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떨어진 놈 눈에 선계가 보일까!"
"덜 떨어진 놈 눈에 선계가 보일까!"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8.06.22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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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가사문학관에서 만난 ‘송강 정철’
▲ 가사문학관.
송강에게 야단맞고도 즐겁게 돌아오다

혼자하는 문학기행, 어디가 좋을까? 조선시대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을 내놓은 송강 정철과의 만남을 위해 ‘룰루랄라~’ 담양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정철은 윤선도,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인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가사와 시조는 한국 고시가의 대표적인 장르입니다. 시조(時調)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 초장과 중장, 종장으로 구성되었고, 가사(歌辭)는 3ㆍ4조나 4ㆍ4조 운문의 국문으로 만들어진 시가(詩歌)입니다.

가사는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의 사림들이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자신이 품은 이상을 이룰 수 없음에 한탄하며,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자연 경관을 벗 삼아 시문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합니다.

▲ 정철의 관동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 필사본.
‘정철’과 ‘송순’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의 산실 ‘담양’

가사문학과 선비 정신을 상징하는 대나무의 고장이 바로 담양입니다. 담양에는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ㆍ관동별곡ㆍ사미인곡ㆍ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 남석하의 백발가, 정해정의 석촌별곡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어 가사문학의 산실로 불립니다. 이중 정철의 <성산별곡> 일부를 감상해 보시죠.

어떤 지나가는 길손이 성산(별뫼)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 들어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겨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오시는고
솔뿌리를 다시 쓸고 대자리를 보아 잠깐 동안 올라앉아
주위를 어떤가 다시 보니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 서석대로
집을 삼아나가는 듯 드는 모습이 주인과 어떠한고
푸른 시내 흰 물결이 정자 앞을 둘러 있으니
천손(天孫)의 비단 폭을 그 누가 베어 내어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중(山中)에 달력 없어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앞의 헤쳐 있는 풍경이 사철 따라 저절로 나타나니
듣고 보는 일이 모두 다 선계(仙界)로다…


▲ 목판.
▲ 정철이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옥배와 은배.
“덜 떨어진 놈 눈에 선계가 보일까!”

읽다보니 글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옳다구나 싶어, 그와 선문답을 나눕니다.

“글은 어찌 써야 합니까?”
“나는 누구더냐?”

“나는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
“예끼, 이노~옴. 덜 떨어진 놈 눈에 선계가 보일까!”

“어찌해야 선계를 볼 수 있습니까?”
“눈을 감아라.”

“세상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때는 저절로 오나니…”


야단만 작살나게 맞고 말았습니다. 볼기짝과 엉덩짝 얻어터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요?

면앙집, 송강집 등 유품과 만나다

송강정ㆍ면앙정ㆍ소쇄원 등이 자리한 담양은 가사문학의 숨결이 살아있는 가사문학관을 건립,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 및 친필 유묵 등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여 후세에 가사문학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기와로 꾸며진 가사문학관 입구에서 소 등에 탄 피리 부는 목동이 반깁니다. 목동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정적을 깨며 몰려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피리 부는 동자입니다’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사문학관은 1, 2층으로 꾸며져 1, 2, 3 전시실과 장서실, 자료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1전시실에는 면앙 송순과 송강 정철에 대한 소개와 성산별곡ㆍ관동별곡ㆍ사미인곡ㆍ속미인곡의 필사본과 임금에게 하사받은 옥배와 은배, 송강집과 그 목판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ㆍ3전시실에는 임억령의 파산사언시ㆍ서석한운ㆍ식영정 이십영ㆍ옥배, 소쇄원의 주인이었던 양산보의 소쇄사실ㆍ소쇄원도ㆍ소쇄처사양공지려 서각, 고경명의 제봉집, 나옹화상과 정극인, 허난설헌, 박인로 등 가사문학과 관련된 가사집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연이 아닌 전시실에서의 선현과 만남도 비온 뒤의 맑고 깨끗함처럼 상쾌함을 선사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 그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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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앙집
▲ 전시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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