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사이소~”
“함~ 사이소~”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02.0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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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봉·장유진 예비부부의 함 들어오던 날
 
▲ “함~ 사이소~” 준비
ⓒ 임현철
 
"함∼ 사이소∼"

지난 3일 저녁 난데없는 들리는 우렁찬 소리.

어, '함 사세요'가 아닌 '함 사이소'다. 전라도 여수에서 경상도 억양이 흐른다. 긴장할 법한데 긴장은 간데없고 웃음이 묻어 있다.

결혼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여전히 함을 팔고 있다. 많은 업종이 생기고 사라진다 해도 함 파는 업종이 쉬이 없어질 리 만무하지. 초반이라 실랑이가 없다. 인도에 술상이 차려지고 돗자리가 깔린다.

"날도 춥고 하니, 우리 시원하게 흥정하세."
"멀리 서울을 거쳐 대구, 안동에서 여수까지 왔는데 쉽게 흥정이 되겠어요?"
"어이, 저리 가서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세."
"아니, 안살라면 마세요. 우리도 밑지곤 못 팔죠?"
"안 산다는 게 아니라 사긴 사는데 여기까지 오라 그거지."


슬슬 기 싸움이 시작된다.

 
▲ “함~ 사이소~” 출정
ⓒ 임현철
 
 
▲ “함~ 사이소~” 흥정
ⓒ 임현철
 
"여자들은 왜 안 나오는 거요? 아무도 없어요?"
"여기 있어요."
"노래 하나 불러야 가지 그냥 갈 수 있나요?"
"노래 부르면 여기까지 올거죠?"
"함∼ 사이소∼"

"노래 부르면 여기까지 올거냐구요?"
"그래요."
"비 내리는 호남∼서언…."
"안 들려∼"
"비 내리는 호남∼서언 남행 열차에…."


다시 노래가 시작되고, 서로 밀고 당기다 힘없이 함이 쭈∼욱 밀린다. 뒤에서 밀어붙인 것이다.

 
▲ “함~ 사이소~” 밀고 당기기
ⓒ 임현철
 
"야, 인심 너무 좋∼타. 근데 뭔 힘이 그리 좋아요?"
"한 잔 하시오."


술이 오간다. 소주, 맥주, 양주까지 동원됐다.

"여기가 어디여, 여수여. 빨리 팔고 한양가세."

소리에 함 진 말과 마부가 일어나고 술상이 뒤로 물러난다.

"비싼 말인데, 여물 주이소∼"
"여물통 저기 있는데 저리 가서 먹어요."
"장모 나오시오."
"장모가 다리 아파 못 나와."
"함∼ 사이소∼"


지켜보던 아홉 살 딸 유빈이가 묻는다.

"아빠, 왜 함을 판다는 거예요?"
"몰라∼. 가서 물어봐. 함도 사고파는 거냐고? 판다면 네가 사."
"……."
"왜 안 물어봐?"


녀석 빙그레 웃고 만다. 가늠이 생긴 것이다. 북, 꽹과리가 동원되고 송미경씨의 걸쭉한 창(唱)이 흐른다.

 
▲ “함~ 사이소~” 술상
ⓒ 임현철
 
"말 여물이 적다."
"춘향가 중 이도령이 춘향이에게 사랑 고백하는 대목을 불렀으면 됐지, 무슨 여물? 여수 생선 사시미 차려 놨으니 빨리 들어가 먹어요."
"안동은 간고등어여. 싱싱한 걸 안 먹어 봐 맛을 몰라."
"함∼ 사이소∼"


봉투가 놓이고 마부가 액수를 확인하자 말이 여물을 문다.

"아빠, 말과 마분데, 왜 '황소고집'이라고 해. 말 고집이지. 말은 말도 못하고 돈도 못 받는데 사람 말이라서 말도 하고, 돈도 받고 그래요? 진짜 말은 말도 잘 듣는데 사람 말은 말도 잘 안 듣네요? 내가 만일 시집간다면 사람 말 동원해 함 팔지 말고 동물 말을 사서 함 보내라고 해야지."

딸, 정말 할 말 없는 말을 한다.

 
▲ “함~ 사이소~” 봉투
ⓒ 임현철
 
 
▲ “함~ 사이소~” 공연
ⓒ 임현철
 
 
▲ “함~ 사이소~” 아휴 힘들어
ⓒ 임현철
 
"말은 뒤로 가는 법이 없는데 왜 뒤로 가는 거요?"
"뒤로 안 갔어요."
"밤이 늦어 (함) 다른 데서 살 곳도 없고 하니 빨리 들어가죠?"
"(말이 주저앉자) 말이 배가 고파 못 간다네."
"함∼ 사이소∼"


육자배기가 나오자 일행 춤사위가 이어지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풀린 함을 단단히 동여매는 사이 봉투가 연달아 깔린다.

 
▲ “함~ 사이소~” 여물
ⓒ 임현철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예비 신혼부부인 이형봉(33)·장유진(29)씨를 만난다. 밖에선 실랑이가 한창인데 연방 싱글벙글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좋을 때'다.

"어떻게 만났어요?"
"영국 어학연수 때 처음 만났어요. 그 후 10년간 알고 지냈는데 (오빠가) 갑자기 나타나 작업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빠, 나 일이 바빠 연애할 시간 없거든' 했는데 벌떡 일어나 '나도 너랑 연애할 시간 없거든 결혼할 거야' 그러는 거예요."

"정식 프로포즈는 받았어요?"
"(예비 신랑을 보고 웃으며) 받았나? 오빠가 쓴 편지를 연극공연장에서 배우가 읽어줬어요. 거기에 결혼하자는 말이 있었어요."


함, 집 앞에서 꿈쩍 않고 있다. 장인, 장모 내다보는 폼을 보니 몸이 단 모양새다. 예비 신랑이 "야! 춥다, 빨리 들어온나"라면서 한마디 거든다.

함진 애비는 "대구까지 가려면 차비도 많이 들고, 꽃값도 줘야 하는데 여물이 적어"라고 속삭인다. 다시 막바지 봉투들이 나오고 시루떡까지 대령한다. 2시간 30분의 웃음 속에 함이 팔린다.

이형봉·장유진 예비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바라본다.

 
▲ “함~ 사이소~” 당사자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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