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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유권자!’
‘쿼바디스 유권자!’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03.3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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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 <논설위원, 여수YMCA사무총장>
박해를 받다가 죽느니 살아남아 죽은 예수를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베드로는 로마를 탈출한다. 도망 길에서 십자가를 메고 걸어가는 예수를 만난 베드로, 놀라움에 묻는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는 짧게 대답한다. “네가 내 백성들을 버리니 내가 한 번 더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다.” 베드로는 금방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로마로 되돌아가 결국 순교의 길을 택한다. 기독교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사람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이 같지 않음을 설명하는 교재로 쓴다. 즉 살아남아 예수를 알린다는 것은 그저 합리화일 뿐 죽더라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베드로가 예수를 위해 부여받은 사명임을 하느님은 일깨워준 것이다.

이 성경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총선 때문이다. 적지 않은 정치지도자들이 저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앞 다퉈 사자후를 토하고 있다. 선거제도가 도입된 근대 이후 정치인들이 쏟아낸 말대로만 실천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꼽는 가장 부패한 집단, 못 믿을 집단이 정치권이다. 약속이행은커녕 뽑아준 국민들 위에 군림하여 자기 잇속 챙기기에 임기를 다 보내는 정치인을 숱하게 봐야했던 국민들이니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총선 역시 국민들은 설렘과 희망의 민주주의 축제라는 느낌은 일찌감치 버린 것 같다. 벌써부터 투표일에 어디로 놀러갈 것인지 궁리들이다. 사실 쟁점도 없고 특별한 이슈도 없는데다가 호남지역은 인물 다툼도 별로 보이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선관위에서는 투표율 저조를 걱정해 공원입장권이네 주차장할인권이네 별별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이런 사태의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희망이란 단어가 그 쪽으로만 가면 절망이란 의미로 바뀌곤 하니 절망을 피해 달아나려는 유권자들을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책임을 져야할 정치권이 투표율 저조로 인해 오히려 책임을 면피하게 된다는데 있다. 현 정치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인 사람들만 투표를 하게 된다는 결론을 낳는다. 이런 표를 얻어 당선된 국회의원은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책임질 압박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결국 표를 행사하지 않은 유권자는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정치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치에 대한 혐오나 피해의식만 더욱 키워가게 될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만 단단해져가는 것이다.

백성이 곧 하늘이니 우리 유권자가 하느님이다. 우리를 위해 열두 제자를 두었으니 그들이 곧 국회의원이다. 베드로다. 베드로가 제 생각대로 착각해서 제 살길만 찾아 도망가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해 한목숨 바치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정말로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유권자들이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어린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밤잠 안자고 일하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정말로 그렇게 일하도록 만드는 것은 유권자들이다. 자기 입신양명과 명예욕과 권력욕을 채우는데 쓰는 수고를 국민 위한 일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유권자들이다.

그 방법은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정 찍을 사람이 없으면 기권 표라도 행사해야 한다.(선거 공보전단을 꼼꼼히 보면 그래도 찍을 사람은 보이게 마련이다.) 국민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심판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에게 심판권을 내팽개치는 유권자만큼 고마운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투표일, 베드로가 어디로 가시나이까, 유권자여!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투표장에 가고 있노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베드로가 제 위치로 돌아가 충성스런 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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