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를 기리자
애국자를 기리자
  • 이상율 기자
  • 승인 2009.04.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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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율의 세상보기]

자기 나라, 자기 겨레에 대한 사랑이 애국 · 애족(愛國 · 愛族)이다. 애국 애족은 나라와 겨레에 대한 애착과 자랑스러움에 의한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남산 백범광장에서 3.1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식과 해외에 안장된 애국선열 유해 6위 국내 봉환 식이 있었다.

이날 여수 출신 김백평(1900~1990),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 여섯 분의 유해가 안치됐다. 송석준(1865~1907), 최능익(1889~1976), 이정호(1913~1990), 정 명(1921~2004), 장용호(1883~1932) 선생이다.

김백평 선생은 여수 군자동에서 태어나 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현재의 경기고등학교인 경성 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 33인의 한사람인 손병희(孫秉熙)·강기덕(康基德)의 지휘아래 각 학교에 독립선언서가 교부되자 경성 고등보통학교 대표자로 선언서 2백매를 받아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3월 1일 탑동(塔洞) 공원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는 3.1절 당일 교정에서 왕실의 국장참열 연습이 끝나고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쏜살같이 연단에 올라서서 우렁찬 소리로 ‘전교생 차렷! 지금부터 내 구령으로 행동한다. 1학년 갑조부터 앞으로 갓! 뛰어 갓! 하고 외쳤다.’ 1천여 명의 학생들 구령에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교문을 뛰어나가 탑골공원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이렇게 하여 만세 소리는 지축을 흔들었다.

3.1운동을 이끌었던 김백평 선생은 1919년 3월 1일부터 5일 동안 서울의 만세 시위에 합류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받고 1년 2개월간의 옥고를 치러야했다.

형 집행을 마친 김백평 선생은 일본으로가 결혼을 했고 다시 독일로 가서 의학박사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30년대 미국에서 의사로서 생활하다 1990년 노환으로 타계했고 정부로부터 대통령 훈장을 추서 받았다. 지난 13일 그렇게도 그리던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고향인 여수는 애국자를 탄생 시켰다는 자부심이나 애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호국의 성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고요하기만 하다.

여수도 질곡의 근대사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헌신했던 애국자가 적지 않다. 2006년 2월 독서회 사건으로 1년 이상의 옥고를 치루고 퇴학당했던 백인렬옹 등 11명이 여수 대학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을 수여 받았고 돌산읍 작금마을 주재연 소년 지사는 최연소 항일운동지사로 2006년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기도 했다.

주재연 소년지사는 1929년 작금마을에서 출생, 1943년 돌산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농업을 돕던 중 조선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다니면서 마을 담장 밑 큰 돌 4개에 “일본과 조선은 딴 나라(朝鮮日本別國), 일본섬놈들은 패망한다(日本鹿島 敗亡), 조선만세(朝鮮萬歲), 조선의 빛(朝鮮之光)이라고 새겼다.

이로 인해 징역8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체포되어 4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혹독한 고문으로 인해 석방 후 한 달여 만에 숨졌다. 당시 전라남도와 여수시는 주재연 현창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 생가 터 복원, 기념비 건립, 추모행사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수는 전라좌수영의 본영과 삼도수군 통제부가 있던 곳이어서 임진왜란 당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실현했던 고장이다. 애국 . 애족에 대한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는 여수다. 이런 역사의 배경 탓인지 임란 애국에 대한 관심에만 매몰돼 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애국자에 대해서는 관심 밖인지도 모른다.

이번 김백평 선생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지역출신의 독립 운동가들의 충절을 여수시민의 참된 정신으로 압축시켜 그 정신을 함양하고 유지 보존하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에 걸 맞는 형상 화 작업으로 시민정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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