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수의 태국이야기1] 아카족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
아카족 어린이들은 캠프에 오기 전 혹심한 가난과 문맹으로 여자 아이들은 섹스 산업에 팔려가고, 남자 아이들은 노예와 비슷한 처지로 농장에 팔려가 에이즈나 옴 그 밖에 풍토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콕강을 끼고 발달된 치앙라이는 1262년 멩라이 왕이 건설하였고, 치앙마이로 도읍이 옮겨가지까지는 란나왕국의 수도였다. 1556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란나왕국이 멸망하고, 2백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태국 땅으로 6월부터 10월까지는 몬순의 영향을 받는 우기여서 덥고 습하다. 사람들은 밤낮없는 풀벌레 소리와 도마뱀들과 함께 어울려 산다. 치앙라이는 주변 지역의 78%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으로 북부 산악지역을 다스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평야지대인 황금의 삼각주는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국경을 접하는 지역으로 3국의 물산이 교류하여 옛날에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빈곤과 반군이 지배하는 국경지대는 군자금 모금을 위한 명목으로 아편을 재배하고, 여아들을 납치하여 섹스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통로이기 때문에 치안부재의 위험한 지역이다.
그들은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니거나 학대와 강간으로 죽어갔다. 한 어린이는 섹스산업에서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주일 동안 벽만 바라보다가 조용히 죽어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아이가 겪은 공포나 성적 학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매춘굴에서 돌려보내진 2백명의 어린이 중 3명만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돈도 없고, 말도 못하며 보호해줄 부모도 없다.
아사는 아카족과 외부세계를 잇는 통로다. 그녀는 아카족에게 여왕과 같은 존재이며 존경받는다. 아사는 산악지역의 빈곤한 농가의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그만 어린아이들이 극심한 고통과 옴으로 죽어가는 걸 봤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당황하여 아무말도 못한 채 계단아래서 몇 시간을 울기만 했지만, 선생님들은 너무 많은 애들이 있어서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다. 학교에 보내진 첫 해엔 허덕였지만 곧 일등이 되었다. 아사를 이 길로 이끈 건 남편의 역할도 크지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필생의 일에 뛰어들게 했다. 절친한 친구가 총구 앞에서 성노예가 되어 14살에 죽었다. 어느날 그녀도 어릴적 친구와 함께 잡혔지만 운좋게 도망쳤다. 잡혀간 운 나쁜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아사는 호주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성공적인 사업을 유지했지만 그녀 친구가 죽어가면서 한 마지막 말을 듣고는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카족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치앙라이에 돌아와 현 캠프에 대나무로 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모으고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하고 학교를 보내며 사회에 나가 스스로 자립할 직업 교육을 시켰다. 건축, 용접, 컴퓨터, 재봉, 요리, 채소 재배, 회계 등이 캠프에서 가르치는 직업교육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새벽 5시에 기상해 노래와 기도로 점호를 하고 5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맡은 분야별로 작업을 한다. 식사 후 캠프에서 차려준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시간은 7시 반. 미국, 영국, 호주, 네델란드, 뉴질랜드, 바누아투,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9시부터 주어진 분야에서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해 오후 3시 반이면 끝난다.
학교를 마치고 오후 4시에 돌아온 아이들은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4시 반부터 시작하여 6시까지 분야별로 열심히 일한다. 고학년 여학생들은 주로 식사와 팀의 리더로 활동해 캠프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기도와 오락시간을 통해 하루를 반성하고 8시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한국 부모들의 골치를 썩히는 컴퓨터도 TV도 없고 학원은 꿈도 꾸지 못한다.
여러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며 곰곰 생각해 봤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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