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이순신장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 남해안신문 기자
  • 승인 2009.11.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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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경 / 비전여수 인재육성 대표 - 이순신리더십 지상강좌 : 여수와 이순신
▲ 고재경 / 비전여수 인재육성 대표
진남체육공원 내 평생학습센터 앞에 8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틀 동안의 이순신리더십 과정을 마치고 오늘은 이충무공 유적지 현장답사를 떠나는 날이다. 작년부터 여수시에서는 이순신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금년 수강인원은 320명, 주로 초등학교 5~6학년 임원들과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충민사, 홍살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수강생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충민사 앞마당에서 사전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곳에다 충민사를 건립한 내력, 함께 모신 분들, 참배예절 등을 익힌 다음 40명 씩 나누어 들어가 향을 사르고 절을 하고 장군의 영정앞에 다소곳이 앉아서 이순신장군과 우리고장과의 관계를 공부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 발령을 받은 날은 1591년 2월 13일이다. 7년 전쟁이라고 불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정확히 1년 2개월 전이다.

장군은 우리 고장에 오자마자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5관5포를 돌아다니며 군사시설을 정비하고 부서진 배를 보수하고 각종 무기며 군량미를 비축했다. 흥국사 승려들과 함께 좌수영성을 고치고 해자를 깊이 팠으며, 종포와 돌산 사이에 쇠사슬을 건너매고, 높은 산봉우리마다 봉수대를 설치하여 유사시의 연락망을 구축하였다.

수군들을 모집하고 군사훈련을 독려하였다. 머지않아 왜구가 쳐들어 올 것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방어태세를 갖추어 나갔다.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준비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기고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순신장군의 유비무환정신을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100년 전쟁을 통하여 잘 훈련되고 경험 많은 30만 대군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었다. 거기다가 조총이라는 신식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우리나라를 발판삼아 명나라까지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여기에 맞서서 일본군을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이 이순신장군이다. 조총보다 더 무서운 대포를 개량하고 발전시킨 사람도 이순신이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만들어 낸 사람도 이순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개척정신과 창의력을 배워야 한다.

임진왜란 때에 우리고장 여수는 작전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총본부가 있던 곳이었다. 싸움이야 대부분 경상도 앞 바다에서 했지만 전쟁준비도 우리고장에서 했고 작전계획도 우리고장에서 세웠다. 전쟁 물자며 인원보충도 우리고장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바친 마지막 해전도 우리 고장 앞바다라고 할 수 있는 예교성과 노량에서 치렀다. 우리고장이야말로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고 끝마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들이 배울 점이 무엇인가? 이순신 장군의 용기와 도전정신 아니겠는가.

임진왜란 동안 내내 우리 고장 여수는 나라의 중심이었다. 임금과 조정은 평양으로 의주로 달아나고 왜군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불쌍한 백성들은 올 데 갈 데가 없었다. 피난민들을 불러다가 농사지을 땅을 주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곳이 우리 고장 돌산이다.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당한 군졸들을 후히 장사지내고 유가족을 위무했던 곳도 우리고장이요, 나이 많은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지극정성 효성을 다했던 곳도 우리고장 송현마을이다. 이 어찌 부모에 대한 효심과 백성에 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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