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냈써"
"아들 셋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냈써"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02.08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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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중의 오지 섬, 전남 여수 '광도'를 찾아 ③
 
▲ 광도. 높은 파도와 접안시설이 열악해 직접 해안에 닿지 못하고 이렇게 마중 나온 배로 이동 섬에 내렸다.
ⓒ 임현철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은 없다. 자신이 개척해야 하고, 또 살아내야 한다.

전남 여수 광도. 송봉님(75) 할머니는 옆에 있는 섬, 평도에서 살다 19세에 광도로 시집와 이제껏 사신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 계신다. '섬사람은 섬사람과 결혼시키는 걸 꺼린다는데 어찌 이곳으로 시집 오셨어요?' 물을 수가 없다.

섬사람 아닌 육지사람 시각으로도 그 답은 뻔하다. 어디에 살든 그저 삶일 뿐이니까. 결국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일 게다.

송강연(74)ㆍ허풍자(74) 부부의 집. 사람들이 모여든다. 바로 MBC <느낌표 - 산 넘고 물 건너> MC 남희석ㆍ박정아씨와 촬영팀, 광도 주민들이다.

 
▲ 광도 주민들이 방파제에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
ⓒ 임현철
 
"왜 이곳에 사나요? 뭍에 나가 살 생각 없어요?"
"(허풍자 할머니 기다렸다는 듯이) 왜 업써? 배도 잘 안 댕기고, 나가고 잡지(싶지). 돈 있는 사람덜은 이란데(이런데) 살믄 조을껀디, 나넌(나는) 섬이 시러(싫어). 나는 섬에 안 살라 그랬는디 여적꺼정(아직까지) 살고 있써. 살기가 답답해. 다리 아프지…."
"(송강연 할아버지) 이 섬이 젤(제일) 좋아. 시내 나가믄 깝깝허고 심심해. 여그 있쓰믄 돈도 별로 안 드는디, (육지에선) 궁것질(군것질)에 안 쓰던 헛돈만 드러(들어). 글고 여그선 밥맛도 조코(좋고)."

"할머니랑 둘이 계시면 행복해요?"
"행복허지. 어이, 그람(그러면), 자네는 각시랑 있씨믄 안 행복한가?"
"……. 행복허죠~."

할 말 없다.

"정기 객선도 없는데 육지에 나갈 땐 어찌 나가세요?"
"손죽도 섬사랑호 배에다 전화하믄 와. 전에는 한 번 나갈라믄 2만원 했는디, 지금은 도서민 혜택이 이써(있어) 한 오~륙천 원 바께(밖에) 안 드러(들어)."

"생계는~ 요?"
"영세민 지원도 바꼬(받고), 짬짬이(틈틈이) 홍합도 하고, 김ㆍ가사리ㆍ미역ㆍ톳 가튼(같은) 해초 뜯꼬 사는디 살기가 힘들어. 근디 이것도 다리가 너무 아파 일도 못해. 나가(내가) 아파 방에 있쓰믄 아봄(남편)이 밥도 허고 그래."
"신랑이 도와주니 좋겠네요."

구멍이 숭글숭글 난 재래식 자연산 돌김이 여기저기 쌓였다. 또 널린 김발에 돌김이 햇볕에 말라가고 있다.

 
▲ 자연산 돌김. 이렇게 송송 구멍 뚫린 김은 가족들이 먹는다고 한다.
ⓒ 임현철
 
"(할아버지 어느 새 돌김을 가져와 내려놓으시며) 참기름에 보까(볶아) 묵꼬, 불에 꾸(구어) 무그믄(먹으면) 마씻써."
"야, 완전 자연산 돌김이네요? 이거 얼마해요?"
"돈이 얼마 되간디. 한 톳에 만원 빼끼(밖에) 안 나가. 폴기도(팔기도) 헌디, 얼매나 파나? 그저 우리 묵꼬, 가족들 묵는 거지."

"김 어디서 뜯어요? 양이 많아요?"
"배 내릴 때 안봤써? 방파제, 바위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렸써. 손이 업써 못 뜯지."
"여기는 주로 뭘 먹어요?"
"여수 나가 시장 안보믄 해초도 묵꼬, 나물도 캐 묶꼬 헌디, 고기 가튼(같은) 거 못 무그믄(묵으면) 몸이 아파."

"가족은 어찌 되세요?"
"4남 3녀 났는디(낳았는데) 큰 아들은 네 살 묵어 죽꼬, 하나는 고기잡으로 가 바다에서 죽꼬. 하나는 숭년(흉년)에 강냉이 가루로 만든 개떡 묵꼬 급체로 주것써. 아들 셋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냈써."

괜한 걸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눈물이 고인다.

 
▲ 맛을 본 남희석 씨는 즉석에서 광도 자연산 돌김을 구입하고 나섰다.
ⓒ 임현철
 

 
▲ 바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도 돌김.
ⓒ 임현철
 
"급체요, 병원 안갔어요?"
"뱅원에 갔지. 배 노 저서서 손죽도로 갔는디, 저 아봄(애들 아버지)이 죽은 아이를 배에따 실어 데꼬(데리고) 왔써."
"119 구조 요청 안 했나요?"
"지끔인께 119가 있지, 어디 옌날(옛날)에 119가 있썼나? 업썼지."

"요즘엔 119 구조 요청하면 금방 오나요?"
"지끔은 전화하면 경비선이 와. 먼자뽀네(지난 번에) 아봄(남편)이 아파 119에 전화했드만 (여수와 거리가) 하도 멀어 1시간만에 왔써. 이것또 빨리 온 거여. 근디 여수가 아닌 나라도에 내려줘 여수까장 다시 옴기는디 시간이 너무 마니(많이) 걸려 힘드렀써(힘들었어)."
"……."

"자식들 안보고 싶으세요?"
"왜 안보고 잡것써, 보고 잡지(싶지). 인천에서 살던 아들은 자석 서이(셋) 낳고 사랐는디(살았는데) 바다에 괘기(고기) 잡으로 갔따가 주거서(죽어서) 왔써. 지 엄마가 아그들을 중국으로 보내, 보고 잡아도(싶어도) 못봐. 주근(죽은) 놈은 주것 따지만, 산 놈도 못봐……."

"많이 보고 싶으세요?"
"(할머니, 간절히) 보고 싶지. 손자도 보고 잡고(싶고), 손주도 보고 잡지."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서 말만 아닌 척 단호하게) 안보고 싶어."

 
▲ 광도 마을 길.
ⓒ 임현철
 
할아버지 가슴에 뭐가 그리 쌓였을까? 보고 싶다 하시지 안보고 싶다 한다. 자식 먼저 보내고 마음 편할 부모 없을 터. 가슴 부여잡고 사셨을 세월 생각하니 아득하다. '목숨이 모질다'더니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정말 모진 삶을 살아오셨다. 그래도 생명의 근원인 바다에서 그 '삶의 힘'을 얻었을 터.

<느낌표> 팀들, 차고 매서운 바람을 뚫고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해 소외 받는 광도의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시고 치료차 '자봉도'로 이동한다.

몇 평 안 되면서 몇 십억을 호가하는 서울 '아파트'와 전체를 통틀어 몇 십억 될까 말까 하는 '섬'. 섬과 육지, 다 사람 사는 곳이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이게 운명일까?

삶의 '공간'과 삶의 '문화'의 깊이는 안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 터.

 
▲ 돌김, 톳, 따개비와 어울린 파도. 바다는 이렇듯 그 생명의 원천이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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