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사람 이야기7] 오지 중의 오지 섬, '광도'를 찾아 ①
"안녕하세요? 할머니. 이 쇠줄은 뭐예요?" "뭐긴. 이거 삭또(삭도)여, 삭또." "삭도요?" "그래 삭또. 다 늘근(늙은) 사람들 힘들다고 짐 옴기는(옮기는) 께이쁠까(케이블카)여." 전남 여수 삼산면 광도(廣島). 병풍도라 불리다 섬 주위 조그만 섬에 비해 넓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섬 길이가 500여m에 지나지 않아 이름만 넓을 '광(廣)' 자다. 1917년부터 사람이 거주하여 한때 40여 호까지 살았으나 현재 7가구 9명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여수시에서 80여km 떨어진 광도는 직접 가는 여객선이 없다. 이곳에 가려면 여수에서 거문도행 배를 타고 손죽도에서 내려 다시 배를 얻어 타야 한다. 전기도 없어 자가발전에 의지하는 그야말로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배를 타고 2시간여를 가니 안개 자욱한 광도가 나타난다. 꼭 마음 속 환상의 섬 '이어도' 같은 느낌이다. 가도 가도 인가 없는 산중에,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마을이란 느낌. 이런 데도 사람이 사는구나! 사람,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섬 중간, 약 80도 경사진 언덕에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이 삭도 언제 세웠어요?" "작년에 세웠어. 저거 세울라고 십 삼년 걸렸슨께 오래 걸렸지. 쌀, 가스통, 소금, 해초 거튼(같은) 짐도 옴기고(옮기고), 사람도 타고 그래. 다 늘거(늙어) 아픈 사람들 저거 업스믄 안돼. 우리 광도 보물이여, 보물." "왜 그리 오래 걸렸대요?" "아이, 사람 맻(몇) 사람 안 사는디 금방 해 주것써. 사람 마니(많이) 사는 다른 디도 이거 해주라 저거 해주라 허는디. 그나마 삼산면에서 힘써 겨우 지난 여름에 오천만원 들어 맹그럿써(만들었어)."
그래 맞아. 예산은 사람이 적든 많던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허튼 곳에 쓰는 예산이 얼마나 많은데 싶다. 오죽했으면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란 시민단체에서 '밑빠진 독 상'까지 만들었을까? 그렇잖아도 유배지 같은 곳에 이런 혜택이라도 없으면 어찌 살꼬? 송강복(64)ㆍ방현자(61) 부부의 초가삼간(?)에 드니 쌀누룩으로 만든 막걸리를 뜨고 있다. 옛날 술도가의 밀고 등으로 곤욕을 치르던 흉년의 '밀주' 생각이 날만큼 찐~한 막걸리다.
"섬에서 술 마실라믄 여수서 사와야 헌디, 우리가 직접 담가 무거야지(묵어야지), 누가 그냥 주나? 밭일이나 해초 뜨들(뜯을) 때 한두 사발 무거야지 안무그믄 배가 고파 일 못해. 한 사발 무그믄 배가 금방 부르고 든든해." "예이~, 막걸리 한 사발 마신다고 배가 불러요?" "아녀, 나가(내가) 한 사발 떠줄껀께 한 번 무거 봐. 무거 보믄 알지." "이따 무글께요. 마을 좀 둘러보고요." 입맛 땡기는 걸 잠시 미루고 비탈진 언덕에 자리한 마을을 둘러본다. 썰렁한 LPG 가스통이 보인다. 삭도 없을 땐 저걸 지고 올라왔단 말이지. 돌담장은 처마와 거의 같은 높이로 쌓여 있다. 지붕은 하나같이 옴싹달싹 못하게 밧줄에 묶여 있다. 바람이 센 곳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화장실이 문만 겨우 가린 재래식이다. 문이 아래쪽만 있는 곳도, 아예 없는 화장실도 있다. 군데군데 텃밭에는 배추, 파, 상추 등이 자란다. 비어있는 집들은 잡초가 우거져 황량함을 더한다. 장작들은 집 안팎 여기저기 쌓여 있다. 어찌 보면 조선시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앉은 세조를 피해 절개를 지키며 스스로 초야에 묻혀 살았던 '생육신'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쌔기(어서) 와, 한 사발 무거 봐. 나가(내가) 떠줄텐께." "(쭉 들이키며) 와~따, 걸쭉헌 진국이네 진국. 이런 막걸리 첨(처음) 무거(먹어) 보네요~ 잉." "안주는 총각김치가 제일이여. 한 번 주믄 야박헌께 한 사발 더해?" 캬~. 눌러 앉아 통째 비우고픈 생각이 절로 난다. 바다와 파도뿐인 이곳. 종종 스치는 어선들 외에 마주치는 게 없는 광도. 이들의 순박함의 원천은 어디일까? 문명의 그늘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찌들어 사는 우리네. 몇 사람 안 산다고 예산에도 인색하고, '힘든데 육지에서 살지, 왜 굳이 섬에 사는지' 말할 수 있을까? 삶은 어디서나 그 맛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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