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리더십 - 의에 살고 의에 죽다①
이순신리더십 - 의에 살고 의에 죽다①
  • 남해안신문 기자
  • 승인 2010.01.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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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 비전여수인재육성 대표
이순신장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사람은 마땅히 자기 일생을 이끌고 가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가 없이 사는 사람은 바람같이 왔다가 번개같이 가버리는 자취 없는 사람일 따름이다.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다.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실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다만 먹는 것으로만 족하다. 그러나 사람은 먹는 것 말고도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 가치관에 입각한 삶을 살 때에만 자취를 남길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해를 가지고 다툰다. 이로우냐 해로우냐는 것으로서 생활의 목표를 삼는 것이다. 또 흔히 승부를 가지고 겨룬다. 이기느냐 지느냐를 가지고 생활의 목표를 삼는 것이다. 또 흔히 성패를 가지고 따진다.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으로써 목표를 삼는 것이다.

그러나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생활의 목표를 이해 만에 두지도 않았고, 승부 만에 두지도 않았고, 또 성패 만에 두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 ‘정(正)ㆍ부정(不正)’, ‘의(義)ㆍ불의(不義)’ 만에 두어, 바르고 옳은 일이면 취하고, 굽고 그른 일이면 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해롭고, 지고, 실패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바르고 옳은 일이면 그것으로써 자기 갈길을 삼았었고, 그 반면 설혹 이롭고, 이기고, 성공할 수 있는 경우라 한대도, 굽고 그른 일이면 생명을 걸고 싸웠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54년 동안의 일생을 뚜렷한 목표 아래서 살고 갔다. 장군의 목표는 다만 정의와 나라였다. 장군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정의와 나라를 뽑아버리면 아무 것도 없어진다.

장군은 일찍부터 생사를 초월한, 대장부의 늠름한 자세를 가졌었다. 생사를 초월한 그 힘은 어디서 생겨지는 것인가. 그것은 ‘정의와 나라’라는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가 서졌기 때문에, 저절로 생사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목표가 이미 생사보다 크기 때문이다. 큰 것을 세운 이상 작은 것을 돌아볼 것이 없는 것이다.

함경도에서 오랑캐들을 무찌른 큰 공로를 세우고도 병사 이일(李鎰)의 시기로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친구들은 공이 혹시 형틀에서 죽을지 몰라 걱정하는데 공은 정작 태연했으며, 또 발포 만호로 있을 때 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成?)이 사람을 보내어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찍어다가 거문고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이것은 나라의 물건이다. 수사인들 어찌 사사로이 쓰기 위해서 찍어 갈 수가 있을 것이냐. 더구나 이같이 오래된 나무를 하루아침에 찍어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고 좌수사의 심부름꾼을 돌려보냈다.

장군이 한산도 진중에 있으면서 한창 적군 토벌을 계획하고 있던 무렵 고향으로부터 온 소식에 부인의 병환이 위독하다고 했건마는, “나랏일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는 생각이 미칠 수 없다.”하여, 국사(國事)와 사사(私事)의 경중을 확실히 했다.?사랑하는 아내의 병환 소식을 듣고, 어느 누가 능히 이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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