳에서 1년 동안 머무르며 일본 막부에 협상중재를 요청하여, 조선에 남아 있던 네덜란드 선원들이 전원 석방되자 1668년 일행과 함께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본국으로 돌아간 하멜은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유명한 기행문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의 억류생활 13년간의 기록으로서 조선의 지리 · 풍속 · 정치 · 군사 · 교육 ·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하멜이 몸담았던 동인도회사는 당시 해양강국이었던 포르투칼, 스페인을 추월하고 부강한 네덜란드를 만들기 위해서 설립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데 암스텔담의 유지들은 물론 여염집의 가정부까지 참여해서 만든 회사라고 한다.

하멜이 승선했던 스페르베르 호에는 12살 먹은 선원도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강인하게 키웠다. 10대부터 무역선 승선경험을 시켜서 강인한 해양강국의 역군들이 되게 하였다. 당시의 네덜란드 인구가 200만 명인데 100만 명이 바다로 나갔으며, 그 중에 살아서 귀환한 사람이 절반도 안 되었다.

네덜란드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자원빈국이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보다 조금 큰 면적에 전국토의 65%가 해면보다 낮고, 인구 또한 1700만 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나라다. 그런데 꽃 수출 세계 1위, 농산물 수출 2위, 전체 교역량 세계 4위에다가 1인당 GNP가 25,000불이 넘는 강소국이다.

무엇이 네덜란드로 하여금 이러한 강소국이 되게 했을까? 네덜란드 사람들은 개척정신이 투철하다. 호주를 맨 먼저 발견한 사람도 네덜란드 선원이고, 뉴욕의 ‘뉴암스텔담’도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든 도시다. 협동심이 강한 민족이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항해를 할 때에도 반드시 선단을 이뤄 태풍을 이겨내며 세계의 대양을 누비고 다닌다고 한다.

게다가 네덜란드인들은 검소하기까지 하다. 메이커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며, 커피점의 대명사가 된 ‘스타벅스’ 도 그 실은 네덜란드 사람이 미국에 가서 개점한 것인데 전 세계에 7천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네덜란드에는 한곳도 없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나라다. 한 사람이 1.5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으며 거기에 걸맞게 세계 제일의 자전거 도로망이 구축되어 암스텔담 시민의 80%가 50km 이상을 자전거 로 출퇴근을 하고 심지어 80세의 여왕이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간다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찍부터 국제화에 힘써서 전 국민의 90%가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처럼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해서 외국어를 익힐 수 있을까? 네덜란드 청소년들은 방학이면 프랑스나 독일 벨기에 등 이웃 나라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국어도 배우고 학비도 벌어온다. 대학생은 부모가 학비를 대주는 법이 없다. 잘사는 사람들도 세상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자녀들에게 신문배달을 시킨다고 한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슈퍼마켓에서 창고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결산 수업을 받게 하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2012여수엑스포가 5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고장 여수가 해양강국으로 나가는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다. 게다가 기후보호총회까지도 유치하려고 하는 참이다. 해양강국의 꿈을 갖고 기후보호 시범도시에 걸맞은 우리들의 행동양식은 어때야 할까? 우리보다 앞서서 세계화를 이루었고 녹색성장의 모델이 되어 온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사람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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