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변전소 부근 암 환자 32명…실태조사 ‘외면’
광양변전소 부근 암 환자 32명…실태조사 ‘외면’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10.23 2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전탑 해법 찾기 2] 전남 광양시 죽림리 주민 건강 피해 사례
▲ 마을 도로에서 본 광양변전소.
잠시라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불편을 호소한다. 그만큼 전기(電氣)는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전기를 중개하는 변전소,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선은 인체의 동맥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발전소와 변전소, 송전탑이 자신의 근처에서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인 상황에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 경제적 손실 등에 대한 우려로 집단반발을 야기한다.

이에 본 뉴스365는 광양에 설치중인 송전탑 가설사업을 통해 ▲송전탑 주변 마을 경제 피해 사례 ▲송전탑 주변 마을 주민 건강 피해 사례 ▲송전탑 설치를 둘러싼 갈등 ▲전력산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의 순으로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주 -


▲ 암 투병 중인 정찬수 씨.
[뉴스365 임현철 기자] “이 마을에서 암에 걸려 수술하거나 죽은 사람이 많다. 변전소 밑에는 전자파 때문에 가재도 안 산다. 사람에게도 상당히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건강했다. 지난해 3월 감기가 안 나아 병원에 갔는데 암 진단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지난 해 4월 폐 수술을 받았다.”

폐암 수술을 받은 전남 광양시 죽림리 억만 마을 정찬수 씨의 증언이다. 야윈 그의 얼굴 앞에서 차마 ‘치료비용?’, ‘육체적 고통은?’ 등에 대해 물을 수가 없다. ‘암=죽음’ 공식을 걷어내고 싶은 마음뿐.

발전소와 변전소 주변,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은 암 등의 발병율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증을 안고 지난 17일 광양변전소 아래 억만 마을 정현배 이장을 찾았다. 그는 가족과 볏짚을 정리 중이다.

정 이장 가족이 일을 마치자 조촐하게 맥주, 음료수, 감 등 세참이 나온다. 권하는 맥주를 마다하고, 감을 먹으며 암환자와 대면을 요청한다. 정 이장이 옆집 담에 대고 “있소~, 취재한다니까 우리 집으로 좀 오시오!” 소리친다. 암환자가 오기 전, 그와 대화를 나눈다.

“전에는 암 환자가 없었는데….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 가만 있자, 서성모(폐암)ㆍ정춘자(피부암) 씨 등 4명이 죽었고, 배강영(위암)ㆍ정찬수(폐암)ㆍ유행남(뇌졸증) 등 3명이 살아 있어. 암 종류도 다양해요. 피를 토하기도 하고….”

▲ 억만 마을 정현배 이장.
발병 원인, “변전소로 인한 걸로 추정”

뼈만 앙상한 정환기 씨, “무슨 취재할 거시 있다고 여길 왔대”하며 대문을 들어선다. 웃음까지 짓는다. “2000년 2월 식도암에 걸려” 지금껏 투병 중인 정씨는 “변전소가 들어서고 고압선이 지나가는 데에는 암이 많이 생긴다던데 내가 아프게 됐다”며 “암을 이기기 위해 밤낮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환기 씨는 무려 7년간이나 암 투병 중이다. 밤낮으로 운동에 매달린 결과다. 생에 대한 집념, 혹은 애착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삶에 대한 그의 의지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아픈 원인은 뭐래요? 변전소나 송전탑은 상관없나요?”
“변전소로 인한 걸로 추정만 할뿐 조사를 안해 알 수가 없지. 젊은 사람들은 아기 낳으면 기형아가 생긴다고 아예 볼 수가 없어. 애기 낳으면 명절 때나 가끔 들르고.”

또 한 분이 힘겹게 걸어온다. 정현배 이장이 “저 사람도 암에 걸렸어”한다. 정찬수 씨다. 혹, 여기에서 살지 않았다면 건강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친 김에 임기마을 김형선 이장과 통화한다. “경비를 서는 모 아파트로 오라”신다. 급하게 차를 몬다.

“우리 마을은 암 걸린 사람이 7~8명 돼. 오래 살고 건강하던 마을이었는데 암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죽은 사람은 이경식(구강암)ㆍ은희동(폐암)ㆍ전학기(대장암)ㆍ박봉례(폐암)ㆍ이강연(직장암) 씨여. 한 사람 이름은 생각이 안 나네. 살아 있는 사람은 이돈선(구강암)ㆍ김영두(폐암) 2명이고.”

