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의회 동티났다.
여수시의회 동티났다.
  • 이상율 기자
  • 승인 2008.06.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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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율의 세상보기]

여수시의회가 동티가 났다. 「동티」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민속에서는 건드려서는 안 될 땅을 파거나 돌을 다치거나 나무를 베었을 때 이것을 맡은 지신(地神)이 성을 내어 받게 된다는 재앙이다. 흔히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서 공연히 생기는 걱정이나 피해를 보고 말한다.

얼마 전 시의회는 “침묵이 금이다.”라는 속담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려 했다. 침묵이 금이란 말은 말을 함부로 하여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하는 경우를 억제하고자 쓰이는 말이다. 경박스러운 입담보다는 과묵한 것이 도리어 낮다는 뜻이다.

특히 직선적으로 단점을 지적하거나 화가 나서 함부로 내뱉는 말이 육탄전으로 번지는 경우엔 침묵은 금이 될 수 있다. 침묵은 때때로 상대방을 긴장시켜 발언을 신중하게 할 수 있다. 만약 권위 있는 사람의 침묵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적절한 말을 해야 할 때와 말하지 않을 때를 조화시켜야 그 진가가 발휘된다. 상호 간 소통이 절실한 현대사회에서는 고전(古典)처럼 되어 버린 속담이다.

민주주의 기초인 의회는 토론의 장이다.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자신의 정견을 내어놓고 토론을 통해 중의를 모아 의결, 이를 추진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논의의 장을 만들지 못한다면 이는 의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다. 토론이 주 업무인 의회 기능에서 의원의 침묵은 곧 벙어리 의원으로 낙인찍히고 토론이 없는 의회가 되는 것이다.

의장단 선거가 교황선출방식이어서 밀실 선거라는 비판이 일었다. 벙어리 의장단을 만들자는 것 때문이었다. 다행히 일부 의원들이 일반 선출방식으로 개정안을 제출했고 후보는 정견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정견발표는 자칫 상호 비방에 의한 분열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비공개로 했다가 결국, 일반선출방식과 후보의 정견발표 공개로 수정함으로써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코, 침묵은 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던 의회가 며칠도 되지 않아 폭력과 욕설, 고함으로 점철되고 말았으니 심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성한 회의장에서 의원끼리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고 밀치고 들치고 한바탕 육박전이 벌어진 것이다.

여수시의회는 20일 오후 2시 여수지방공사 설립조례안 등 10건의 조례안을 심의코자 2차 본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의원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나이도 어린 게..", "x새끼.."등 심한 욕설이 오갔다.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발길질에다 주먹다짐이 오갔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바닥에 누어 고통을 호소하는 등 중앙정치 무대에서 종종 보아왔던 익숙한 모습들이 여수시 의회에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날 회의를 관람하던 방청객도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지방공사를 찬성하는 방청객과 반대하는 방청객이 서로 소리를 지르면서 일촉즉발의 순간까지 간 것이다. 여수시 의회가 동티가 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겠는가. 이를 지켜보던 100여 명의 방청객과 의회에 나온 공무원들이 한심한 모습을 보며 낯을 펴지 못했다.

이런 의원을 누가 뽑아주었는가. 우리 유권자가 아닌가. 그러고도 유권자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의회에서 활극을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면 유권자도 스스로 반성하여 선출에 신중해야 하겠다.

의원은 정견(政見)으로 평가한다. 유권자가 의원을 선출할 때는 정견에 의해서이다. 그것도 실천 가능한 것인가. 타 후보보다 더 나은 정견인가를 구분하여 당락을 정한다. 어떤 사안이든 간에 찬. 반은 있기 마련이다.

이를 정당한 절차에 의한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도록 하라고 유권자가 위임한 것이다. 다수라고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소수라고 과격한 방법으로 관철하려는 것도 모두 의회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안 된다. 이는 여수의 재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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