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을 아시나요?
이 아이들을 아시나요?
  • 오문수 시민기자
  • 승인 2007.08.14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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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태국이야기1] 아카족 어린이들을 위한 캠프
 
▲ 캠프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지은 대나무 건물
ⓒ 오문수
 
태국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758㎞ 떨어진 곳에는 북부지역 제2의 도시인 치앙라이가 있다. 치앙라이 공항에서 내려 약 70㎞쯤 떨어진 매소이를 지나 반 따오 카엔 잔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들어서면 430명을 수용하여 돌보는 아카족 캠프가 있다.

아카족 어린이들은 캠프에 오기 전 혹심한 가난과 문맹으로 여자 아이들은 섹스 산업에 팔려가고, 남자 아이들은 노예와 비슷한 처지로 농장에 팔려가 에이즈나 옴 그 밖에 풍토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 데이빗과 아사 가족
ⓒ 오문수
 
이들을 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도와주는 최선의 방법이 교육이라는 판단으로, 교육과 위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캠프 창설자인 데이비드와 아사의 신념이다.

콕강을 끼고 발달된 치앙라이는 1262년 멩라이 왕이 건설하였고, 치앙마이로 도읍이 옮겨가지까지는 란나왕국의 수도였다. 1556년 미얀마의 침공으로 란나왕국이 멸망하고, 2백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태국 땅으로 6월부터 10월까지는 몬순의 영향을 받는 우기여서 덥고 습하다. 사람들은 밤낮없는 풀벌레 소리와 도마뱀들과 함께 어울려 산다. 치앙라이는 주변 지역의 78%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으로 북부 산악지역을 다스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평야지대인 황금의 삼각주는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국경을 접하는 지역으로 3국의 물산이 교류하여 옛날에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하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빈곤과 반군이 지배하는 국경지대는 군자금 모금을 위한 명목으로 아편을 재배하고, 여아들을 납치하여 섹스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통로이기 때문에 치안부재의 위험한 지역이다.

 
▲ 자신들이 기거할 집의 슬레트를 페인트칠하는 어린이들. 새벽 5시 반이다
ⓒ 오문수
 
지난 수십년 동안 황금의 삼각주에 사는 어린이들은 피할 수없는 수많은 비극에 노출되어 있었다. 속임수로 팔려나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방콕의 섹스산업 현장을 찾아간 부모들은 총에 맞아 죽었다.

그들은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니거나 학대와 강간으로 죽어갔다. 한 어린이는 섹스산업에서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주일 동안 벽만 바라보다가 조용히 죽어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아이가 겪은 공포나 성적 학대에 대해 알지 못한다.

 
▲ 작업복을 갈아입고 등교하는 아이들
ⓒ 오문수
 
에이즈가 유발한 알지 못한 질병으로 고통속에 울고 있는 아이도 있다. 에이즈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매춘굴에서 돌려보내진 2백명의 어린이 중 3명만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돈도 없고, 말도 못하며 보호해줄 부모도 없다.

 
▲ 세계 각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식사 시간에 모여 담소하고 있다.
ⓒ 오문수
 
한 어린이는 길거리에서 반복해서 납치되어 매춘굴에 팔렸다. 또 한 어린이는 성적 학대를 받고 탈출하여 5년 동안이나 집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젊은 엄마가 세 살 먹은 어린이에게 길거리에서 물건 팔기를 강요하여 내보냈고 결국 그 아이는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다. 살해와 노예가 되는 것을 목격한 어린이들은 300㎞를 걸어서 도망치기도 했다.

아사는 아카족과 외부세계를 잇는 통로다. 그녀는 아카족에게 여왕과 같은 존재이며 존경받는다. 아사는 산악지역의 빈곤한 농가의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그만 어린아이들이 극심한 고통과 옴으로 죽어가는 걸 봤다.

