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노코 좀 팬히 살믄 조컷는디"
"보일러 노코 좀 팬히 살믄 조컷는디"
  • 임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07.02.05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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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의 오지, 전남 여수 ‘광도’를 찾아 ②
 
▲ 광도 앞의 무인도. 저곳을 지나면 태평양인데도 섬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며 가만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임현철
 

파도가 높다. 바람도 차다. 전체 주민이라 해야 고작 7가구 9명인 아주 작은 섬. 전남 여수 삼산면 광도(廣島)로 향한다.

선착장 옆 바위에 오르며 광도의 매섭고 신선한 찬바람을 맞는다. 묘하게 불가마에서 땀을 쭈~욱 빼고 난 후 맞는 찬바람 느낌이다. 바위에는 돌김과 따개비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는 천연의 자연이다.

마을로 오르는 중간에 창고 같은 건물 한 채, 덩그러니 서 있다. 송강복(64)ㆍ방현자(61) 부부와 이순학(80)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저 건물은 뭐예요?”
“쩌거시, 우리 발쩐소여, 발쩐소”

“아, 자가발전요. 전기 안 부족해요?”
“부족허지, 왜 안 부족허것써. 오후 다섯 시 반이나 여섯 시 되믄 (발전을) 돌리는디 아홉시 반이나 열시 되믄 전기가 나가. 연속극도 지대로(제대로) 못 봐. 냉장고도 전기가 왔다 갔다 헌께 고장이 자져(잦어). 무더운 한여름에 찬물을 먹을 수 있나, 김치를 너노코(넣어 두고) 먹을 수가 있나? 쩌 집은 냉장고를 네 개나 바껏써(바꿨어). 여그는 가전제품이 업는 거시 나아”

 
▲ 화석연료인 경유로 돌리는 광도 디젤발전소.
ⓒ 임현철
 

우리나라 3,167개 섬 중 무인도 2,675개, 유인도 492개. 한전에 따르면 광도처럼 자가발전 지역은 82개로 약 4만 5천여 명이 의존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1993년부터 경유 디젤 발전기를 설치해 시설 노후화가 심해 교체가 예정되어 있다.

섬이라 바다 염기로 기계 부식이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냉장고, 세탁기, 밥통 등 문명의 기본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실정. 전기 없던 시절로 돌아가 찬물에 밥하고 빨래하는 비문명의 섬, 원시 광도다.

정부는 최근 ‘모든 국민이 소득에 관계없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을 보장하는 것’으로 에너지 복지 개념을 규정하고 에너지 빈곤층이 없게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곳 광도에 언제 적용될지 의문이다.

 
▲ 송강복 씨
ⓒ 임현철
“기름 값도 만만찮을 텐데, 발전기는 누가 돌려요?”
“큰 섬은 한전에서 돌리는디, 여그는 우리가 돌려. 집 마다 돌아감서(가면서) 돌리는디 남자 있는 집서 돌려. 다섯 시간만 돌리도(돌려도) 하루 삼만 원이믄 한 달에 백만 원이 들어간께, 시 보조 가꼬(가지고) 되것써. 여그에 유지보수비도 무시 못허고. 이런께 우덜이(우리들이) 애끼고(아끼고) 애끼고 애끼야지(아껴야지) 어쩌것써.”

“여기까지 배 타고 오기도 힘든데 경유는 어찌 들여와요?”
“손죽도에서 맻통(몇 드럼) 사서, 배 싹(삯) 십 오만원 주고 우리가 배로 싣꼬(싣고) 와.”

“고장수리는요?”
“두 대를 번갈아 돌리는디 세운지도 꽤 됐꼬, 소금기 땜에 고장도 잦꼬, 워낙 먼 섬이라 고장나도 금방 고치는 것시 아니지. 고칠라믄 보통 일이 개월 걸리는디 쩌본(저번) 참에는 사오 개월이나 전기 업씨 지냈써”

전기 돌려야지, 경유 사와야지, 고장 고쳐야지, 정말이지 섬에 살기도 보통 아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섬. 그들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삶에 임한다.

