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음악계 큰 별이 지다.
여수 음악계 큰 별이 지다.
  • 이상율 기자
  • 승인 2009.02.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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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율의 세상보기] 지정익박사의 영전에...

여수 음악계의 큰 별이 졌다. 사랑의 손길로 한센병 환자의 불빛을 찾아주던 우리의 슈바이처가 영원한 안식을 위해 영면했다. 2월 9일 새벽 지정익 박사는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도, 후학들의 안타까움도 모른 체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78세.

은빛 머리와 하얀 가운, 바이올린을 연상하던 지정익박사. 부드러운 미소와 정겨운 모습, 넉넉하면서도 소탈한 그 모습을 남기고 돌아 올수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이다. 4월 자신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하기로 했지만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기 때문에 더욱 슬픔을 갖게 한다.

그의 한평생은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빛이었고 여수 음악계에서는 귀감이요 훌륭한 지도자였다.

1931년 광주 출생, 광주 의대를 나와 안과의사가 된 그가 1964년 여천 보건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여수와의 인연을 갖게 된다. 부임하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무료 개안 수술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개안 센터를 개설 운영함으로써 장님이라 치부하던 많은 사람이 눈을 뜨고 빛을 보았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준 슈바이처로 기억되고 있다.

어느 날 한센병환자 진료기관인 인근 율촌면 소재 애양원 원장 미국인 의사 타플(한국명 도성래)씨의 요청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네 명의 환자를 개안 수술로 빛을 보게 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대부분은 합병증인 홍체염 환자들이다. 개안 수술만으로 빛을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센병 환자들과 접촉하면 전염이 된다는 통설이 난무하던 때라 선뜻 나서는 의사가 없었다. 그는 환자 앞에서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수술을 했고 이를 계기로 1개월에 한 번씩 애양원을 찾게 됐다.

66년 여수시 중앙동에 지정익 안과 의원을 개설하고 생활이 어려운 환자와 한센병 환자에 대한 무료 진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애양원 개안 시술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안동, 고성, 함안, 익산 등지에서 한 달이면 30∼40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다. 이들과 함께 진료하는 것을 꺼리는 일반 환자들을 위하여 그는 저녁시간과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이들을 진료를 했다. 지금까지 한센병 환자들의 무료 진료는 4천여 명에 달하고 그 가운데 1천여 명은 빛을 본 사람들이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빛을 보게 된 한센병 환자가 달걀 한 꾸러미를 내밀었을 때 감격했다면서 너털웃음을 쏟던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정익 원장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중학교 때 손에 잡은 바이올린으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여수 음악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지 원장의 바이올린은 광주. 전남, 현의 역사와 더불어 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평생을 함께 해왔다. 지 원장의 음악 인생은 의학도를 선택하기 이전부터다. 대학 시절 광주의대 현악부를 만들어 활동했고 여수에서 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 레코드 감상회를 계기로 71년 여수 시립합창단을 창설했고 74년에는 호악회 오케스트라를 구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70년 자신의 첫 연주회를 계기로 90년 회갑 기념 연주, 2000년 세 번째, 2004년 네 번째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갖고 올 4월 다섯 번째 연주회를 하기로 했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그는 떠난 것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가 맡았던 음악관련 직책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수 시립합창단 발기인, 단장, 예총회장, 호악회 회장, 여수 필하모니 단장, 시민회관 건립추진위 위원으로 CF 피아노를 기증하기도 했고 전남음악상도 받는 등 여수 음악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인술로 음악으로 일생을 보낸 그에게 MBC 문화방송의 문화시민상 금상, 여수시민의상, 예총, 한국음악협회 새마을 중앙회장의 공로패, 감사패 등이 그의 발자취를 짐작게 한다.

며칠 전 병실에서 “2012 여수 세계 박람회는 성공한 박람회로 만들어야 해.” 하면서 “나도 보고 갈 것이야” 하시던 정다운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여수를 사랑하고 음악을 즐기며 그늘진 곳에 빛을 주고 가는 고 지정익 박사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드린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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