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자기 그릇 이상 더 담지 않는다"
"물은 자기 그릇 이상 더 담지 않는다"
  • 임현철 / 오문수 시민기자
  • 승인 2007.03.22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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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여행] 울릉도 - 내수전에서 산길을 가다가
 
▲ 급경사의 산등성이 사이로 난 오솔길. 울창한 나무숲이 마음을 포근하게 합니다.
ⓒ 오문수
 
시간의 흐름은 유수(流水)라더니 정말이지 빠르게 지나갑니다. 시공을 넘나든다는 3차원 세계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로이 넘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게 아니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산 넘어 죽암을 가기 위해 내수전 전망대에 서 있습니다. 내수전은 조선시대 공도(空島)정책으로 사람이 살지 않다, 1882년 고종의 섬 개척령으로 이주민이 정착할 때 '김내수'란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오문수 선생님은 "다리 아프면 돌아가라" 하시지만 오기 힘든 울릉도에서 뒤돌아 설 수 없는 노릇. 둘이서 배낭 메고 호전한 산 오솔길을 걷습니다. 죽도(竹島)가 계속 우리의 시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울릉도 부속 섬 중 가장 큰 섬, 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합니다. 6만2880평의 면적에 1가구 2명, 부자지간이 살고 있다 합니다. 본섬인 울릉도와 달리 물이 없어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일명 달팽이 계단으로 불리는 나선형 계단 또한 명물이라 합니다.

 
▲ 내수전에서 죽암으로 가는 길에 죽도(竹島)가 계속 눈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 임현철
 
"인생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갑니까?"

일정상 가지 못한 아쉬움으로 죽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죽도에 산다는 부자지간은 무슨 말을 주고받을까? 혹여 이런 말들은 아닐까.

"인생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갑니까?"
"空(공)으로부터 왔다 空(공)으로 간다."
"풀어서 알려 주십시오."
"바람이 불어왔다 꽃이 져 간다."

"삶이 무엇입니까?"
"意識(의식)이다."
"풀어 주십시오."
"自我(자아) 存在(존재)를 之感(지감)하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합니까?"
"바람이 왜 분다 하더냐?"
"풀어 주시 오면…."
"風碧(풍벽)이 바람을 만나 소리 하나 일어나서 虛空(허공)에 맴돌다 虛空中(허공중)에 맴돌다 虛空中(허공중)에 소멸이라."

- <띠끌에게 물어라>, 소제(素齊) 박춘묵(朴春黙) 선생 화보집 중에서 -


 
▲ <인생은 소낙비 삶은 꽃구름>소제(素齊) 박춘묵(朴春黙) 선생 화보집 중에서
ⓒ 임현철
 
산길을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김내수 어르신 집을 지나 정매화씨 외딴집이 있었다는 정매화곡 쉼터에 다다릅니다. 울창한 숲길 사이로 가벼운 차림의 금슬 좋게 보이는 부부와 등산객 서너 명과 마주칩니다. 봇짐을 진 이는 우리뿐입니다.

이 길은 죽도와 관음도, 삼선암 등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사랑받는 곳입니다. 과연 그럴 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은 도로가 개설되지 않아 3500여억 원을 들여 해변일주도로를 계획하고 있다 합니다.

예산부족으로 언제 실행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어서 빨리 일주도로가 나길' 고대하기도, 자연 훼손을 막고 울릉도를 살리려면 '길을 내서는 안 된다'는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합니다.

"집 담을 넘어온 감을 두고, 담을 넘어 저희 집으로 왔으니 이 감은 저희 감입니다. 이 감은 저희 집에 뿌리를 둔 감나무가 맺은 열매라 이것은 저희 감입니다"라는 말에 "네 말이 맞구나", "네 말도 맞구나" 했다던 황희 정승이 떠오릅니다.

하여, 울릉도를 둘러보니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양쪽 말이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 분은 '한 번 살아보시오.' 타박이었고, 어떤 분은 '이런 길에 길을 내면 되겠느냐?' 따졌었습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글귀가 있습니다.

 
▲ 김내수씨의 옛집과 주변 해안 풍경입니다.
ⓒ 임현철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입니까?"
"철 따라 가고 오는 들꽃을 보아라."
"풀어서 알려 주십시오?"
"自然(자연)의 法(법)대로 사는 것이다."

"自然(자연)의 法(법)은 무엇입니까?"
"法(법)은 하늘로 바다로 江(강)으로…"
"풀어 주십시오."
"물처럼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근심 걱정을 벗어납니까?"
"自然(자연)스럽게 살아라."
"풀어 주십시오."
"물은 自己(자기) 그릇 이상 더 담지 않는다."

- <띠끌에게 물어라>, 소제(素齊) 박춘묵(朴春黙) 선생 화보집 중에서


 
ⓒ 오문수
 
"채워버린 그 자리 떠나가는 설렘"

자연소리 벗 삼아 산길을 걷다보니, 박춘묵 선생의 화보집에 나오는 "채워버린 그 자리 떠나가는 설레임"이란 글귀가 못내 밟힙니다. 또 "沈黙은 言語(언어)의 餘~日(여일)"이라던 화보집의 글귀도 자못 눈에 선합니다.

허나, 굳이 한 마디 하자면, 병법(兵法)에서 이르길 상책·중책·하책 중 하책은 선택하지 말라 했습니다. 자연도 살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사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3500억여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해변일주도로만 고집 할 게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일례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브라질 리오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항구의 경치와 거대한 그리스도 상을 보기 위해 코르코바두 산에 오릅니다. 그들은 도로 대신 외발 톱니바퀴 기차를 설치하여 환경훼손도 막고, 예산도 절감하고, 관광객의 흥미도 자아내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 알프스를 오르는 운송수단인 스위스 협궤열차도를 봐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미래의 후손, 자연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정책을 고려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젠 시선을 따라오던 죽도도 보이질 않습니다. 걷다보니 석포에 이르렀습니다. 발목과 발등까지 부어올라 걷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해 묵묵히 앞길을 걸어가야 하겠지요.

 
▲ 생명의 움틈
ⓒ 임현철
 
 
▲ 정매화곡 쉼터 풍경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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