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땅에서 처음 내딛은 발은 어느 쪽?"
"북녘땅에서 처음 내딛은 발은 어느 쪽?"
  • 조도춘 시민기자
  • 승인 2007.07.01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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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금강산 탐방기
 
▲ 남측출입경사무소
ⓒ 조도춘
 
6월 26일. 드디어 금강산을 향해 출발했다. 2박3일 여정을 세워 간단한 짐을 꾸려 속초를 출발하여 남측출입경사무소와 북측출입경사무소에서 출입허가 승인을 얻어야 한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이야기 속에서나 가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금강산이다.

금강산을 처음 찾아가는 설렘이 앞서야 할 터인데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찹찹한 마음이 앞선다.

 
▲ 남측출입경사무소"짐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조도춘
 
장마 비가 그친 동해의 쪽빛 물결이 아름답다. 줄자로 밑줄을 그어 놓은 듯 멀리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금강산을 구경하기 북측으로 가는 사람들은 39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각 여행사를 통하여 모인 이들은 남북 출입경사무소를 같이 통과할 사람들이다. 북측으로 갈 수 있는 인원은 많을 때는 1000여명이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남측의 최북단마을 '명파리 마을'을 통과하였다. '끝 오징어 집'. 상점 간판이 재미있다. 상점도 남측의 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민통선입니다." 관광조장이 안내 방송을 하여준다. 마을 주민도 승인 없이 다닐 수 없는 곳이란다.

어느덧 남측 출입경사무소에 도착했다. 출입국 사무소가 아닌 출입경 사무소다. 남측과 북측은 유엔(UN)에서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만 북측 남측 자체에서는 통일이 되기까지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잠정적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외교부가 관장하는 출입국 사무소가 아닌 통일부가 관장하는 출입경 사무소를 설치하여 여권이 아닌 관광증만으로 북측을 갈 수가 있다.

 
▲ 짐 검사를 마치고 남측 군사분계선을 넘어가지 전
ⓒ 조도춘
 
간단한 짐 검사를 마치고 북측을 여행할 수 있는 특수 버스(33인승)를 갈아 타고 북측출입경사무소로 출발하였다. 출발에 앞서 관장조장과 운전기사들은 버스앞쪽에 일렬 횡으로 줄을 선다. 그리고 각자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나눈 후 탑승객들을 향하여 인사를 한다. 이색적인 풍경에 조금은 어색하다. "북측을 여행하는 탑승객과 차량의 안전을 기원하는 인사"라고 관광조장은 설명하여 준다.

천천히 북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대의 버스는 꼬리를 물고 달렸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을 정해져 있다고 한다. 북측으로 갈 때는 15:30분, 남측으로 올 때는 14:10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단다. 이시간이 지나면 북측으로 남측으로 갈 수도 올 수도 없다고 한다.

남북 분단 이후 운행이 중단된 뒤 50년이 넘도록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MDL)에 막혀 운행이 허락되지 않았던 동해선. 지난 5월 17일 오전 11시30분 북측 금강산역을 출발하여 감호역,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25.5km를 달려 12시20분경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던 동해선이 길게 눈에 들어온다. 길 따라 노란 금계국 꽃이 곱게 피었다.

차창 밖으로 반세기를 넘긴 38선을 표시하는 시멘트 기둥이 기우뚱하게 서있다. 우리민족에게 비극과 고통을 안겨준 한 많은 경계선이다. 200m 간격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1292개로 남측과 북측을 표시한 기둥이란다.

북측 군사분계선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북측 군인을 볼 수가 있었다.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크게 보인 짙은 갈색의 둥근 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키에 얼굴을 햇볕에 그을렸는지 까무잡잡하다.

