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터널 ‘연곡’터널로 바꿔야
한재터널 ‘연곡’터널로 바꿔야
  • 남해안신문
  • 승인 2007.01.26 10: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한석의 향토순례 8] 여수의 서쪽에서 이제는 중심으로 ‘여서동’

여수의 서쪽이라는 의미의 여서동은 장군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휘감아 돈 곳에 자리한다. 삼여 통합 후 여수의 서쪽이라는 개념은 퇴색해졌지만. 본디 터 골·한재·돌 곡 부락 등 3개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동이었는데 1986년 돌 곡 부락(돌 고개)이 오림동으로 편입되고 지금은 크게 나누어 터 골(基洞)과 한재(大峙)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예로부터 장군 산 주변에는 바위들이 많았는데 그에 얽힌 사연도 가지가지다. 장군바위, 마당바위, 덕석바위, 흔들바위, 벼락바위, 그리고 주변 구봉산의 칼바위. 그중 으뜸은 장군바위와 칼바위다. 먼저 지금은 형체마저 없어진 칼바위에 얽힌 얘기를 들어보자. 지금부터 100년 전이라고 한다.

인근 구봉산 정상에 약10미터 정도 크기의 칼바위가 있었다. 이름처럼 그 형상이 흉해 임산부가 그 바위를 바라보면 낙태를 하고 또 그곳을 지나가는 나귀들도 바위를 보면 놀라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해서 맞은 편 신월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불길한 바위로 인해 피해가 많다고 판단 석공들을 동원하여 그 칼바위를 부셔서 떨어뜨렸다.

떨어뜨린 바위조각들은 인근 여서동 터 골 부락 쪽으로 내려왔는데 여서동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당시 세력이 신월리보다 훨씬 약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힘센 사람이 큰 소리 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영대학교 바로 위쪽 위치한 장군바위는 굴 등 바위라는 별칭이 있다. 굴(窟) 등에 큰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렸는데 그 바위에서 장군이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는바 후대에 큰 인물이 날 것이다는 옛사람들의 예언이 상존한다.

바위 밑의 굴은 비좁아 들어갈 수는 없으나 종화동까지 뚫리어 있다는 미확인된 말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한가한(?) 얘기를 듣고 젖어있을 겨를이 없다. <심각한 오류>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지적됐기 때문이다. 바로 한재터널 명칭 때문이다.

“ 현재 부르고 있는 한재터널은 잘못된 표기이자 호칭입니다. 장군 산에 골이 많고 그것도 연달아 이어져 있다 해서 지금 터널이 있는 고개를 예로부터 연곡(連谷)재라 불러왔습니다. 이 연곡 재는 화양면이나 웅천 등지의 주민들이 여수 쪽으로 볼일이 있을 경우 반드시 넘지 않으면 안 될 코스였습니다. 당연히 연곡 터널이라 부르는 게 마땅한 이치인데 현 지점과는 동떨어진 한재부락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존해 계신 나이 드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바로 고쳐야 할 과제입니다” 백 명선(白明善·60) 여서동 새마을 금고 이사장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 한재로타리.
그는 절차를 거쳐 여수시에 이를 건의했지만 건설교통부 재가를 이유로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친김에 동이 안고 있는 또 다른 해묵은 사업을 꺼내 놓았다. 여수시 간선도로의 교통체증과 주차난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2차로인 여서1로의 심각한 주차난은 매일매일 단속원과 주민들 간에 시비 거리로 등장하여 큰 문제를 낳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현재의 인도 폭을 조금만 줄여서 주차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수차례 시에 건의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애꿎은 피해자만 속출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여수 2청사와 빅딜로 이루어진 여수해양수산청자리는 예로부터 ‘군(郡)터’라 불리어 왔다고 한다.

저명한 풍수지리 인의 말에 따른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명당자리’임에는 틀림없다고 해서 여수시 청사를 건축할 당시 시장은 무척 좋아했고 고무돼 있었다는 전언이다. 공리민복을 위해서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터라는 생각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인은 바뀌었지만 시민들의 공복인 공무원들이 일하는 터로써 계속 존치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은 예전 같지 않는 퇴락한 경기에 이마에 주름살만 늘어간다고 하소연들이다. 그래서 여담으로 이 동네에 전해지는 ‘개머리 털’ 전설 한 토막을 옮겨본다. 터 골 부락 앞산인 구봉산 기슭의 끝부분과 접한 지역이 풍수지리상으로 ‘개머리 털’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묘를 쓴 모인은 여수 최고 부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 뒤 그 묘에다 묘비와 상석을 정화한 뒤로 폐가가 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개머리 털에 무거운 돌을 올려서 개가 힘을 이기지 못해 가세가 기울었다는 것. 글쎄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얘기지만 아무튼 이 동네에서는 개에게 각별해야한다는 뜻으로 들려진다. 기사제공 : 까치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쌍봉사람 2007-01-27 22:21:11
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연곡재;영꼭재"라고 불러젔고 지금도 "영곡 00싸댁"이라고 불러야 편하다.