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Ray Charles)
소울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Ray Charles)
  • 남해안신문 기자
  • 승인 2010.07.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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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만의 재즈가 있는 풍경(3)
레이찰스(1930~2004)는 천재 피아니스트 이자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어렸을 때 (7살) 녹내장에 걸려 앞을 못보게 되고, 희미하게 앞이 보일 때 스스로 자신 앞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어머니(아레사)로부터 홀로서기 교육을 엄하게 받아 세상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레이 엄마와의 약속 잊지마 마음의 불구가 되선 안돼’
6살 어린나이에 동생이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동생의 죽는 장면이 환영처럼 따라 다니며 일생동안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15살에 홀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면서 상황이 악화 되지만 그는 점자로 악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웠으며,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의 소질을 나타낸다.

처음엔 재즈 보컬리스트 넷킹콜(Nat King Cole)의 모창 가수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노래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R&B, 블루스, 재즈, 가스펠, 빅밴드, 컨트리 음악 등 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분야를 구축하며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낸다.

1979년 조지아 주의 공식 주제가로 선정된 “Georgia On My Mind”를 비롯하여 2003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미국 음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음악중의 하나로 선정하여 보관한 “What`d I say" 우리에게도 친숙한 “Unchain My Heart”, “Mess Around”, “I Got A Woman” "I Can`t Stop Loving You", "Hit The Road Jack" 등 그의 주옥 같은 곡은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통하여 대중의 지지를 확인했다.

그의 독특한 보이스와 리듬감, 타고난 작곡과 편곡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의 끊임 없는 도전과 노력을 하였으며 198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등록되었으며,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미국 케네디센터 공연예술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1998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였으며, 12번의 그래미상 수상과 76개의 싱글앨범이 베스트 차트에 기록 되었다.

1992년 PBS 방송국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하였으며, 이후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Ray")가 만들어 지지만, 2004년 영화 개봉을 앞두고 그해 6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영화 에서 레이찰스 역할을 맡았던 제이미 폭스는 2005년 남우 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레이 찰스의 모습을 신들린듯 완벽히 재연했다. 레이찰스의 곡은 당대 최고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으며,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조 카커(Joe Cocker), 밴 모리슨(Van Morrison), 에릭 버든(Eric Burdon) 등 수많은 거물 뮤지션들이 그를 모방하였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행적은 영화와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하게만 보였던 그의 음악 인생에도 어두운 면은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암흑 속의 공포, 철저히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은 그를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1978년 발표한 자서전 ‘브라더 레이’에서 “20여년 동안 헤로인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해왔다”고 고백 할 만큼 마약은 치명적인 것이었으며, 앞을 보지 못하고, 어렸을 때 동생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마약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레이찰스는 음악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 하였다. “음악은 피처럼 내 몸의 일부분이며 물, 음식과도 같다. 나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말하였다.

그는 타계 하기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가 음악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라는 질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삶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레이찰스가 단지 맹인 이라는 불편을 딛고 최고 음악가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메세지가 있었고, 영혼이 담겨 있었으며,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현실 감각을 잃지 않은 레이 찰스 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흑인 빈민 출신 이면서 시각 장애인으로 최악의 환경을 딛고 당당히 세상의 편견과 맞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롭고 풍부한 음악을 선사했던 그는 지금도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영혼의 음성이자 영원한 소울 음악의 대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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