“집 난방은요?”
“여그저그(여기저기) 나무 장작 싸논 거 못봤써? 나무로 떼지. 저거 할라믄 일주일은 지개질에, 톱질에, 도끼질에 몸살을 알어(앓어). 우리도 보일러 노코 좀 팬히(편히) 살믄 조컷는디(좋겠는데).”

“24시간 전기 들어오는 게 소원이겠네요?”
“그라믄(그러면) 소원이 업지, 얼매나 조컷써. 죙일 전기가 들어오믄, 제일 몬첨(먼저)지배서(집에서) 뜻트탄(따뜻한) 물 뎁펴(데워) 땃땃~허니(따뜻하게) 목욕 헐꺼여. 태양광 발전이라도 좀 해주믄 조컷타고(좋겠다고) 말했는디…. 그런 갑다 하고 사라도(살아도) 그게 어디 그렇나?”

“섬에 다니면 태양광 말은 안하는데 태양광을 원하네요?”
“햇빛 만코(많고), 바람 쌘 섬에서 태양이나 바람을 이용허는 게 젤(제일) 아니것써. 기름 갑또(값도) 비싼디 굳이 돈 마니(많이) 드는 갱유(경유) 땔 필요 있것써?”

 
▲ 광도의 집들은 전체가 남향이다. 바람이 강해 지붕은 줄로 단단히 묶었다.
ⓒ 임현철
 

 
▲ 발전소 내부
ⓒ 임현철
 

 
▲ 집 한쪽에 겨울 난방용 장작을 쌓아두고 있다. 저 장작이 떨어지면 광도의 겨울도 끝이 나겠지?
ⓒ 임현철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힘쓰고 있는 <에너지 나눔과평화>도 “소음ㆍ환경문제가 많은 디젤엔진 보급계획을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면서 “철탑과 전신주를 육지에서 먼 섬까지 끌어와 세우는 중앙전력공급 시스템보다 수요 지역에 직접 설치하는 분산형 전원체계인 풍력ㆍ태양광ㆍ매립가스 등 재생가능 에너지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90년대 중반 여수 하화도는 전국 최초로 설치한 태양광발전 시설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렇듯 태양광발전소의 최적 입지로 여수를 비롯해 목포ㆍ고흥ㆍ순천ㆍ진주 등 남해안이 꼽히고 있다. 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경우 정부에서 총 사업비의 25%를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전기사업법 제48조는 전력산업의 기반조성 및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재원확보를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조성, 대체에너지 생산 지원사업ㆍ도서벽지 전력공급 지원사업 등에 사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적극 요청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YMCA 전국연맹이 2005년 순천 별량면에 설치한 20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 여수YMCA
 

일례로 여수YMCA 김대희 시민사업국장에 따르면 한국YMCA 전국연맹은 ‘에너지운동이 생명과 생태중심 철학을 실천하는 운동’임을 인식하고 정부 지원금 5억원, 자체조달 10억원(전액 융자)으로 2005년 순천 별량면에 태양광 200kW의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3월 가동에 들어가 한국 YMCA 전국연맹은 매월 2,500여만 원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년간 40만여 kWh 전력생산으로 매년 3억여 원의 수익이 기대되고 있는 상태다.

이로 보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화석연료 이용으로 인한 공해와 소음 피해도 줄이고, 저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면서, 수익도 창출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다. 이제 각 지자체가 나서 섬 지역 전력공급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제3조) 고 규정하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제34조) 면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제35조) 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광도는 우리나라 영토이면서도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종일 전기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집에서 따뜻한 물 데워 목욕하겠다’는 작은 소원을 품은 이순학 할머니. 이 할머니의 바램이 실현될 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 여겨본다.

광도의 찐~한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리워진다.

 
▲ 이 찐~한 광도 막걸리 한사발 드실래요? 그러면 태양광 들어올 수 있을까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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