북측으로 가는 버스 행렬이 잠시 멈추셨다. 남측으로 오는 차가 늦은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자 중장비를 실은 차량이 내려오고 있다. 북측 군인 지프차 다가가 차량을 멈추게 하여 뭔가 종이에 쓰게 하고 있다. 북측에서는 규칙을 조금이라고 어기면 '위반금'부과와 '반성문'을 써야한다고 한다. 관광조장이 설명하여 준다. 아마 '반성문'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몇 분을 더 가자 북측출입경사무소에 도착하였다. 많이 듣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반갑습니다~" 그러나 북측 군인의 눈초리는 전혀 반갑게 맞이하는 눈초리가 아니다. 무표정한 눈초리가 매섭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북녘의 땅을 밟을 수 있는 곳이 북측 출입경사무소다. 금강산을 관광하는 사람들은 북녘에 도착하여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어느 발로 첫발을 디뎠는지?'에도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모든 일에 처음 시작을 중요시 하는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으로 북녘의 땅을 밟는 순간이다. 북측 군인과의 눈인사와 짐 검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탑승했을 때는 북녘에 땅을 어느 쪽 발로 첫발을 먼저 디뎠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경직된 모양이다.

북측까지 가는 데 30여분이 소요된 것 같다. 정말 가까운 곳이다. 도로가에는 붉은 깃발을 들고 서있는 북측군인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군사 지대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모내기가 끝난 논들이 많이 보인다. 황새는 한가로이 어린 모 사이를 걷고 있다.

금강산 가는 도로에는 연둣빛 철망을 세워놓았다. 이 도로는 남쭉에서 오는 차들만 가는 길이란다. 멀리 마을을 따라 난 길이 있다. 북측 사람들이 사용하는 길이다. 도로는 한가하다. 가끔씩 농사철이라 트랙터와 주민들이 탄 트럭이 보인다.

트랙터를 따라가다 지친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렸을 적 우리들의 개구쟁이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의 동심을 아마 똑같은 모양이다. 금천리 마을을 지나 양지마을과 온정리 마을에 들어서자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적 심정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붉은 글씨가 보인다.

들녘에는 옥수수, 감자, 콩 등이 심어져 있다. 온정리 마을을 지나자 마을집들이 가까이 보인다. 기와로 지은 집은 똑같은 방향으로 집모양이 모두 비슷하다.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도 똑같이 지운 모양이다. 남측에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 한 동이 보인다. 채소를 가꾸기 위해 만든 비닐하우스란다.

금강산이 저 멀리 보인다. 멀리서 보이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측출입경사무소 짐 검사와 북측 군인들의 감시눈초리에 굳었던 찹찹한 심정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첫날은 남측출입경사무소와 북측출입경사무소서 출입검사로 하루 일정이 짜여 있어 금강산 구경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첫 금강산 구경이 허용되어 이용했던 육로정박지인 고성항을 들러 보기로 하였다.

 
▲ 고성항"뒷쪽으로 보이는 천불산이 보인다."
ⓒ 조도춘
 
고성항을 감싸고 있는 금강산의 지류인 천불산(654m)이 보인다. 천여개의 봉우리가 불상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보이는 천불산은 벌써 신비함을 자아내게 한다. 천불산이 감싸고 있는 고성항은 아늑한 호수처럼 느껴진다. 분단 반세기 동안 끊겼던 금강산 가는 바닷길을 열리면서 관광의 출입구의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 고성항횟집 메뉴판
ⓒ 조도춘
 
버스에 내리자 멀리 해상호텔인 '호텔해금강'이 보인다. 바다 위에 만들어진 해상호텔이란다. 북측봉사원들이 서비스를 한다는 고성항 횟집에 잠시 들렀다. 회를 먹기 보다는 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들었다.

 
▲ 고성항 횟집 내 벽에는 많은 낙서쪽지가 붙어있다.
ⓒ 조도춘
 
 
▲ 고성항횟집 "통일을 염원하는 쪽지들"
ⓒ 조도춘
 
"어서 오시라요."

북측 여성 접대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벽 쪽에는 이곳을 다녀간 많은 남쪽 사람들의 낙서 쪽지들이 가득 붙어있다.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쪽지들이 많다. 털게찜, 세꼬시 등 벽에 붙어있는 메뉴도 재미있다.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이 더 넓어졌다. 1998년 11월에 북측관광이 허용되어 배를 이용하여 해로를 따라 4시간 정도 항해를 하면 북측 고성항에 정박할 수 있었단다. 2003년 하반기 육로가 허용된 이래 지난 6월 1일부터는 내금강까지 관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버스로 가는데 2시간이면 금강산 바라다 보이는 온정각에 도착할 수가 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u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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