▲ 암 투병 중인 정환기 씨.
주민, “변전소가 전두환 때 들어와 항의 한 번 못했다”

누구든 건강하게 살다 고통 없이 죽는 게 소원일 터.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한 마을에서 집단으로 암에 걸리다니 쉽게 넘길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암에 걸린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가족들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변전소 들어오고 보상 받은 적 있나요?”
“보상은 무슨 보상, 없어. 발전소 주변은 보상을 받는데 변전소 주변은 보상을 못 받아. 주민들이 국회의원에게 민원을 넣었는데 법이 없어 보상 받을 수가 없대. 한전에서도 그렇고. 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한다던데 언제 되겠나?”

쌍백마을 사정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쌍백 강정원 전이장은 “우리 동네는 (광양변전소와) 직선거리로 50m 이내여서 소음도 심해. 암환자는 여자 1명이고. 돌아가신 분은 10여명 된다”며 변전소가 들어온 사연에 대해 “광양제철 준공 후 전두환 때 들어왔는데 항의 한 번 못했다”며 “그때 항의가 가능했나? 이렇게 피해가 많을 줄 몰랐어.”하고 말한다.

강씨의 입에서 사람 목숨을 담보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전두환’이 튀어 나온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 같다. 강정원 씨는 저녁에 “통계가 틀리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돌아가신 분은 13명, 투병 중인 사람은 4명인데, 이강림(유방암)ㆍ강대의(위암)ㆍ서한식(후두암)ㆍ박현수(대장암) 씨여.”라며.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광양변전소 주변 쌍백ㆍ임기ㆍ억만 마을에서 암 투병 중이거나 죽은 사람은 32명.

▲ 억만 마을에서 본 광양변전소 주변.
▲ 광양시 죽림리 임기마을 김형선 이장.
충남 청양전력소 주변도 암으로 100여명 숨져…한전, 발병률은 ‘선입견’

이와 유사한 사례는 충남 청양군 청양읍에 들어선 청양전력소 주변에도 나타난다. 청양시민연대에 따르면 “청양전력소 주변 마을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서 암으로 숨진 주민은 1983년부터 2004년까지 100명이 넘는다”면서 “아직까지 전자파로 인한 발병이다 아니다를 증명할 확증이 없는 관계로 이에 대해 정부나 한전에서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와 관련,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의 인체 피해는 “잘못된 견해”라며 “미국 및 캐나다 등 외국의 전자파 노출이 많은 송배전선로 작업원ㆍ변전소 근무자에 대한 건강진단 결과 전자파에 의한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전 직원들의 검진결과 건강상 문제점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한전 관계자는 “암과 낙태 등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면 전자파 측정을 하지만 (기준치보다) 미미하게 나타난다”면서 “송전선 밑에서 측정해도 세계보건기구(WHO)의 자계 기준 5만mG 보다 낮은 3mG로 나타나고, 또 전계 기준은 WHO가 규정하는 전계 기준 10Kv/m 보다 낮은 3.5Kv/m 이하를 한전 설비 기준으로 삼는 만큼 (발병률은) 선입견이다”고 밝혔다.

이로 볼 때 현실과 실제 사이에는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이 괴리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 있다. 바로 실태조사. 하지만 정부나 한전은 실태조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기업인 한전 관계자는 “이들 주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곳은 아직 없다”고 말한다. 주변 마을의 암 발생률을 모르기 때문일까? 의지가 없는 걸까?

▲ 억만 마을에서도 철탑이 드러난다.

국민의 아픔 감싸는 정부돼야

이는 체계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질 경우 사회적으로 만만찮은 파장이 우려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파장은 발전소, 전력소, 변전소, 송전탑 설치 주변 마을을 넘어 송전탑 설치에 대한 강한 반발과 전력공급체계의 차질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에 반해 일본과 미국의 경우 국가가 나서 병의 원인을 조사하고 치료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토야마현 주민들이 허리, 팔, 다리의 뼈마디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기 시작해 어느 의사도 '원인불명' 이라는 말 외에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 것을 정부의 조사 끝에 카드뮴에 의해 신장장애와 골연화증이 일어난 ‘이따이이따이병’이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총 208명 환자 중 128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픈 사람은 국가가 책임지고 치료 중이다.

미국은 나이아가라시 부근에 화학회사가 유독성 화학물질을 매립하면서 학생들과 주민들이 피부병과 두통 등 각종 질환 및 기형 증세를 호소했고, 다른 지역보다 유산율이 4배 높게 나타났던 ‘러브캐널(Love Canal) 사건’에 대해 정부가 조사에 나섰다. 이 결과 주민 소개와 함께 주택과 학교까지 철거하고 부지주변도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울타리로 둘러치며 환경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이들의 사례에서 보듯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요즘, 정부가 국민에게 다가가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 정부도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고 여긴다면 국민의 아픔을 감싸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 광양변전소에서 본 주변마을.

▲ 고압의 송전탑이 광양 백운산을 거치는 것에 대해 광양시민들이 반대하며 지중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뉴스365,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