 
▲ 미취학 어린이들은 캠프에서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영어 교육을 받는다
ⓒ 오문수
 
아카족은 일부다처제의 가족 구조다. 아사는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먹을 것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자 그녀의 미래를 전망하며 6살 때 학교 기숙사 앞에 몰래 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당황하여 아무말도 못한 채 계단아래서 몇 시간을 울기만 했지만, 선생님들은 너무 많은 애들이 있어서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다. 학교에 보내진 첫 해엔 허덕였지만 곧 일등이 되었다.

아사를 이 길로 이끈 건 남편의 역할도 크지만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필생의 일에 뛰어들게 했다. 절친한 친구가 총구 앞에서 성노예가 되어 14살에 죽었다. 어느날 그녀도 어릴적 친구와 함께 잡혔지만 운좋게 도망쳤다. 잡혀간 운 나쁜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틈만 나면 자원봉사자들에게 안긴다. 네델란드에서 온 초등학교 영어교사인 윌렉
ⓒ 오문수
 
학비는 납부금 정도 밖에 안되는 장학금으로 받고 스스로 돈을 벌어 전문학교를 다녔다. 1994년부터 호주 출신의 선교사로 치앙마이에서 몇 명의 아이들을 후원하며 선교활동을 하던 데이빗을 만난 건 21살인 1996년이었다.

아사는 호주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성공적인 사업을 유지했지만 그녀 친구가 죽어가면서 한 마지막 말을 듣고는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카족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 캐비넷을 만들기 위해 용접하는 윤종성 목사를 용접책임자인 모파(13살)가 쳐다보고 있다.
ⓒ 오문수
 
호주에서 모금 안내문을 밤새 작성해 교회에 돌렸으나 반응은 차가웠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계속적인 노력과 홍보로 서서히 모금이 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서는 오른쪽 대문은 데이빗이, 왼쪽은 아사가 맡아 안내문을 돌리기도 했다.

치앙라이에 돌아와 현 캠프에 대나무로 건물을 짓고 아이들을 모으고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하고 학교를 보내며 사회에 나가 스스로 자립할 직업 교육을 시켰다. 건축, 용접, 컴퓨터, 재봉, 요리, 채소 재배, 회계 등이 캠프에서 가르치는 직업교육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새벽 5시에 기상해 노래와 기도로 점호를 하고 5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맡은 분야별로 작업을 한다. 식사 후 캠프에서 차려준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시간은 7시 반. 미국, 영국, 호주, 네델란드, 뉴질랜드, 바누아투,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9시부터 주어진 분야에서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해 오후 3시 반이면 끝난다.

 
▲ 무얼까? 어린이가 들고 있는 것은 죽순의 껍질로 밑둥치가 30cm 쯤 된다.
ⓒ 오문수
 
이들이 맡은 분야는 건축, 미장, 용접, 땅 고르기, 페인트칠 등이다. 캠프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을 직접 만든다. 여성 자원 봉사자들은 주로 보건 분야를 맡거나 미취학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학교를 마치고 오후 4시에 돌아온 아이들은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4시 반부터 시작하여 6시까지 분야별로 열심히 일한다. 고학년 여학생들은 주로 식사와 팀의 리더로 활동해 캠프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기도와 오락시간을 통해 하루를 반성하고 8시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들에게는 한국 부모들의 골치를 썩히는 컴퓨터도 TV도 없고 학원은 꿈도 꾸지 못한다.

 
▲ 건축과 도시계획 전공을 마친 네델란드 출신 요한과 아네믹. 바로 옆은 윤목사. 바깥 온도가 40도 정도다.
ⓒ 오문수
 
사랑에 굶주린 어린이들은 자원 봉사자들을 보면 품에 안기고 손을 내민다.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벌은 캠프에서 내쫓기는 것이다. 집에 가면 학교도 못가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갈아입을 옷도 없다. 이들은 또래 속에서 깔깔거리며 일과 배움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여러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보며 곰곰 생각해 봤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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