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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기름바다, 외국인 노동자, 그 다음에는?’
‘숭례문, 기름바다, 외국인 노동자, 그 다음에는?’
  • 남해안신문
  • 승인 2008.02.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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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이상훈<논설위원, 여수YMCA사무총장>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국보1호 숭례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낙산사처럼 자연재해’였더라면 하는 생각에 아쉽다, 그러니 빨리 잊고 복원이나 잘해보자 했을 터... 그러나 인재였으니 망연자실한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두고두고 곱씹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저지른 엄청난 재앙은 비단 이번뿐만 아니었다. 근래 일어난 서해안 기름유출사고도 인재였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된 그날은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의 외국인보호소에 불이나 1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애꿎은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1995년 여수 앞바다를 기름으로 물들인 시스프린스호 사고 때 정부당국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태풍도 없는 서해바다에서 그때보다 배가 넘는 기름이 유출되는 인재가 재발되었다. 1년 전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그 후유증이 가라앉기도 전인 올 초, 경기도 이천의 한 냉동 창고에서 불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40여명이 불에 타 죽었다. 그것 말고도 당국의 강압적인 단속과 추적을 피해 달아나던 외국인 노동자 두 명이 고층에서 추락하기도 했다.

정부는 숭례문 화재를 기화로 또 다시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원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유사한 문화재들이 소방시설을 점검하느라 법석을 피우고 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듣고 보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대책이 근원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아닌 임시방편적이고 전시적인 흉내에 그친다는데 있다. 1년 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의 예에서 우리는 그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참사 직후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대책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하급직원 몇 명만이 형사 처벌되고 법무부 담당 국장이 자진사퇴하는 선에서 책임자처벌도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다.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던 네덜란드에서 시장과 내무부장관이 사임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참사 이후 그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과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법무부 역시 보호소 내 시설개선과 더불어 미등록이주노동자합법화를 포함한 대책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보호소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렇듯 당장 급한 불만 끄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태도가 이천 냉동 창고 화재와 같은 대형 참사를 반복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이주노동자들이 왜 불법을 감수하면서 국내에 숨어 지내는지, 밀린 임금문제와 인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원인과 대책을 확고히 수립하는데 있음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소방시설 점검과 한두 사람의 실수로 그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하고 있으니 대형 참사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주 여수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참사 1주년을 맞아 희생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집회를 갖고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였다.

먼저 화재참사 현장인 여수외국인보호소를 이주노동자의 인권 옹호를 위한 추모와 교육의 장으로 새롭게 만들 것, 둘째, 시민사회단체와 법무부간의 민간협의체를 구성하여 일체의 밀실행정을 배제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이주정책을 실시할 것, 셋째, 화재참사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강제단속과 추방을 중단하고 전국의 외국인보호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국제적인 인권기준에 맞는 개선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사고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악해 그에 맞는 근원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최소의 요구인 것이다.

세월이 가면 잊혀질 죽음일지 모른다. 숭례문도 복원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바다의 기름덩어리도 언젠가는 씻길 것이다. 하지만 재수 없음만 탓하는 우리의 안전 불감증, 무사안일 사고는 세월이 가도 덜어질 줄 모른다. 얼마나 더한 참사를 저지르고 나서야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 살 수 있을까. 늦은 겨울 을씨년스런 날씨처럼 스산한 바람이 등골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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