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할 수도 있는 봄
잔인할 수도 있는 봄
  • 남해안신문
  • 승인 2009.02.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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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 <여수YMCA사무총장>
때가 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오는 봄이지만 봄은 매번 어떤 설렘을 동반하고 온다. 지난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길면 길수록 그 설렘의 박동은 더 크다. 봄! 어감은 참 따뜻하고 편안하지만 두꺼운 각질 같은 겨울을 헤집고 피어나는 싹들의 그 놀라운 약동은 결코 한가롭지 않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기운도, 살을 찢는 아픔을 불사하고 자궁을 빠져나오는 생명체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은 따뜻하고 웅장한 생명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계절이지만 ‘춘래불사춘’이 아닌 정말 희망찬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아픔과 대가도 치러야하는 것이다.

자연의 봄은 이렇듯 정직한 섭리와 약속에 의해 아름답고 희망이 넘치는 생명력으로 완성되지만 우리네 인간사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심난한 봄이 되기도 한다. 봄 인줄 알았으나 아직 겨울이어서 괜한 북풍바람만 쐬게 된다든지, 남들에게는 비춰든 화사한 봄기운이 쥐구멍 같은 내 거처에는 들지 않을 때 그 서러움은 더 클 터이니 봄은 사람에 따라 잔인한 계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겨울 우리는 몸서리쳐지는 추위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동강난 경제와 밀어붙이기 정권정책으로 살림은 살림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끝없이 움츠려들었다. 그런 가운데 취임 1주년을 맞은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잘해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강력한 밀어붙이기를 하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새봄을 맞고서도 결코 희망이니 생명이니 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1년 전의 새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여 경제도 살리고 교육도 바꿔서 국민들을 성공시키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희망찬 봄기운이 차고 넘쳤다. 진보와 보수정권교체가 한 사이클 이뤄진 민주주의 완성의 의미도 있었고 역대 직선대통령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니 공약대로만 잘 하면 그야말로 선진국 국민으로 큰소리 한번 쳐볼 요량이었다. 표를 주지 않았던 이들도 정말 그렇게 되기를 참으로 바랐던 그 봄이었다.

그러나 ‘그 봄’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아니 봄은 아예 없었다. 인수위라는 봄의 전령은 점령군의 모습이었다. 새로운 정책이란 기존 정권의 정책들과 무조건 반대되는 것이었다. 교육부 아닌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발표해 온 나라를 영어열등감 신드롬으로 ‘몰입’시켰다. ‘고소영’ ‘SKY’ ‘강부자’만이 그 정권에 참여할 수 있었고,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사정기관장을 전부 대통령 동네사람들로 채워냈다. 그 편 일색이라 해서 시기심도 없지 않았지만 더욱 걱정이었던 것은 그들의 면면과 인격이었다. 땅 많고 돈 많아 재테크하고 자식 일찍 유학 보내 ‘세계화’시킨 것이 뭐가 죄냐고 항변하는 그들의 표정은 정말 억울해 보였다.

무사가 든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칼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잡은 칼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정책을 쥐락펴락하겠다는 그 아찔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결국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반성을 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은 반성 전과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반성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능력마저도 지난 1년간 보이지 않은 채 나라 전체는 분열되고 국민들은 지치고 말았다.

정권탈환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임기1년을 넘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어떻게든 이 정부가 성공하여 747타고 날지는 못하더라도 추락만은 면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인정할 줄 아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자연의 봄은 시간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지만 우리네 인간사 봄은 역사의 순리를 실현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온다. 이명박 정부가 순리를 타고 있는지, 이를 거스르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1년, 그 이상의 시간은 결코 필요하지 않음을 정부가 깨달을 때 우리의 봄은 비로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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