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이, 지난 밤에 허물 벗다"
"팽팽이, 지난 밤에 허물 벗다"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08.16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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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 기르기 1] 허물벗기
 
▲ 장수풍뎅이 '팽팽이'가 허물을 벗었습니다.
ⓒ 임현철
 
"얘들아, 팽팽이가 지난 밤에 허물 벗었다!"
"뭐라고요? 어디?"
"어, 진짜네. 야, 신기하다. 몸은 다 벗었는데 뿔 쪽은 아직 덜 벗어졌네. 내가 벗겨줘야지."
"야, 안돼. 스트레스 받으면 죽어."

손을 뻗어 팽팽이 허물을 벗겨 주려던 태빈이 놀라 손을 거둬들입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죽는다'는 소리에 놀란 것입니다. 그래도 밤새 허물을 받은 게 대견한 모양입니다.

기르던 장수풍뎅이, 팽팽이가 허물을 벗은 건 우리 집에선 일대사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해 겨울, 정성들여 키우던 장수풍뎅이가 성충이 되지 못한 채 죽은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수풍뎅이가 우리 가족 일원이 된 건 6월 9일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 장수풍뎅이 애벌레 상태였던 번데기 암수 2쌍, 4마리를 구례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 애벌레는 2~5개월 후면 번데기에서 장수풍뎅이로 거듭나는(우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합니다.

장수풍뎅이, 적당한 습도와 먹이 필요

 
▲ 장수풍뎅이 허물.
ⓒ 임현철
 
장수풍뎅이는 딱정벌레목의 갑충류로 힘이 세고'투구벌레'라고도 합니다. 자연 속에서는 알에서 성충으로 우화하기까지 1년여가 걸립니다. 집에서 키울 경우 온도가 높기 때문에 8개월 정도면 성충으로 태어난다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유충은 잘 썩은 참나무나 활엽수의 부엽토 등을 먹지만 사육 때에는 발효톱밥 등을 먹습니다. 또 장수풍뎅이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성충은 자연에서 수액을, 집에선 과일즙과 젤리 등을 먹습니다.

장수풍뎅이를 받은 순간 태빈이는 '땡땡이'와 '팽팽이'로, 유빈인 '린다'와 '루핀'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번데기가 성충으로 거듭날 그날을 위해 톱밥 깔고, 물을 뿌립니다. 적당한 습도가 있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또 나무토막(놀이목)을 놓고, 아담한 보금자리 꾸리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기르는 방법 등을 찾고, 먹이를 준비하는 등 장수풍뎅이의 변화를 수시로 살피며 지극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청춘 남녀가 만나 살아야 할 거처 마련을 도와주는 부모 같았습니다. 또 스스로 혼수를 마련하고, 청첩장을 만들고, 훗날에 있을 사랑의 결실에 대비하여 아기의 옷가지와 신발, 기저귀 등을 챙기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 장수풍뎅이의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습니다.
ⓒ 임현철
 
 
▲ 장수풍뎅이를 관찰하는 아이들.
ⓒ 임현철
 
7월 18일 드디어 팽팽이가 허물을 벗었습니다. 식구들이 잠자리에 든 후 아내 혼자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허물 벗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장수풍뎅이는 허물이 벗겨지다만 어정쩡한 상태였습니다. 머리와 앞가슴에 뿔이 있는 걸 보니 수컷입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중, 팽팽이가 돌아다니다 막대기에 걸려 뿔에 남아 있던 허물이 떨어졌습니다.

"야, 허물 떨어졌다."

호기심 어린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소중하고 존귀하다더니, 장수풍뎅이를 기르는 동안 그 말이 맞는 걸 실감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이처럼 무척이나 예쁘게 보입니다.

태빈이 얼굴에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넘쳐났고, 유빈인 부러움과 시샘이 가득하였습니다. 팽팽이는 낮에는 톱밥 속으로 들어가 쥐죽은 듯 잠잠하고, 밤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와 기어 다니며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시끄러운(?) 날갯짓이었습니다. 저도 장수풍뎅이가 야행성이란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생명의 소중함과 과정의 중요성 느껴

 
▲ 낮에는 톱밥 속에 들어가 자고, 밤이면 시끄럽게(?) 날개를 퍼득이며 돌아 다닙니다. 그 소리에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 임현철
 
'나머지 장수풍뎅이들도 애벌레를 벗고 깨어나겠지' 하던 기대에도 불구하고 다른 녀석들은 아직 기척이 없었습니다. 유빈인 자기 몫의 루핀과 린다를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매일 1~2회씩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었으며, 때론 태빈이 몰래 '팽팽이' 먹이인 젤리를 놓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태빈이 애벌레 땡땡이가 진드기와 초파리의 공격(?)을 받아 한쪽이 썩기에 이르렀습니다. 성충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은 땡땡이를 묻고 돌아온 태빈인 "너무 슬프다"며 울먹였습니다. 10일 간격으로 유빈이의 루핀이 죽었습니다. 땡땡이가 죽은 걸 보고, 초파리를 쫓아내고, 진드기를 떼어주는 등 신경을 무척 썼는데 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엄마 자궁에서 나와 유아기를 거쳐, 어린이, 청소년기까지 성장 과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라면서 겪은 체험들이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장수풍뎅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은 성충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성충이 되기 전, 번데기 시절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장수풍뎅이 합사...사랑의 짝짓기

 
▲ 땡땡이가 죽자 녀석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눈칩니다.
ⓒ 임현철
 
그러다 8월 9일 밤 유빈이의 '린다'가 성충으로 깨어났습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태어난 것입니다. 묘하게 집에 생기가 돕니다. 그동안 드러나진 않았지만 위축(?)되어 있었던 유빈이가 알게 모르게 힘을 얻었습니다. 바로 이게 생명탄생의 기쁨 아닐까, 싶습니다.

뿔이 없고, 연한 솜털이 있는 걸로 봐서 암컷입니다. 묘하게 한 마리씩 죽고, 수컷과 암컷이 살아났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녀석들은 "합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혼자여서 외로울 거라"는 이유입니다.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자연 속에서 마냥 뛰어놀아야 할 장수풍뎅이가 인간의 문명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폼이라니…. 자연마저 상품화시킨 인간…. 어찌됐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팽팽이'와 '린다'를 결국 합사를 시켰습니다. 그래야 짝짓기를 해 알을 낳는다는 거죠. 곤충들의 짝짓기를 엿보는 게 그렇게 재미나는 것인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하기야, 사랑 행위 엿보는 재미이니 어련하겠습니까?(짝짓기가 이어집니다)

 
▲ '팽팽이'와 '린다'가 합사에 앞서 젤리를 먹고 있습니다.
ⓒ 임현철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SBS U포터,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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