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메뉴는 뭐죠?”
“오늘 점심 메뉴는 뭐죠?”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10.05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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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손죽도 ③] 선상 모습
▲ 선상의 아이. ⓒ 임현철
배 타기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겠지만 3시간씩 배를 타는 것은 곤욕입니다. 이 지겨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흥밋거리를 찾는 것도 여행의 별미일 것입니다.

지난 3일 여수시 삼산면 손죽도를 가기 위해 부두로 나갔습니다. 생소한 얼굴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차림새가 울긋불긋해 단풍 나들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손죽도행은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LG화학ㆍ호남석유화학ㆍ한국 바스프ㆍ여수상공회의소ㆍ여수환경공해추방운동ㆍ손죽도 향우회ㆍ모아치과ㆍ고려수지침ㆍ여수시자원봉사센터 등 250여 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밝은 세상을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 바다 풍경. ⓒ 임현철
오전 8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맑은 하늘과 잔잔한 파도가 봉사활동을 격려하는 것 같습니다. 갑판 아래 선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에서 여자분들끼리 앉아 머리를 만져주고 있습니다.

“흰머리 뽑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머리를 맡기고 엎드려 있던 분이 급하게 벌떡 일어나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니예요”하며 머리를 만집니다.

“나이 들면 자연스레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는 게 정상 아니나요? 누가 세월을 거역하겠어요?”
“그러긴 하지만 어느새 나이 들어 이렇게 흰머리를 뽑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해맑은 소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 갈아타기. ⓒ 임현철
옆 일행들과 이렇게 말을 섞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3시간의 항해가 지겨울 따름이지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우린 손죽도 향우회에요.”
“손죽도 자랑 좀 하세요”
“손죽도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게 없어요. 평범한 섬이죠.”

“섬 처녀들의 연애담은 남다를 것 같은데…”
“연애야 섬이라고 육지와 다를 게 있나요. 눈 맞아 사랑하는 건 똑같지. 손죽도에서 나와 통 못 들어가다 2년 전, 23년 만에 고향에 가게 됐지요.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그리 가고 싶은 거 있죠. 무슨 이끌림처럼 말예요.

손죽도에서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어릴 적 놀던 곳을 다니는데, 어떤 남자 분이 인사를 하는 거예요. ‘혹 누구 아니냐?’면서. ‘맞다’ 그랬더니 ‘나 여기서 근무하던 공무원 누구다’고 소개하는 거 있죠. 찬찬히 뜯어보니 그 사람이대요. 그때 나는 별로였는데 그 사람이 날 무척 좋아했었죠.”

▲ 바다 바람을 맞는 여인들. ⓒ 임현철
여자들의 ‘자기는 별로였는데 남자가 자길 좋아했다’던 흔한 레파토리입니다. 그렇지만 20여 년 만에 찾았던 박랑연(47)씨에게 나타난 옛사랑의 흔적에서 당시 촉촉했을 십 대 소녀를 상상합니다. 덩달아 그의 눈도 꽃사슴의 눈망울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날 아는 척하는데 반갑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옆에 부인이 버티고 있으니 어찌 반가워하겠어요. 냉정히 잘 보고 가라 그랬죠. 그 사람, 날 처음보고 첫눈에 반했다며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도 했는데, 부인이 그걸 알면 어찌되겠어요?

뒤에 이메일로 연락을 자주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가정을 지키세요’ 했더니, 마음 굳게 먹었는지 후론 연락을 안 하대요. 그렇다고 연락 안 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 참 순진한 사람이죠? 왜 그가 싫었을까, 생각해 보면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연이 아니었던 거죠.”

에이, 기대를 무너뜨리는 결론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이야기 중, ‘이리저리 유도를 했다면 혹 옆으로 샐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일기도 합니다. 하기야 남이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라고 하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더 이상 기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랑연씨 일행을 떠나 갑판으로 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도해 경치를 감상하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가을바람이 파도에 일렁입니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식당이 보입니다. 짧은 머리의 젊은이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해양경찰 전투경찰들입니다. 반찬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누룽지가 눌고 있고요. 고만 누룽지에 입맛이 당깁니다.

배에서 군 생활하는 젊은이와 취사반. 기삿거리를 두고 물러설 수 없는 일.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하는 취사원 빈정우(23)ㆍ이욱(20) 이경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 식사를 준비 중인 취사원. ⓒ 임현철
▲ 빈정우, 이욱 이병. ⓒ 임현철
- 취사반으로 배치받은 건가요?
"아뇨. 여기는 취사반이 아니라 취사원이라 하는데 취사원은 따로 없습니다. 해양경찰을 제외하고 11명의 전경대원이 생활하는데 부대 배치받으면 취사부터 시작합니다."

- 취사 경험은 있나요?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죠. 하는 겁니다. 취사원에 내려오는 족보와 책들이 있고, (고참들이)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간도 우리가 맞춥니다. 하다 보면 음식이 느는 거죠.”

- 오늘 점심 메뉴는 뭐죠?
“오늘 식단은 식당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두부무침, 김치, 갈치조림, 된장국 등입니다.”

- 입맛 당기는데요?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 두부무침. ⓒ 임현철
▲ 갈치조림. ⓒ 임현철
▲ 누룽지. ⓒ 임현철
두부무침을 입 안에 넣고 음미합니다. 어~, 꽤 좋습니다. “맛있는 데요” 했더니, 긴장의 끈을 늦추며 “드실만 하죠”하며 감추었던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이런 땐 심술이 입니다. 괜히 맛있다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하하~.

- 맛에 대한 평은?
“직원들이 된장국을 특히 맛있다고 합니다.”

- 배에서만 생활하나요?
“6개월 단위로 배와 육상생활 교대를 합니다. 배는 육지와 많이 다릅니다. 멀미도 하고, 파도가 심할 경우에는 식기들이 다 떨어지기도 합니다. 태풍 때 출동해 조난 선박 구조 등도 합니다. 보통 4~5일 출동하고, 6~7일 정박이 순환됩니다.”

전경들과 이야기하던 중, 어느새 도착을 알립니다. 2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내릴 채비를 서두릅니다. 손죽도의 수심이 낮아 배가 선창에 정박하지 못하고 작은 배로 갈아탑니다. 11시, 드디어 손죽도에 닿았습니다.

▲ 손죽도. ⓒ 임현철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뉴스365, SBS U포터,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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